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용주들의 공통점, 노동자 집단행동에 대한 극심한 반감"

2020-07-06 13:29:02 게재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미국 노동자들은 어떻게 착취당했나" 에서 이어집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BBW)는 "각기 다른 수많은 업종의 미국 고용주들을 하나로 묶는 힘은 노동자의 집단행동에 대한 극심한 반감"이라고 지적했다.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라네틱스'의 간부들은 2년 전 노동자들이 직장 내 각종 문제를 논의하는 것을 막고, 일자리를 동유럽으로 외주할 수 있다는 식으로 압박했다. 그러자 프로그래머들은 노조가입 신청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신청서를 제출하고 1주일 뒤, 라네틱스는 모든 미국인 프로그래머를 해고했다. 그리고 회사는 노동자들이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 낸 진정을 해결한 뒤 회사명을 '윈모어'로 바꿨다.

노조들은 주당 40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파업 등으로 고용주를 위협할 수 있다. 하지만 고용주들은 수십년 동안 반격하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노조와해 분위기를 만들었고, 이를 장려했다. 레이건은 1981년 파업중인 항공교통관제소 직원들을 해고했다.


미국엔 근로권법(Right-to-work Act)이 있다. 이는 노동조합 가입과 노조 회비 납부를 강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미국 노동법은 과거에 모든 노동자는 노조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고 회비를 내도록 규정해 왔지만 1947년 노사관계법 '태프-하틀리 법'이 제정되면서 이같은 '유니언 숍'(union shop)을 불법으로 규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각 주정부에 부여했다.

또 노동권을 지킨다는 취지의 NLRB는 솜방방이 수준의 처분권만 갖고 있다. 따라서 각 기업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단기간 투자는 노조를 조직하려는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이다. 미국에선 노동자를 설득해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하거나 분쟁 기간 노동자를 감시하는 일을 맡는 노사관계 컨설팅업이 성황이다. 노사관계 컨설턴트들은 고객사의 이름을 밝힐 의무가 없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BBW)가 연방정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얻은 자료에 따르면 펩시콜라에서 펫스마트 등 굵직한 기업들이 반노조 컨설팅을 받고 있다.


지난 10년 간 보잉사에서 노사분쟁이 있었다. 한때 미국 노조의 본부 역할을 했던 보잉사였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2010년 보잉사의 워싱턴주 공장에서 연속적인 파업이 벌어졌다. 최고경영진은 파업으로 인한 조업중단 때문에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새로운 생산설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보잉사가 2014년 보다 많은 생산시설을 워싱턴에서 빼내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하자 '국제정비사협회'(IAM)는 퇴직연금 적립액을 동결하겠다는 양보안에 서명했다. 그리고 보잉사 노조는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에서 노조원을 늘리는 데 고전했다. 이곳 경영진과 당시 니키 헤일리 주지사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쳤다. 헤일리 주지사는 이후 보잉사 이사가 됐다.

2017년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에서 노조결성 운동이 벌어지자 보잉사는 지역방송국과 옥외광고판에 반노조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2018년 이곳에서 벌어진 노조결성 투표에서 찬성의견이 더 많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NLRB 위원들은 이를 뒤집었다. 보잉사는 강성 노조결성 주도자 5명을 해고했다. 그에 대한 NLRB 진정은 현재까지 계류중이다. 보잉사는 "보복이 아니다"라며 "5명의 노동자들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회사의 안전·복무 정책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2011년부터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IAM 활동가 크리스 존스는 "5명의 해고 이후 사우스캐롤라이나 노동자들은 직장 내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에 주저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면서 노동자들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보잉사는 최근 미 전역의 공장에서 10%의 인력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보잉사는 성명서에서 "해고 결정은 신중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보잉사의 워싱턴주 공장에서는 노사합의에 따라 연장자를 중심으로 해고 리스트를 만든다. 하지만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에선 다르다. 존스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공장의 노동자들은 문제 제기를 꺼리거나 두려워한다. 해고자 명단에 오를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며 "이곳에서는 노동자의 근평점수를 매기는 데 있어 사실 정해진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연방법에선 반노조 컨설턴트를 고용한 기업의 이름을 일부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보고되지 않는다. 이런 컨설턴트들이 회사 간부를 상대로 반노조 활동 방법을 전수하는 계약은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등의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BBW의 정보공개 청구 자료를 보면 미국 기업들의 노조와해 시도가 얼마나 일상적으로 벌어지는지 알 수 있다. 보건의료 부문에서는 호스피탈코프오브아메리카와 앨버트 아인슈타인 헬스케어 네트워크, 시더스-시나이 헬스시스템, 굿 사마리탄 호스피탈 등이 있다. 식음료기업에는 켈로그와 레드불, 기라델리초콜릿, 블루에이프런 등이 있다.

