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미국 디지털매체 공멸 기로

2020-07-15 11:52:49 게재

FT "올해 흑자 기대했지만 또 인수합병 회오리" … 기업들, 경기침체에 구글·페이스북 등 플랫폼에 모여

수년 동안 비용 절감과 인수합병, 대량 해고와 실적 악화 등을 겪은 미국의 디지털매체들은 올해야말로 흑자 전환의 호기라고 판단했다.

'버즈피드'나 '바이스 미디어' 등 벤처캐피털이 지원하는 매체들은 군살을 빼고 올해를 맞이했다. 디지털뉴스 시장이 성숙해지면서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었다.

버즈피드 투자자이자 '그룹나인미디어' CEO인 벤 레러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최고의 입지에서 올해를 맞이했다. 소수의 매체들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겠다 느낄 정도로 충분하게 덩치를 키웠다"고 말했다. 그룹나인미디어는 라이프스타일 전문매체 '스릴리스트'와 동물 전문매체 '더 도도'의 소유기업이다.

그리고 나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쳤다. 계획은 엉망진창이 됐다. 디지털매체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와 비슷한 광고시장 환경에 직면했다. 레러 CEO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나에서 갑자기 얼마나 많은 돈을 잃었나로 질문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올초 버즈피드는 올해 3000만달러 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했다. 현실화한다면 14년 역사상 처음 내는 이익이다. 하지만 현재는 손실을 2000만달러 이하로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레러는 "2016년 창립한 그룹나인미디어도 올해 처음으로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금은 불확실해졌다"고 말했다.

'바이스'는 지난 한해 동안 비용절감에 전사적 노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경쟁매체들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현재까지 상황으로 보면 올해 흑자는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FT는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대학살에서 자유로운 디지털매체는 없다. 뉴욕타임스나 파이낸셜타임스와 같은 전통의 강자들은 구독수입으로 코로나19 위기를 방어한다지만, 디지털매체들은 광고수익에 크게 의존한다. 경기침체기엔 매출 변동성이 더 커진다"고 지적했다.

흐름을 선도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디지털매체들에겐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디지털매체들은 한때 미디어의 미래로 칭송 받았다. 본령인 저널리즘에서도 많은 성취물을 냈다. 하지만 이젠 생존의 기로에서 살 궁리를 강구하고 있다.

미국의 컨설팅 회사인 'FTI컨설팅'에 따르면 올해 디지털매체들의 온라인 광고 매출은 19~23%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3월부터 디지털매체 전반에서 임금 삭감과 해고가 이어지고 있다.

바이스는 150명 넘게 해고했다. '복스 미디어'는 100명 이상을 일시해고했고 독자들에게 자발적인 후원금을 간청하고 있다. 그룹나인미디어는 전직원의 7%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버즈피드는 70여명을 일시해고했고, '쿼츠'는 80명을 해고했다. 디지털매체 '버슬'이 지난해 인수한 '디 아웃라인'은 아예 폐업을 신고했다.

디지털매체 중 수위를 다투는 버즈피드와 바이스는 이미 지난해 직원 15%, 10%를 각각 정리한 바 있다. 그럼에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19에 또 다시 해고의 칼을 빼들었다.

성장 탄력을 받은 디지털 광고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버즈피드와 바이스는 수십억달러의 투자금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페이스북과 구글의 꿈쩍않는 지배력은 디지털매체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그같은 흐름은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현재 구글 페이스북 등 거대 기술기업들이 광고 보이콧에 직면했다고는 하지만, 이들의 1분기 실적을 보면 광고시장의 붕괴를 우려한 투자자들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주요 브랜드 기업들은 TV나 잡지의 값비싼 광고보다는 구글과 페이스북 등 플랫폼 강자들에게로 모여들었다.

디지털매체에서 CEO를 지낸 한 인사는 "날이 갈수록 이 사업을 유지하는 게 어려워진다. 모든 이들이 플랫폼 기업의 디스플레이 광고(배너 광고 등)에 의존하고 있다. 디지털매체들은 시장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살아 남으려면 고객 맞춤형 광고를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네트워크 규모를 키워야 하는데, 이미 시장을 장악한 구글과 페이스북에 대응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하소연했다.

