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독립운동가' 장재성 추모제 열린다

2020-07-03 12:44:27 게재

학생독립운동 이끈 핵심

독립유공포상 번번이 제외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 항일운동인 학생독립운동을 이끈 핵심 인물이었지만 서훈을 받지 못한 비운의 독립운동가 장재성(사진·1908~1950) 추모제가 70년만에 열린다. 학생독립운동은 광주에서 촉발된 1929년 11월부터 전국으로 번진 1930년 3월까지 일어난 항일운동으로 전국 320개 학교, 5만4000여명이 참여했다.

장재성기념사업회(회장 김상곤)는 오는 6일 오전 11시 광주일고 강당에서 '추모제'를 개최한다고 3일 밝혔다. 추모제는 학생탑 헌화를 시작으로 장재성의 생애를 담은 영상 상영과 헌화, 살풀이, 추모사, 추모시 낭독, 추모연주, 유족 인사 순으로 진행된다.

김상곤 회장은 "장재성 선생은 성진회와 독서회를 통해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끌었지만 이념 대립의 역사 속에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서훈대상에서 번번이 누락됐다"며 "이제는 그의 신원을 회복해 역사에서 현실로 모셔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장재성은 1929년 11월에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핵심 인물이다. 자칫 우발적 사건으로 끝날 수 있었던 '나주역 댕기머리 사건'은 비밀결사조직인 '독서회'에 의해 광주 전역으로 확산됐다. 그 독서회의 전신이 1926년 11월 광주고보 재학시절 장재성이 결성한 성진회다. 장재성은 1929년 11월 3일 일어난 광주고보 시위를 직접 지도한 주동자로 지목돼 대구복심법원에서 관련자 중 최고 형량인 4년형을 선고받았다.

장재성기념사업회는 올해 5월 27일 결성 직후 그를 비롯해 일제하 학생독립운동을 이끈 74명의 서훈요청서를 보훈처에 전달했다. 하지만 보훈처는 여전히 '광복 이후의 행적'을 문제삼아 "미 심사대상"이라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유족들도 지난해 정부에 독립유공자 포상심사를 신청했지만 보훈처는 같은 이유로 포상심사를 보류했다.

보훈처가 밝힌 '행적 이상'은 그가 해방정국에서 여운형 선생의 건국준비위원회 전남지부 조직부장과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 전남대표롤 맡아 활동한 사실을 말한다. 분단에 반대한 그는 세차례에 걸쳐 남과 북을 오가다 1948년 검거돼 징역 7년형을 언도받기도 했다. 그는 광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1950년 7월 한국전쟁 와중에 정식 재판 없이 이승만정권에 의해 총살당했다.

그는 이런 공적으로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인 1962년 건국공로훈장 대상자로 결정됐지만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다. 2005년 3.1절 당시 여운형 등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54명에 대한 포상이 이뤄질 때도 마찬가지 이유로 빠졌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독립운동의 범위는 1945년 8월 14일까지"라며 "해방 이후의 잘잘못을 이유로 서훈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그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최근 지역사회에서는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기 어렵다면 한국전쟁 시기에 국가공권력에 의해 정식 재판없이 학살당한 진실을 규명해 그의 명예를 회복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장재성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이번 추모제를 계기로 독립운동가에게 주는 독립훈장을 신설하는 내용의 상훈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범택 기자 durumi@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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