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본드는 없다? 투자와 투기 구분 무의미
미 고수익채권 시장, 올해 이례적 상승 ... 신용 따른 스프레드 거의 사라져
고수익 회사채를 사고파는 사람들은 ‘정크본드’(junk bonds)라는 말에 화를 낸다. ‘쓰레기같은 채권’이란 뜻이니 좋아할 리 없다. 신용평가기관들은 공식적으로 ‘투기등급’ 또는 ‘비(非)투자등급’이라고 지칭한다. 때문에 정크본드는 감정 섞인 표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블룸버그통신 칼럼니스트 브라이언 차파타는 18일 칼럼에서 “간명한 부정적 표현엔 쓰임새가 있다”며 “겁이 많은 잠재적 매수자들은 얼씬도 말라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크본드는 전통적으로 위험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올해 채권시장에 자본이 몰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사실 투기등급이라고 해서 모두 정크본드로 취급해선 안된다는 볼멘소리가 비등하다.
16일 미국 BB등급 사채 수익률은 3.51%였다.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채보다 고작 1.64%p 높다. 매우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AA등급 사채와 비교해도 놀랄 정도다. AA등급인 애플과 버크셔해서웨이, 엑슨모빌, 월마트 채권이 8년 전 이맘때 국채와의 스프레드가 1.64%p였다.
또 1년 전 AA등급 사채 수익률은 3.58%였다. 이제는 9단계나 낮은 BB등급 사채가 그보다 낮은 3.51%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지난해 12월 이후 상황이 많이 변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하던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올해 들어 세 차례에 걸쳐 금리를 낮췄다. 같은 기간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1%p 하락했다. 이에 따라 신용 리스크를 높이면서 수익을 찾아 나선 투자자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BB등급 사채에 대한 무분별한 접근은 시장을 긴장시키고 있다.
투자등급인 BBB채권이 무더기로 하락해 투기등급으로 전락할 경우 1조달러 폭탄이 터질 것이라는 암울한 시나리오도 나돈다. 이런 상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시장은 전혀 아랑곳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BBB등급과 BB등급 채권 금리 스프레드가 고작 0.38%p에 불과하다. 25년래 최저치다. BB등급과 A등급과의 차이는 단 0.91%p, AA등급과의 차이는 1.13%p다. 두 차이 모두 2007년 6월 역대 최저치에 근접했다. 사실 시장 입장에선 투자와 투기의 구분이 무의미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같은 정크본드 광풍이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 이는 거의 없다. 알리안츠 수석 경제자문인 모하메드 엘 에리안은 “시장이 지금처럼 강할 때 투자자들이 보다 위험한 투자에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최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언가의 전주곡이라는 것이다. 정크본드시장의 질 낮은 상품에 투자하는 이들에겐 편안치 않은 어떤 상황이 닥치고 있다”고 말했다.
뱅가드그룹 투자전략 헤드인 조 데이비스도 “요령 있는 투자자라면 금리 스프레드가 줄어들수록 더욱 방어적인 전략으로 가야 한다”며 “불황이 닥치면 금융시장의 침체는 실물경제보다 훨씬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데이비스는 "고수익채권 투자자들은 내년 4.5~5.0% 수익을 기대할 수도 있다. 향후 시장이 평가하는 12개월래 경기침체 가능성이 2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크본드 펀드에서 자금이 유출되는 것을 막아줄 것"이라며 "하지만 투매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일 수 있다. 광범위한 손실과 그리고 자금 인출이 뒤따를 수 있다. 수익을 좇는 것은 건전한 투자전략이 아니지만 2019년처럼 정크본드 시장의 활황세를 경험한 투자자들이 그같은 유혹을 뿌리치는 건 정말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년 불확실성과 잠재적 함정이 가득하다. 2020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차파타는 "정크본드를 '정크'(쓰레기)로 만드는 게 뭘까. 일반적인 대답은 신용리스크가 높다는 것이다. 고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위험한 회사에 돈을 빌려주면서 그 대가를 높게 부른다는 의미"라며 "하지만 이제 투기와 투자의 스프레드가 거의 사라졌다. 오히려 반대 의미로 정크라 부를 수도 있다. 보다 신용도 높은 기업이 제공하는 채권과 비교해 더 좋은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고수익 채권이 광풍이었던 올해에 속지 말라. 광풍의 끝에 서면 정크본드는 여전히 정크일 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