바이스가 여전히 올해 수익을 낼 전망이라고는 하지만, 코로나19가 앗아갈 광고매출은 7000만달러나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바이스는 6억달러 매출에 5000만달러 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흐름을 선도하는 콘텐츠와 밀레니얼 세대에 미치는 큰 영향력 등으로 명성을 쌓은 바이스는 지난해 CEO 낸시 듀벅의 지휘 아래 대대적인 회사 정비에 나섰다. 2018년 창업자 셰인 스미스로부터 지휘봉을 물려받은 듀벅은 긴축재정을 펼치면서 수백명을 해고했고, 동종매체 '리파이너리29'를 인수했으며 자사 투자자 TPG와의 계약조건을 재협상하느라 정신 없이 시간을 보냈다.

듀벅은 "우리는 지난해를 전환기로 삼았다. 상당히 건강한 모습으로 올해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회사 재정 상태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부했다.

하지만 바이스는 샌프란시스코 소재 사모펀드기업인 TPG와 맺은 불리한 계약조항 때문에 좌불안석이다. 바이스가 목표이익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TPG에 주식을 추가로 넘겨줘야 한다. TPG 지분을 사들일 매수자를 찾아보고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코로나19 위기가 닥치기 전에도, 디지털매체들은 생존을 위해 가욋일에 나서야 했다. 바이스는 HBO와 계약을 통해 TV와 영화로 사업을 확장했다. 7년간의 계약은 지난해 종료됐다. 쇼타임과도 비슷한 계약을 맺었다. 바이스는 최근 넷플릭스와 아마존에도 사업 프로젝트를 팔았다.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디지털매체의 총매출에서 뉴스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4가 안된다. 버즈피드는 사업다각화를 위해 맨해튼에 장난감가게를 연 데 이어 월마트를 통해 조리기구를 판매한다. 그리고 뉴스 부문에선 유료구독제를 도입했다.

미디어 분석기업 '뉴소노믹스' 애널리스트인 켄 닥터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그같은 가욋일의 절실함이 더 커졌다. 그는 "디지털매체들은 대체 수익원을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했다. 경기침체는 당분간 불가피하다. 그 누구도 현재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추가적인 인수합병은 불가피해 보인다. 버즈피드 창업자이자 CEO인 조나 페레티는 2년 전 "디지털매체가 거대 기술기업과 싸우기 위해선 합종연횡을 통해 규모를 키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그 이후 많은 매체가 사라졌고 각종 인수합병이 진행됐다. 복스는 엔터테인먼트 매체 '벌처'와 '더 컷'을 보유한 뉴욕미디어를 사들였다. 그룹나인미디어는 생활건강 매체 '팝슈가'를, 바이스는 '리파이너리29'를 인수했다. IT전문 매체 '매셔블'은 미국 대형출판사 '지프 데이비스'에 팔렸다. 미국 10~20대를 위한 온라인 뉴스사이트 '믹'은 아예 사업을 접었다.

믹에 앞서 버라이즌의 온라인 미디어 자회사 '오스', 여성을 위한 온라인 매체 '루키'도 문을 닫았다.

버즈피드는 더 작은 기업으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지만, 페레티 CEO는 회사를 지키겠다는 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독자적으로 회사를 성장시키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바이스의 듀벅 CEO는 "합리적인 내용의 인수합병 거래는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더 많은 기업들이 이미 흔들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인수합병보다는 디지털매체 대표들 간의 제휴를 통해 거대 기술기업에 대한 광고 협상력을 키우는 것이 더 낫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룹나인미디어의 레러 CEO는 "현재의 위기는 벤처캐피털의 자금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걸 일깨우는 경고의 시간"이라며 "코로나19는 많은 디지털매체를 죽이겠지만, 이 위기를 헤쳐나가는 소수의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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