소매기업들엔 자이언트이글과 삭스가 있고, 성인용품 기업 플레져체스트도 리스트에 올라 있다.

또 호텔업계에는 에이스호텔과 벨라지오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호텔 카지노, 트럼프 인터내셔널호텔, 엔터테인먼트리조트 등이 있다.

미국의 노동법은 애초부터 많은 노동자를 배제한 상태에서 시작됐다. '전국노동관계법'(NLRA)이 규정한 노조결성 권리는 농업과 가사노동 종사자(요리사·가정부·집사 등)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기타 노동법들은 △15인 이하 사업장 △장애인 노동자 △팁을 받는 노동자 △재소자 △영화관 종사자 △10대 등에 예외를 둔다.

NLRA는 또 '관리자'(supervisors)로 분류된 범주의 노동자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고용주들이 간호사와 대학교수, 독립계약사업자(independent contractors)를 이 범주에 묶는다. 독립계약사업자들은 운전사와 요리사, 교사, 무술가, 비디오게임 개발자, 주택 청소부, 케이블 설치사, 스트리퍼 등이다.

킴 쏜턴도 독립계약사업자다. 집집을 방문해 '홈픽스'사의 맞춤형 리모델링을 홍보하는 일을 한다. 집안 곰팡이를 지적하며 내부수리 서비스를 권유한다. 쏜턴은 워싱턴D.C의 지하철 광고를 보고 홈픽스에 호감을 느꼈다. 광고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해도 전일제처럼 보수를 준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전일제로 일했지만 보수를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가 방문한 가정들이 홈픽스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쏜턴을 비롯한 직원들은 회사를 고소했다. 최저임금 이하의 보수를 지급했고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했다는 이유에서다. 회사측은 유색인종들에게 빈민촌을 방문하도록 했다.

최저임금 보장 없이 노동자를 독립계약사업자로 분류하는 홈픽스는 제기된 혐의를 부인했다. 원고들은 홈픽스가 고용주처럼 활동을 통제했다고 지적했다. 의무적으로 복장을 입었고, 무보수 정기적인 노동훈련을 받았으며, 겸업금지 계약서를 썼다고 했다. 그리고 근무시간을 엄격하게 통제받았다.

NLRA의 맹점은 더 악화되고 있다. 노동자에 대한 기본권이 부족한 산업부문이 날로 확산되면서다. 재가보호 노동자 숫자는 2008~2018년 2배 이상 늘어 현재 약 230만명에 달한다. 2028년엔 130만명이 추가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더욱 고령화되면서 재가보호 시장이 커지고 있다.

준 바렛은 플로리다주와 뉴저지주에서 18년 동안 아이들과 노인들을 대상으로 재가보호 노동을 하고 있다. 그는 자메이카 출신이지만 동성애 학대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했다. 그는 "고용주들은 우리를 중시하지 않는다"며 "그들은 여전히 플렌테이션 농업방식을 고수한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 몸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국가사노동자연대'(National Domestic Workers Alliance) 전임 간부가 되기 전, 바렛은 수년 동안 작업장 내 학대를 견뎠다. 바렛을 고용한 사람들은 그를 손으로 더듬거나 밀치고 인종차별적 조롱을 일삼았다.

미국 법원도 노동자들에겐 별 다른 위안이 못된다. 지난 20여년 간 연방대법원은 각종 노동관련 판결을 내렸다. 판결에 따라 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근무를 마치고 길게는 1시간 동안 보안점검을 받아야 한다. 당연히 이 시간은 무보수다. 노동자들은 또 집단소송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라는 회사측의 압박을 강제당하고 있다. 이 역시 합법으로 판결났다. 기업들은 또 무등록 노동자들을 고용하다 불법적으로 해고해도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다.

