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위탁판매원'도 노동자

2020-02-10 10:54:24 게재

행정법원, 사용자가 구체적 지배

민사재판에선 개인사업자로 판단

행정법원이 백화점 위탁판매원에 대해 노동자로 인정하는 이례적인 판결을 내놨다.

최근 2~3년간 위탁판매원들이 소속 브랜드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줄줄이 패소한 가운데 다른 판단이 나온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합의13부(장낙원 부장판사)는 신발 편집샵 운영업체인 A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 판정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9일 밝혔다.

A사는 신발 유통·제조사 등과 계약을 맺고 백화점에서 편집샵을 운영하고 있다. 편집샵이란 매장 운영자가 여러 브랜드 제품을 모아 판매하는 매장을 말한다. A사는 자체 직원 외에 일부 매장을 위탁 판매 형식으로 매니저들에게 운영을 맡기고 있다.

2013년부터 A사의 백화점 매장에서 매니저로 근무한 B씨는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계약 종료 통보를 받았다. B씨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라며 구제신청을 냈고, 지노위는 물론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부당해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A사는 중노위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이 사건은 A사의 승소로 보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등에서 위탁 판매원들이 퇴직금을 지급해달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한 것이다. 퇴직금을 받기 위해서 위탁판매원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들은 개인사업자로 결론 냈기 때문이다.

대개 회사들은 판매원들과 계약을 하고 일종의 자율성을 부여한다. 일손이 달릴 경우에는 추가 판매원 고용은 '매니저'들에게 위임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받는 수수료로 추가 판매원을 고용하는 것은 회사와 직접 계약한 매니저 몫으로 남겨뒀다. 매장 제품 진열에는 일정 기준을 마련하되 제품 가격에 대해서는 폭리를 취하거나 턱없이 싼 가격에 팔지 못하도록 했다. 휴가도 허락을 받아야 했다.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종전까지 법원은 매니저들이 회사의 지배를 받지 않는 비교적 자율적인 개인사업자로 판단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가 B씨 등 위탁판매원들에 대해 구체적인 지휘나 감독을 해 지배관계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A사는 웹사이트와 단체채팅방에 공지사항을 올리는 방식으로 물품 금액 등을 공지하고, 매니저(위탁판매원)들은 일일 실적, 고객 동향 등을 보고했다"며 "매장 사진을 올리지 않을 경우 A사 직원이 이를 독촉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B씨는 매장 개·폐점 시간에 따른 점포 영업시간이 구속돼 근무했고, 비품이나 원자재, 작업도구 등을 소유했다고 볼 수 없다"며 "또한 2년 넘게 근무한 B씨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라고 밝혔다.

A사는 B씨가 횡령을 저질렀다며 계약 종료 원인이 B씨에게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B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해도 해고 사유가 있기 때문에 계약종료는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의심되는 지점이 있지만 회사 손실을 인정할 증거도 없고, A사가 B씨에게 시정 조치를 취한 적도 없어 곧바로 해고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수사한 결과 B씨를 불기소 처분했던 것도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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