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떠나는 공감·소통여행│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부모-자녀 프로그램

"아이 눈 바라보니 눈물이 … 욕심 내려놓고 내가 변해야겠다는 생각"

2019-12-02 10:48:11 게재

언어로 전달하는 것은 3~7%뿐 … 표정 몸짓 손짓으로 전달되는 소통이 90%

"부모가 먼저 변해야 아이가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큰 아이 담배 끊게 하려고 자주 때린 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깨닫고 나니 자꾸 눈물이 나네요." 부모교육에 참여한 박영주(가명 춘천)씨가 눈시울을 붉혔다.

외씨버선길 따라 오감트레킹을 하는 부모와 아이들. 사진 전호성 기자


29일 경북 봉화군 백두대간수목원에서 '아이와 부모 행복' 숲치유 프로그램을 개최했다. 강원도지역 초등학교 5,6학년 학생과 부모, 멘토 등 53명이 참여했다. 교육부는 올해 '부모-자녀 공감 프로그램'을 총 8회 운영했다. 초기 중2병을 앓는 중학생과 부모를 대상으로 운영하던 프로그램을 초등학교 5,6학년으로 변경했다. 프로그램 효과성을 높이고 예방적 차원으로 운영한다는 취지다. 학교생활부적응이 10년 전 성적비관이나 친구관계에서 '가정불화'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점점 초등학생으로 내려가는 추세다. 교육부 조사에서 가정불화(26%), 처지 비관 등 우울감(18.3%), 성적·학업 스트레스(12.7%)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아이들 변화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 점도 프로그램 운영 개선에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교육부와 위탁기관 설명이다.

엄마랑 붙어야 작품. 사진 전호성 기자

초등학생이라 겉으로 보기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학교와 가정생활 적응에 적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 조기에 털어내지 않을 경우 중고생이 되면 치유가 힘들어지고 갈등의 폭도 커진다는 게 전문 상담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부모-자녀 공감프로그램 핵심은 부모교육과 자녀교육을 분리해서 진행한다는 점이다. 부모와 자녀는 다른 공간에서 각각 교육과 상담을 받는다. 이날 부모교육 강사는 '자녀 마음 읽기'와 '부모됨' 교육을 진행했다. 부모프로그램을 지켜본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자식걱정과 고민이 없는 부모는 없다. 자녀에 대한 과한 기대는 부모-자식 간에 서운함과 소통부재라는 가정의 우환으로 다가온다"며 "작은 행복을 큰 행복으로 일궈나가시기 바란다"고 격려했다.

부모교육 강사로 나선 조순화 '사람인사람 부모교육 상담센터' 대표는 "자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며 "아이들은 행동과 언어로 자신이 요구하는 것들을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관심과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지나친 관심'은 자녀 마음 문을 닫게 만든다고 말했다. 아이가 안심하고 털어놓기 전까지 생활 과정을 무리하게 캐묻거나, 학교에 알릴 경우 아이는 불안감에 빠져든다고 경고했다. 조 강사는 '부모의 인정을 받고 싶은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2시간 남짓 부모교육과 상담을 마친 부모들은 자녀에게 편지를 썼다. 강원도 춘천에서 참석한 최우선(가명)씨는 "우리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 했는데, 그동안 아이가 표현을 하지 않고 혼자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기차여행 중 빙고게임. 사진 전호성 기자


◆"미운 엄마를 용서해주기로 했어요" = 부모들이 교육과 상담에 빠져드는 시간에 아이들은 수목원 대강당 앞 복도에 텐트를 쳤다. 나만의 공간인 '둥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작은 조명을 켜놓고 형형색색의 한지를 찢어 날리며 스트레스를 털어냈다. 이때 신나는 음악이 텐트 둥지를 넘어 수목원에 울려퍼진다. 어른들은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다. 선곡은 아이들이 직접한다. 어준홍 '청소년바로서기지원센터' 운영팀장은 "조별로 '감성터지는 노래 신청'을 받아 즉석에서 선곡을 찾아 들려준다"며 "이는 아이들 스스로 스트레스를 풀고 자존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찢은 한지를 꼬아서 팔찌나 발찌, 꽃다발을 만들었다. 부모에게 전달할 선물이다. 교육을 마친 부모들이 텐트 안으로 들어오자 준비한 팔찌를 부모 손목에 묶었다. 부모는 자녀에게, 아이들은 부모에게 쓴 편지도 교환했다. 잠시 후 텐트 안에서는 적막이 흘렀다. 부모와 아이가 서로 손을 잡고 15분 동안 '눈 마주보기'를 했다. 말을 하지 않고 '눈으로만 대화'를 하는 시간이다. 잠시 후, 눈시울이 붉어지는 부모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아이들도 부모를 따라 눈물을 흘렸다.

