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쟁력 있는 이공계 대학원을 만들자

2020-01-21 00:00:01 게재
송민령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대학원에 합격했다며 설레는 이들을 더러 본다. 예비 신입생들에게 대학원은 원하는 공부와 연구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곳이고, 희망하는 진로에 도움이 될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곳이다. 이 목표를 위해 짧게는 2년 길게는 8년이 넘는 시간과 많은 비용을 투자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연구소와 별도로 이공계 대학원을 운영하는 이유도 예비 신입생들의 목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훌륭한 연구를 수행하거나 연구성과를 사회 각 분야로 확산시킬 과학기술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다. 잠재력을 갖춘 인재를 선별해서 길러내려면 연구소와는 다른 노력과 전문성이 필요하다. 이 추가의 노력과 전문성을 통해 사회에 필요한 지식인을 충실히 길러낼 때, 대학원은 본연의 기능을 잘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대학원에는 인력양성 기관으로서의 책임보다 연구소로서의 책임이 훨씬 더 강조되어 왔다. 연구개발지원은 많은데 비해 교육을 위한 지원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부족한 재원을 연구비에 의존했고, 교수평가도 대부분 연구실적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3명 중 1명 ‘기초능력 교육 부족’

이로 인한 결과는 지난 여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6개 전문연구정보센터와 함께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국내 전일제 이공계 대학원생 1330명 대상) 응답자 3명 중 1명이 연구자로서 필요한 기초능력(논문작성 등)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연구윤리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29%, 연구윤리에 어긋나는 지시를 받는 경우도 27%에 달했다. 이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부실학회 논문 게재율이 OECD 1위라는 사실이 납득될 정도다.

또 응답자의 40%가 행정업무와 장비관리 등 연구활동 외의 잡무가 많다고 답했다. 대학의 연구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행정직원도 교수진이 구해 온 연구비로 고용하는 실정이다. 어느 기관이 직원이 별도로 직원을 고용해서 일을 하게 하나. 대학원생은 등록금을 지도교수가 아닌 학교에 낸다. 대학원생의 고충을 지도교수 책임으로만 돌리지 말고 대학도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대학원이 교육역량과 연구기반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이를 위한 재정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또 대학원생들이 길게는 8년이 넘는 학위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경제적인 지원을 늘리는 한편 학위과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힘써야 한다.

이 조치들은 학령인구 절벽과 이공계 기피로 신음하는 국내 대학원에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입학시점 되돌아간다면 유학” 20%

네이처에서 전 세계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9년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37%가 해외(주로 미국, 유럽)에서 학위를 마쳤고, 해외로 떠난 주된 이유가 ‘모국에 펀딩이 부족해서’ ‘졸업 후 취업할 곳이 부족해서’ ‘모국의 박사학위 프로그램이 질적으로 미비해서’ 순서로 답했다. 앞서 언급한 국내 설문에서도 응답자의 20%가 입학 시점으로 되돌아간다면 현재의 선택을 고수하는 대신 유학을 가겠다고 답했다.

대학원에 합격했다며 기뻐하던 이들의 표정과, 중간에 떠나간 이들, 대학원에서 애쓰고 있는 이들을 다시 생각한다. 대학원이 이들의 역량을 한껏 키워주는 곳이 되기를, 사회에 필요한 지식인을 길러내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