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이기적 유인원
"우리는 어떻게 사라질 것인가"
1758년 스웨덴 생물학자 칼 린네가 현생인류인 아프리카 유인원에게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뜻의 라틴어 학명 '호모 사피엔스'를 붙였다. 이후 인간들은 자신들이 특별하게 설계됐으며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 많은 특권을 받았다고 믿었다. 린네 또한 우리가 영리한 존재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두 발로 곧게 서서 다니며 도구까지 쓸 줄 알았던 이들의 발전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나날이 영토를 넓혀 가더니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지구 전체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인간은 우월감에 빠져 과학적 성취가 더 밝은 미래를 만들고 있다는 끔찍한 고정관념을 지니게 되었다. 급기야 '호모 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신의 영역까지 도전하고 있다.
바닥 드러낸 인류의 집단지성
미국 오하이오주 마이애미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는 니컬러스 머니 교수가 이 오만함이 인류 종말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름표를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인류의 집단지성은 바닥을 드러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이름은 이제 어불성설이다. 저자는 고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나르키소스를 인간에게 빗대어 우리에게는 '호모 나르키소스' 즉 자기중심적 인간이라는 학명이 더 맞는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책에서 인간 우월주의에 관한 판타지가 사실이 아님을 과학과 인류학의 관점에서 증명한다. 지구가 우주에서 평범한 공간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부터 인간 몸속의 미생물 출처, 인체의 작동방식 등을 통해 인류가 그다지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려준다. 인류는 지구의 다른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고대 바다의 해면동물에서 태동했다. 심지어 유전학적으로는 버섯과도 큰 차이가 없다. 그의 말처럼 사실 인간은 "무기질 뼈대에 지방 덩어리를 매끄럽게 펴 바른 뒤 단백질 끈과 전깃줄을 동여매고, 풀무로 가슴 속에 공기를 불어 넣고 정교한 배관을 통해 영양분과 물을 공급한 후에 내장을 집어넣어 질긴 가죽으로 감싼 것"에 불과하다.
2001년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는 "미개한 선충이 지닌 약 2만개의 유전자가 1.5배, 어쩌면 1.3배만 증가해도 인간이 되기에 충분할 수 있다는 상당히 자극적인 사실은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세기에 틀림없이 과학 철학 윤리 그리고 종교 문제를 촉발할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인류의 종말까지 모두 10개 주제에 걸쳐 인간이 사실은 별 볼 일 없는 존재임을 지적한다. 특히 자신들을 종말로 이끌고 있는 기후변화에 맞서 싸울 능력이 없거나 싸울 마음조차 없다는 속내를 드러낸 인류를 '호모 나르키소스 : 지구 생물권을 완전히 파괴해 자신을 멸종의 길로 몰아넣은 아프리카 출신 유인원의 한 종'이라고 명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주의 축복 과용이 파멸로 이끌어
우리는 태양으로부터 적절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덕분에 너무 뜨겁지도 않고, 또 너무 춥지도 않은, 축복받은 골디락스 행성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축복을 지나치게 과용한 것이 인간 종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다.
사스와 메르스, 에볼라에 이어 코로나19까지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전염병 팬데믹은 재앙의 전조 증상일지 모른다. 인간이 지구 환경을 바꾸어 멸망의 시점을 앞당겼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오존층이 뚫리는 바람에 지구는 빠르게 더워지고 있다. 산성화된 바닷물이 플라스틱으로 빠르게 뒤덮이고 있다. 산업 활동으로 공기가 오염되고 멈추지 않는 삼림 벌채로 사막화가 일어나 초원과 호수가 줄어들고 있다.
2050년 즈음에는 100억명의 인간들이 남아 있는 자원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툴 것이다. 머지않아 극단적인 기후로 인해 사건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다. 농작물은 가뭄에 말라 죽을 것이며 어장이 파괴되고 야생동물의 개체 수는 계속해서 감소할 것이다. 곤충도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식물 종이 멸종하고 생태계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생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포심에 몸서리칠 것이다. 특히 장기간 진행된 해수면 상승으로 해안선이 변화할 것이다. 남극대륙의 빙하가 쪼개지고 녹아내려 플로리다와 방글라데시는 파도 아래로 사라질 것이다.
우아하게 사라질 것인가
이기적 인류는 생물권 붕괴에 앞장서며 자신을 궁지에 빠트렸다. 베수비오산 근처에 터를 잡은 탓에 서기 79년 화산재에 파묻힌 폼페이 희생자들처럼 태아 자세로 웅크리게 될지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굴뚝의 연기가 올라갈수록 이러한 결과를 맞이할 가능성은 커진다. 그동안 우리는 농업, 의학, 공학 발전의 축복을 받았다. 과학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수행했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이제 전멸할 준비를 마쳤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안타깝게도 저자는 그저 우아하게 사라지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다만 "아담과 이브는 예정된 길을 걸었다. 우리는 바꿀 수 없거나 바꿀 마음이 없는 항로를 따르고 있다. 하늘이 무너지기 전까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물이 풍부한 지구에서 우리와 함께 고통 받는 다른 존재에게 더 친절하고 인간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해 나간다면 이 모든 것이 기대보다 오랫동안 지속될지 누가 알겠는가?"라고 여지를 남겨준다. 어쨌든 인류는 지금껏 계속해왔던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단호하게 멈추어야만 한다.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이름에 조금이나마 걸맞은 존재로 남고 싶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