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공자 거리로 내모는 보금자리주택

2020-06-26 15:48:44 게재

LH 분양전환가에 시세 반영

보훈처·서울시 "결국 내쫓는 꼴"

국가보훈처가 보금자리주택 분양가에 시세를 반영한 것을 두고 무주택 국가유공자의 내집 마련 기회를 뺏는 일이라며 반대한 사실이 25일 확인됐다.

보금자리주택은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013년 공급한 10년 임대 후 분양주택으로 당초 계획을 앞당겨 올해 조기 분양전환된다.

서울 강남구 세곡동 보금자리주택 전용 84㎡의 경우 분양전환가가 9억원대로 예상되면서 국가유공자와 장애인 등 현 입주자들이 사실상 길거리로 내몰릴 처지가 됐다.

강남보금자리주택 입주자들은 분양 당시 '저렴한 가격에 내집마련의 기회' '시공과정 합리화 등을 통한 분양가 15% 내외 인하'라고 설명한 내용은 허위·과장광고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LH를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신고했다.

공정위 조사에 국가보훈처는 "2013년 보금자리주택 공급 당시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고 건축비를 낮춰 특별히 저렴한 가격으로 무주택 서민에게 도심과 가까운 주택 구입 기회를 부여하는 매우 특별한 기회로 인지했다"며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공헌에 대한 보은의 성격으로 특별공급 대상자를 엄격히 선정했고, 대상자에게도 특별한 혜택을 주는 것으로 설명했다"는 의견을 냈다.

특히 보훈처는 "이런 의미로 엄격하게 보금자리주택 특별공급 대상자를 선정했는데도 LH가 현재 시세를 기준으로 분양전환한다면 오랜 기간 분양을 준비해 온 유공자들은 다시 무주택자로 내몰리게 될 것이 명확하다"며 "이는 보금자리주택 사업 취지와도 맞지 않고 보훈처가 엄격히 심사해 특별공급한 목적과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도 비싼 분양전환가격에 반대했다.

서울시는 공정위에 보낸 의견서에서 "특별공급은 일생에 1회만 당첨 가능하며 해당 장애인들은 이미 다른 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는 기회를 소진했다"며 "현재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높은 분양가는 분양 당시 장애인들이 가졌던 기대와 신뢰를 저버리는 것으로 보금자리주택 본래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이같은 의견을 접수하고 조사 착수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LH가 보금자리주택 분양 당시 설명했던 '저렴한 가격'이 허위광고인지 결론내는데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분양 당시 분양전환가격에 대한 구체적인 가격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입주자들은 부동산 가격이 치솟은 강남지역 시세보다 낮은 점을 두고 저렴한 가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강남보금자리주택 한 입주자는 "고공행진하는 강남 집값을 기준으로 10~20% 저렴하게 공급한다는 것은 공급 당시 설명했던 저렴한 가격이라는 취지와는 맞지 않고, 그렇게 이해할 사람도 없다"며 "이같은 분양가가 확정된다면 LH가 허위 과장 광고를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LH는 "강남보금자리주택을 분양하면서 어떤 허위 과장 광고도 하지 않았고, 분양전환가격은 법률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선정하는 2인의 감정평가법인이 평가한 것"이라며 "이는 입주자모집공고문과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고 반박했다. LH는 30일까지 감정가격에 대한 이의신청을 받은 후 최종 분양전환가격을 결정할 예정이다.

입주자들은 현재 감정가격으로는 분양전환 신청을 할 수 없다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자 보금자리주택 분양전환에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강남보금자리 입주자를 대리하는 변호사는 "LH가 소득수준 등 까다로운 조건을 걸어 서민들에게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하고도 이후 분양할 때는 돈있는 사람들만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현 정부의 주택정책과도 안맞는 일"이라며 "정부는 공공주택은 물론 민간택지까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는데, 보금자리주택에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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