반독점법인 셔먼법은 불법 독점시장을 막는다는 취지였지만 이제는 최저임금을 올리려는 독립계약사업자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2018년 연방항소법원은 '우버'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을 지지하는 시애틀법원의 판결을 뒤집었다. 이유는 가격담합을 막는 셔먼법과 충돌한다는 것이었다.

우버나 리프트와 같은 기업들은 그같은 법원 판결로 가장 큰 혜택을 본다.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지난해 '노동자의 의무가 기업의 일상사업 내에 있는 것이라면 이들을 계약사업자로 간주할 수 없다'는 내용을 결의했다. 그러자 우버는 "우리의 사업 내용은 기술이고 애플리케이션으로, 운송수단이 아니다"라며 자사의 운전자들이 여전히 독립계약사업자들이라고 주장했다.

BBW는 "하지만 우버의 애플리케이션은 중앙관제센터에 있는 차량배치 담당자처럼 운전사들을 배치한다. 또 우버는 고용한 운전사들의 명단을 '영업비밀'이라며 비공개한다. 우버의 노동자들은 전일제로 일한다"고 지적했다.

법적으로 고용-피고용이 아닌 이러한 관계는 미국의 모든 산업계로 확산됐다. 하청계약자들은 월마트와 아마존 창고에서 상품을 운송하는 것은 물론 언론사 팩트체킹까지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은 11만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지만, 계약사업자들은 직고용 노동자 수를 뛰어넘는다. 이 지점에서 노동자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

미국 브랜다이스대학 헬러 사회정책경영대학원 학장인 데이비드 웨일에 따르면 기업 경영진들은 주주에 대한 단기적 보상을 높이기 위해 일상의 사업활동을 가능한 한 외부사업자들에게 떨어내려 한다. 장부상에서 책임과 보수를 줄이는 것은 물론, 계약 파견직원 기업들끼리 경쟁을 붙여 저가로 인력을 공급받기 위해서다.

구글에서는 인력관리팀과 자율주행 시험팀이, 애플에서는 지도 애플리케이션과 번역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팀이,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는 그래픽 디자인 개발과 오류 테스트팀 등이 계약직원들로 구성돼 있다. MS 오류 테스트팀에서 일하던 수십명의 직원들은 2014년 워싱턴주에서 노조를 결성했다. 그들은 MS 없이 노사관계를 협상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했다. 그들의 직접적 고용주인 '라이언브릿지 테크놀로지'는 2년 뒤 팀 전체 직원을 해고했다. 2018년 오류 테스트팀의 소규모 노조는 NLRB에 낸 소송을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일부 금전적 보상을 받는 대가였다. 노조 창립자인 필립 바우처는 "우리는 부스러기였다. MS에게 노조란 단지 신발 속에 끼어들어간 작은 돌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MS는 성명서를 내 "보복적 해고의 책임은 법적으로 MS가 지는 게 아니다. 라이언브릿지와 그 소속 노동자들 간의 문제"라고 말했다.

계약노동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얼굴을 알리고 있다. 수많은 미국인들이 자가격리 생활을 하면서 식음료 배달 서비스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배달앱 '인스타카트'는 두달 만에 고객을 18만명에서 50만명으로 늘렸다. 시애틀 시장은 6월 26일 '식음료 배달기업들은 직원들에게 배달 1건당 2.50달러를 추가 지급해야 한다'는 법에 서명했다. 인스타카트는 즉각 소송했다. 해당 법이 배달서비스 기업들의 적당한 이익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글로리아 마추카는 휴스턴시에 있는 맥도날드 매장 2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그는 이번 어머니의 날(5월 두 번째 일요일) 6명의 자녀들을 품에 안아보지 못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코로나19 확진을 받아 그 역시 2주간의 자가격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20년 동안 2곳의 맥도날드 매장에서 1주일 60시간이 넘게 일했다. 하지만 어느 매장도 시간당 9.25달러, 8.25달러를 보장해주지 않았다. 두 매장의 매니저들은 마추카에게 "맥도날드는 병가를 보상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전역에서 맥도날드 노동자들이 소송을 제기하거나 시위에 나섰다. 마추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이다. 마추카는 "코로나19 초기 개인보호장비 지급이나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등 매장의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미흡했다"며 "매니저들이 유급병가를 거부하면서 보건 리스크를 증대시켰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맥도날드 노동자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확산시키거나 생계에 필요한 소득을 박탈당했다.

