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욱 위원장 9개월, 흔들리는 공정거래위원회 ①

경제검찰 공정위, 수장 바뀌니 칼끝도 무뎌졌나

2020-06-22 12:32:29 게재

미래에셋 봐주기·애플에 면죄부 … 비슷한 사건, 결과 달라진 '이유'도 석연찮아

문재인정부 출범 뒤 '대기업 솜방망이 처벌'로 비판받았던 공정거래위원회 위상이 높아졌다. 김상조 위원장 출범과 함께 '을의 눈물을 닦겠다'고 선언하면서 대기업들은 바짝 긴장했다. 일감몰아주기 사건에 대해서는 과징금 부과와 함께 '총수 검찰고발'이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오너 체제의 대기업들에겐 직효를 봤다. 어찌됐건 총수 검찰고발을 피하기 위해 '애매한 관행'까지 없애기도 했다. 가맹점·대리점 갑질 근절에도 손을 대면서 서민들 사이에서 공정위 인기도 높아졌다. 이들의 호소가 높기만 했던 공정위 문턱을 두드리면서 공정위는 때아닌 인력난을 겪기도 했다. 한 때 공정위 신고 건수가 예년의 2배를 넘어섰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4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유통-납품업계 상생협약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하지만 지난해 9월 조성욱 공정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조 위원장이 '혁신성장 지원' 등을 거론하면서 경제검찰의 칼끝이 무뎌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구나 올해 초 코로나19로 직접조사가 어려워지면서 이런 분위기는 더 확산되고 있다. 지난 5월 미래에셋그룹 일감몰아주기 사건 처리결과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일감몰아주기 사건을 처리하면서 '총수 고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플 '자진시정' 수용한 공정위 = 지난 18일 공정위가 애플이 스스로 제안한 개선안에 대해 '동의의결절차 개시'를 수용한 점도 석연찮다.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동의의결 절차는 기업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시정하겠다고 한 내용이 타당한지 공정위 전원회의가 심의해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동의의결 절차를 통과하면 기업은 개선안을 시행하고 공정위는 과거 잘못에 대한 법적 책임을 따지지 않는다.

최근까지 공정위는 '봐주기' 논란을 의식해 동의의결 허용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왔다. 현대모비스·LS·골프존 등의 동의의결 신청은 계속 기각됐다. 그러나 조 위원장 체제로 바뀌면서 잇따라 동의의결 수용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대리점 갑질'의 대명사였던 남양유업에 동의의결을 수용했다. 이어서 애플까지 동의의결을 수용하면서 '칼끝이 무뎌졌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최종시정안 전원회의 통과해야 = 공정위의 이번 결정으로 위법이 명백한 애플에 공정위가 이통사·소비자와 상생하겠다는 각서 한 장에 최대 매출 2%에 이르는 막대한 과징금을 면제해주게 됐다. 애플측은 동의의결이 개시된 이후에도 법 위반 행위를 부인하는 등 시정의지를 내비치지 않고 있다.

동의의결 절차가 개시됨에 따라 애플은 한 달 안에 시정방안을 마련해 공정위에 제출해야 한다. 이후 1~2개월가량 관련 기관·업계 등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도출된 최종안은 전원회의를 통해 확정된다. 만약 최종 절차까지 문제 없이 진행될 경우 애플은 수백억원대 과징금이나, 검찰 고발 등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비슷한 사례를 두고 경쟁당국의 제재가 가해진 바 있다. 지난 2013년 대만 공평교역위원회는 애플에 2000만 대만달러(약 8억2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프랑스도 지난해 애플을 법원에 제소했다.

물론 시정방안이 최종 확정되지 못할 가능성도 남아있는 상태다. 한달 이내에 마련될 자진시정안이 미흡하다고 공정위가 판단할 경우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지시증거 못찾았다? 태광은?" = 미래에셋그룹의 일감몰아주기 사건 봐주기 논란도 현재 진행형이다.

미래에셋 일감몰아주기 사건은 8개월 전 태광그룹 사건과 판박이다. 계열사들을 동원해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이득을 챙기도록 했다는 내용이다. 다른 게 있다면 미래에셋은 회장 소유의 골프장과 호텔에 일감을 몰아줬고, 태광은 김치와 와인을 구입했다는 점이다.

일감 몰아주기 액수는 미래에셋이 3배 넘게 많았다. 미래에셋 계열사들은 430억원대 부당 내부거래를 했다. 태광 계열사들의 내부거래 총액은 141억5000만원이었다.

하지만 공정위는 미래에셋에는 과징금 43억9000만원을 부과하고 박현주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태광에는 과징금 21억8000만원에 이호진 전 회장과 김기유 그룹 경영기획실장, 흥국생명 등 19개 계열사 법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미래에셋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논란에 대해 공정위는 "법 위반 정도가 중대해야 고발하는데, 이 사건에서 박현주 회장은 지시가 아닌 관여를 해 위법성의 정도가 중대하다고 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슷한 사건인 태광의 경우에도 공정위가 이호준 전 회장이 직접 지시한 근거를 찾지는 못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그룹 경영기획실을 통해 계열사들에게 지시한 점만 확인했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공정위가 '해명 꺼리'를 찾은 것이란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경제개혁연대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을 몰아준 미래에셋과 박현주 글로벌최고투자책임자(GISO)를 고발하지 않은 것은 '봐주기' 제재"라고 비판했다.

["조성욱 위원장 9개월, 흔들리는 공정거래위원회" 연재기사]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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