"군 영창제도, 영장주의 근간 흔들어 위헌"

2019-11-25 11:46:23 게재

사병만 영창, 평등원칙도 위배

국방부 폐지 약속 안지켜

군 영창제도가 영장주의에 위배되고 신체자유를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천주현 변호사(법학박사)는 25일 "실질적으로 구속과 동일한 군인사법상 영창제도는 모호한 사유로 인신을 구속할 수 있어 인신의 자유 등 기본권과 영장주의를 침해해 위헌"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지난 2월 병사들을 구금하는 영창(營倉) 제도를 폐지하고 군 인권 자문 변호사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2019∼2023 국방 인권정책 종합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방부의 약속과 달리 영창제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사진 국방부 홈페이지


◆헌법상 영장주의 위배 =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구속을 위해서는 검사 청구에 의해 법관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군인사법은 "영창은 징계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인권담당 군법무관의 적법성 심사를 거친 후 징계권자가 처분한다"고만 규정할 뿐, 영장에 대한 언급이 없다. 천 변호사는 "영장 없는 구속은 없어야 한다"며 "영창은 최대 15일까지 가능한데 군 판사에 의한 영장발부가 규정돼 있지 않은 것은 사전 구속영장 발부와 관련된 구속제도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군 영창제도가 헌법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는 법원 판단도 있다. 지난해 5월 서울고등법원은 10일간 영창처분을 받은 A씨가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 결정에서 영창 처분에 법관 관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징계권자는 영창처분을 함에 있어 인권담당 군법무관의 적법성 심사의견을 통보받은 후 그 심사의견을 존중하는 처분을 해야 하지만, 인권담당 군법무관은 헌법과 법률의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할 수 있는 권한과 신분이 부여된 법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또 "신체 자유를 직접적·전면적으로 박탈하는 구금에 해당함에도 다른 징계수단으로 소용이 없을 경우 시행되는 보충성 요건이 결여돼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평등원칙에 위배될 소지도 있다. 군인사법은 사병에 대해서만 영창을 징계의 한 종류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위 결정에서 "장교와 부사관 등은 영창이라는 징계가 없고 현재 사병만 영창을 유지하고 있어 평등원칙에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봤다.

2016년 3월 전투경찰 순경에 대한 영창처분을 규정하고 있는 구 전투경찰대 설치법에 대해 헌재는 합헌 4명, 위헌 5명으로 합헌판단을 내렸다. 이정미 김이수 재판관 등은 위헌의견에서 "영창처분은 행정기관에 의한 구속에 해당하고, 그 본질상 급박성을 요건으로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법관 판단을 거쳐 발부된 영장에 의하지 않고 이루어져, 헌법상 영장주의에 위배돼 신체 자유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모호한 영창 사유 = 군인사법상 영창 사유가 모호하게 규정돼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군인사법은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한 경우와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무를 게을리 한 경우" 영창처분이 가능하다고 규정했다. 천 변호사는 "군형법상 군용물 탈취, 군무이탈, 항명 등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 한해 영창처분이 가능해야 한다"며 "모호한 기준으로 신체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18일 병사 B씨는 영창처분을 받았다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김호철 변호사)에 조력을 요청했다. 민변은 19일 대리인단을 구성해 영창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영창처분에 대한 집행정지를 신청해 현재 심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민변은 "국방부는 2019~2023 국방 인권정책 종합계획을 통해 군 영창제도가 인권을 침해하는 제도임을 인정하며 폐지계획을 발표했음에도 현장에서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안성열 기자 sonan@naeil.com
안성열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