맥도날드 측은 5월말이 돼서야 마추카에 자가격리에 보상하기로 했다. 뉴욕 상원의원 커스틴 질리브랜드가 페이스북에 맥도날드에 대한 항의글을 게시한 직후였다. 마추카는 "맥도날드와 매니저들, 점주들을 보며 깨달은 것은 '그들은 우리 노동자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그들에게 우리는 중요하지 않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미국 기업들은 법적으로 유급병가 제공을 거부할 수 있고 종종 거부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같은 문제가 낱낱이 드러나자 미 의회는 이를 고치겠다며 부산했다. '코로나19에 따른 가족 긴급대응법'이 3월 통과됐다. 코로나19에 따른 병가에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법이다. 하지만 예외조건이 너무 많다. 대기업이나 소기업, 헬스케어 기업 노동자가 아니어야 한다. 또 응급 의료요원이 아니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유급병가가 가장 절실한 수많은 필수노동자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UCLA 노동센터와 노동자이익 옹호단체인 '국가고용법프로젝트'가 2013년 캘리포니아주 데이터를 기반으로 연구한 결과, 미국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규정보다 덜 받는 보수의 총액은 1년에 150억달러나 된다. 많은 기업들이 마땅히 주어야 할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다. '임금 절도'다. 150억달러는 미 연방수사국(FBI)이 추적하는 범죄자의 숨겨진 재산의 총가치와 맞먹는다. 못받은 최저임금을 받으려 해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훔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회사명과 조직구성을 바꾸는 등의 전략으로 법적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이런 허점들을 규제하는 '연방직업안전보건청'(OSHA)의 검사관 수는 올해 862명에 불과하다. 수십년래 최저치다. 이 인력을 갖고 진정이 제기된 각 사업장을 1번씩 조사한다고 하면 무려 165년이 걸리게 된다. OSHA는 결국 지난 4월 13일 "노동자들이 코로나19와 관련해 제기하는 진정을 비공식적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고용주에게 자체조사를 시행하라고 요청하겠다는 의미다. OSHA와 주정부의 관련기관들은 현재까지 2만건 이상의 코로나19 관련 진정을 접수했다.

OSHA는 현재까지 코로나19 관련 진정 수천건을 기각했고, 단 한 건만 인용했다. 직원들이 코로나19 확진으로 병원신세를 진 정보를 늑장 보고한 기업에 대해서다.

미국 최대 곡물회사 카길사의 육가공 노동자들은 "감독자들이 코로나19 감염 문제를 논의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미국의 대표적인 슈퍼마켓 체인 '세이프웨이'의 한 창고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코로나19로 숨졌다. 유족들이 제기한 소송문건에 따르면 회사측에서는 창고 노동자들에게 마스크나 장갑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또 월마트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이 코로나19 증상을 보일 경우 회사 근무복이 아니라 자신의 옷을 입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카길사는 "노동자의 건강 관련 정보는 사적이기 때문에 논의를 금지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세이프웨이는 "노동자 건강은 우리 기업의 최고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월마트는 성명서에서 "공공보건 전문가의 지도를 충실이 이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BBW는 "미국은 현재의 상황을 맞을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며 "다른 부유한 선진국들은 미국과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맞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노동법 개혁 어젠다는 민주당이 백악관과 의회를 접수할 때마다 제기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민주당이 약속을 이행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지난 2월 민주당이 우세한 미 하원은 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조 바이든도 지지한 법안이다. 노동자 탄압에 악용되는 근로권법을 폐지하고 집단소송 포기 강요와 경영진의 반노조 모임, 노동쟁의 참여자의 해고 등을 막겠다는 것을 목표로 한 법이다. 또 노동자에 포함되는 범주를 크게 확대하고 NLRB에 기업들을 처벌할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 경영진들이 법을 어겼을 때 개인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지난 1월 하버드대 로스쿨은 노동 활동가와 학자들로 구성된 워킹그룹이 1년 간 논의한 결과를 발표했다. 결론은 미국의 노동법을 백지상태에서 전면 재검토하자는 것. 구체적으로 해고자유원칙에 기반한 임의고용을 폐지하고 미국 내 모든 사업장에서 노동환경을 점검할 사람들을 선거로 선출하며 유럽처럼 산업별 노사협상을 도입하자는 내용이다.