박백범 차관이 '언제 가장 행복했는지'를 주제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사진 전호성 기자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행복주머니를 만들었다. 서로 교환한 편지를 찢은 한지 색종이와 함께 하트모양의 봉투 안에 넣고 색실로 마무리했다. 편지봉투 겉에는 '우리가족이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간단하게 적었다. 강당 밖에 설치한 행복나무에 행복주머니를 걸자 불이 들어왔다. 아이들은 부모 손을 잡고 행복나무를 배경으로, 행복한 순간을 남기는 사진을 찍었다. 우진(가명)이는 "가끔 엄마, 아빠가 미운 적이 많았다. 그런데 색종이를 찢고 편지를 쓰면서 다 용서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6학년인 우진이는 노트에 자살에 대한 생각을 자주 썼다. 이를 상담교사가 알게 됐고, 춘천 소아정신과에서 심리치료를 받는 중이다.

수목원 주변 문수산 산책길을 따라 오감트레킹도 했다. 외씨버선길로 소문난 이 길은 해발 600미터로, 숨을 깊게 들여 마시자 신선한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아이들은 부모 손을 잡고 걸었다. 수목원 주변은 봉화군 춘양면으로, 금강소나무 군락지로 유명하다. 숲해설가 설명에 귀를 기울이거나 수첩을 꺼내 적기도 했다. 소나무 신갈나무 층층나무 생강나무 함박꽃나무 산수국 산옥잠화 낚시제비꽃 등 해설가 설명을 꼼꼼하게 적었다. 아이들은 "기차를 타고 오면서 나무이름 빙고게임을 한 덕분에 이름이 쉽게 귀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부모는 부모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숙소를 정하고 하룻밤을 보냈다. 서로 소통하고 충분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 것. 그 결과, 아침식사 풍경이 달라졌다. 아이들은 하룻밤 만에 친구가 됐고, 함께 식사를 하거나 재잘거리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부모들도 같은 조끼리 식사를 하면서 아이들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아침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부모와 미술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주제로 흰 셔츠에 그림을 그리거나, 천을 덧대고 바느질로 작품을 완성했다. 강원도 철원에서 참석한 지민이는 엄마 셔츠와 세트가 되도록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했다. 엄마와 나란히 서자 작은 부엉이 두 마리가 한 가지에 앉아 있는 그림이 완성됐다. 다른 가족들이 박수를 보냈다. 미술시간을 놀이처럼 만들었다는 게 미술강사 설명이다. 아이와 부모들은 자신의 생각을 망설임 없이 셔츠에 그려 넣었다.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이런 재주가 있었네"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박수연 미술치유 강사는 "아이들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며 "소통과 공감은 꼭 말로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녀의 장점을 잘 살피고 칭찬해주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어로 전달하는 것은 3~7%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비언어로 표현한다는 것. 즉 얼굴표정, 몸짓, 손짓 등으로 전달되는 소통이 90%가 넘는다고 설명했다.

숲에서 '부모-자녀' 공감소통 프로그램 운영을 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숲 생태계를 통해 공존과 공생, 배려를 배울 수 있다는 게 천미아 청소년바로서기지원센터장 설명이다. "짧은 시간임에도 부모와 자녀간 신뢰와 존중, 의지라는 정서적 관계가 잘 형성된다"며 그동안 프로그램 참여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말했다. 특히, 최근 나타나고 있는 사회양극화에 따른 소외감, 절망감을 치유하는 데 숲 교육만큼 효과성이 큰 게 없다는 것.

2018년도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결과 관심군, 우선관리, 극단적선택 비율이 증가했다. 문제 학생은 학교상담과 관심군 선별에 따라 전문기관에서 치유와 치료를 받지만, 초중고 전체 학생 수에 비하면 미비한 상황이다. 따라서, '학교-가정-사회'가 연계한 치유·예방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교육 활성화와 다양성을 위해 숲학교 설립도 제안했다. "숲학교(숲 프로그램)가 아이들 자존감을 높이고 사회면역체계를 만드는 효과가 뛰어나다"며 "영국과 독일, 캐나다의 경우 '숲 학교'를 국공립정규교육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부모-자녀' 캠프에 참여한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였는지 물었다. 박 차관은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름(백범)을 지어주셨고, 그 이름처럼 살기를 원하셨다"며 "너희 부모님들도 너희들이 태어났을 때 가장 행복했을 것"이라면서 "부모님은 직접 지은 너희 이름처럼, 너희가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신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박 차관에게 부모와 나누지 못한 궁금증을 쏟아냈다.

봉화= 글 사진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전호성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