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후손 "자원봉사 못해 유감"

2020-03-19 12:40:28 게재

채소가게는 동전보따리 기부

노인연금 아껴 "대구·경북에"

코로나19로 전 국민적 어려움이 한창인 가운데 독립운동가 후손도 간판 없는 채소가게 사장도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도 하나로 뭉쳤다. 자원봉사에 동참하지 못해 성금으로 대체하거나 가뜩이나 손님이 줄어든 와중에도 취약계층용 마스크 구입에 매출액 10%를 기부하는 등이다.

19일 마포구에 따르면 지난 12일 용강동주민센터에 한 할머니가 찾아와 동장실 문을 두드렸다. 최근 전입해온 양옥모(78)씨다. 그는 현금 50만원과 함께 편지 한 장을 건넸다. 언니가 병을 앓고 있어 간병이 필요한 상황이라 자신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자원봉사에 참여하지 못하니 봉사자들을 위한 성금을 기부한다는 내용이었다.

동주민센터에서 파악해보니 양씨 역시 형편이 넉넉지 못한 기초생활수급자였다. 그의 부친은 일제강점기 비밀공작 활동 등 항일 투쟁운동을 전개했던 독립운동가 양승만 선생으로 밝혀졌다. 할아버지 양건석 선생 역시 3.1운동때 직접 만든 태극기 100여장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했던 독립운동가다.

인근 망원1동에서도 기초생활수급자 주민이 코로나19 사태 해결에 보탬이 되고 싶다며 현금 50만원을 동주민센터에 기부했다. 형편을 잘 아는 공무원이 돌려줬지만 전화나 방문 상담에서 재차 기부의사를 표명했다. 마포구 관계자는 "1인 가구 기초생활수급자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건 맞지만 코로나로 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며 돌려받는 걸 거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지정기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구로구 수궁동에는 작은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주민이 보따리를 실을 손수레를 끌고 찾아왔다. 지난 1년간 모은 동전 50만2880원이 들어있었다. 주민은 "코로나로 고객이 줄어 어렵지만 평소 자주 찾고 반갑게 인사하는 이웃들에 보답하고 싶다"고 뜻을 밝혔다. 조은령 수궁동장은 "간판도 없는 허름한 채소가게를 운영하고 계시는 분"이라며 "동전 보따리에 동주민센터가 숙연해졌다"고 말했다. 

구로1동에는 앞서 12일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이 현금 17만원을 전달했다. 여성에 따르면 올해 말에 쓰려고 그간 모았던 돈인데 마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 조금 빨리 정말 쓰고 싶은 곳에 쓰려고 내놓았다. 그는 또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웃들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동작구 상도1동에선 바보스치킨 숭실대점을 운영하는 박기현 대표가 코로나19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매출액 10%로 마스크를 구입해 동주민센터에 지속 기부하기로 했다. 한부모가정과 취약계층을 위해 월 50마리씩 치킨 간식도 기부한다. 박 대표는 지난 13일 보건용 마스크 500매를 우선 기부했다. 구는 저소득 주민 가운데 신장투석 신장·간이식 환자 등 35명에 14매씩 전달할 예정이다.

인근 신대방2동에서는 평소 동에서 후원을 받고 있는 기초연금 수급자 이 모(76)씨가 그간 모은 30만원을 대구·경북지역 환자와 의료진 봉사단체를 위해 써달라며 보내왔고 상도3동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주민이 역시 30만원을 전달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주민들의 따뜻한 움직임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감사를 전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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