워킹그룹은 NLRA에 내재된 결함 중 하나로, 단체교섭권이 노조결성을 쟁취한 개별회사로 제한된다는 점을 들었다. 때문에 경영진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노조를 허용해선 안된다며 노동자와 죽기살기로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운동가들은 때로 인상적인 승리를 쟁취하기도 했다. NLRB에 기대기보다 기업의 평판을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썼다. 그 결과 세계적 축산가공 업체 '스미스필드 푸드'와 같은 기업에서 노조가 결성되기도 했다.

친노동 성향의 주와 지자체의 도움도 있었다. 재가서비스 노동자와 공항서비스 노동자들이 일부 주에서 노조를 결성했다. 공립학교 교사들도 민주당 시장과 공화당 주지사들에게서 양보를 얻어내곤 했다.

하지만 미국 노동계의 전반적인 하락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노조와 노동운동에 대한 법원과 워싱턴 정가의 적대적인 입장이 있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 재임시절, 미국 노동법을 바꾸려는 많은 노력들이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 노동총연맹 산업별조합회의'(AFL-CIO)는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에 애처로운 광고를 내기도 했다. 광고 문안은 '미국 노동조합이 파괴되길 원하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일부 노조지도자들의 수동성과 부패, 편견 역시 미국 노동운동 쇠락에 일조했다.

현재 미국 노동운동가들 사이에는 2가지 입장이 대립한다. 노조결성 운동을 부활시켜야 법적 체제를 바꿀 수 있다는 의견과 법적 체제를 먼저 바꿔야 노조가 부활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각 편의 주장은 나름의 일리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미국 작업장을 실시간으로 바꿔놓고 있다. 노동자들이 더 가난해지고 고용주들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행동하자는 목소리가 사업장 내에서 높아지고 있다. 이전같으면 보복이 두려워 집단행동에 나서지 못했을 터였다.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는 창고와 육류가공공장, 패스트푸드 식당, 병원 등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존재는 종종 잊혀졌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이들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 사회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노동자들이 필수적이라는 공감대 덕분이다. 이런 상황은 더 큰 문제들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지는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 의회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유급병가를 왜 일부 기간, 일부 노동자를 대상으로만 보장하는가',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보건안전 문제를 제기한 노동자들이 왜 해고돼야 하는가' 등이다.

BBW는 "코로나19로 인한 대량 해고에 맞서 노동자들이 '다시 일자리로 돌아가겠다', '해고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집단 불복 움직임을 벌인다면, 상황이 크게 변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아마존처럼 거대한 힘을 가진 기업도 여론의 향배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4월 아마존 창고에서 근로조건 향상을 요구하다 해고된 블루칼라 노동자 크리스 스몰스, 스몰스의 주장에 동조하며 회사측에 항의하다 해고된 화이트칼라 노동자 에밀리 커닝햄 사례에 대해 동료 기술 노동자들이 하루에 걸쳐 병가투쟁을 벌였다. 일주일 뒤 선임 엔지니어이자 부사장인 팀 브레이가 아마존의 처사에 실망했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100만달러 이상의 주식보상 등을 포기했다.

그는 지난달 노동운동가들과의 화상회의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는 동료들에게 개인적으로 엄청난 격려를 받았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주 법무장관은 아마존 노동자들의 병가투쟁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상원의원들은 아마존 측에 보복해고 여부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고 있었다.

해고된 커닝햄은 "아마존의 해고 결정으로 아마존 내 행동주의자들의 결의는 더 단단해질 것"이라며 "결국 보복적 해고는 역효과를 낳는다. 한 명을 쳐내면, 5명의 사람들이 그같은 요구와 항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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