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욱 위원장 10개월, 흔들리는 공정거래위원회 ③

엘리트 인사로 '을의 눈물' 닦을 수 있을까

2020-07-20 12:06:18 게재

국장급 승진 유력한 총괄과장 12명 전원 SKY·행시 출신

승진적체에 비고시 출신 베테랑 사무관 5명 일제히 퇴직

"승진, 보직 등 인사문제 정당·공정한 평가 이뤄져야" 호소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사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과장급 4명, 실무 베테랑격인 비고시 출신 사무관 5명이 공정위를 떠났다. 이들 중 다수가 토로하는 문제가 '인사 불만'이다.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중심, 행정고시 출신에 편중된 '엘리트 인사' 탓에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공정위의 본업은 경제적 약자와 소비자 목소리에 귀 기울여 불공정한 시장경제를 바로잡는 일이다. 기울어진 시장을 심판할 경제검찰이 정작 내부에선 '편중인사'로 홍역을 앓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조성욱 위원장 취임 뒤 '엘리트 편중인사'가 더 심해졌다는 점이다. 공정위 한 내부인사는 20일 "조 위원장이 본격적으로 인사를 한 올해 들어서 서울대 편중이나 비고시 출신 홀대가 두드러지고 있다. 계속 공정위에 몸담고 있어야 할지 고민하는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공정위 직원 미래 불투명" = "퇴임식까지는 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인사발령 통지문 한 장으로 공직을 끝낸다고 하니 인간적인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공정위 위상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고시-비고시 구분 없이 승진, 보직, 교육 등 인사문제에 대한 정당하고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승진 적체문제의 근본적인 개선이 없는 상태에서는 직원들의 미래는 항상 불투명할 것이다."

최근 퇴직한 비고시 출신 과장 ㄱ씨가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 일부다. 표현은 절제했지만, 평생을 공정위에 몸담아 온 '공정위 맨'의 염려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특히 650여명 공정위 조직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실무를 도맡아 처리하는 비고시 출신 직원들은 더욱 허탈하다.

실제 공정위 국장급 12명과 향후 국장급 승진이 유력한 총괄과장급 12명 가운데 비고시 출신은 한명도 없다. 지난 연말부터 연공서열상 과장 승진이 유력했던 비고시출신 ㄴ씨는 올해 승진에서 2번 탈락했다. 내부 불만이 높아지자 7월에서야 턱걸이 승진했다. 서기관 승진의 경우 불만이 더 크다. 지난 연말부터 서기관 승진 순위에 포함됐던 비고시 출신 사무관들이 잇따라 후순위인 고시 출신에 밀려났다.

이런 '비고시 홀대' 분위기는 실무자들의 대거 이탈로 이어졌다. 이달 초 비고시 출신 사무관 5명이 사표를 냈다. 대부분 20년 안팎의 공정위 실무경험을 두루 거친 베테랑들이다.


◆학벌 편중도 심각한 상황 = 이른바 메이저 대학, 이 가운데 서울대 편중도 심각하다. 조 위원장과 전임자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란 점이 이런 논란을 더 키우는 모양새다.

공정위 국장급 인사 12명을 보면 전원 고시 출신이다. 그 중 75%인 9명이 서울대를 졸업했다. SKY 출신이 아닌 국장급은 단 1명일 정도로 편중됐다.

현직 공정위 총괄(선임)과장 12명을 분석해 봐도 그렇다. 총괄과장은 각 국(관)의 선임과장으로 조만간 국장급 승진이 유력한 보직이다. 총괄과장 12명도 전원 SKY-행정고시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 8명이 서울대를 졸업했고 3명은 고려대, 1명이 연세대 출신이다.

조 위원장 취임 뒤 '엘리트 인사' 논란은 최근 '좌천성 인사'가 불거지면서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지난해 총괄과장이었던 ㄷ과장은 최근 인사에서 다른 국의 차석과장으로 밀려났다. 이례적인 인사였다. 하지만 공정위는 ㄷ과장에게 그 '배경'을 따로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ㄷ과장은 서울대 출신이 아니다. 그가 맡았던 총괄과장 자리는 서울대 출신의 입사후배가 차지했다. 익명을 요구한 공정위 관계자는 "ㄷ과장이 업무상 잘못을 했던 것도 아닌데 이례적 인사가 나서, 직원들이 의아해하고 있다"고 내부 기류를 전했다.

◆"인력구조상 불가피한 측면도" = 반면 서울대 출신은 인사상 우대를 받는 경우가 많아 내부 불만이 커지고 있다. 조 위원장 취임 후 국장급 승진자 3명 가운데 2명이 서울대 출신이다. 또 총괄과장을 4명 배치했는데 역시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외부기관 파견근무 중인 ㄹ과장의 경우에는 복귀시기가 늦어지자 아예 총괄과장 한 자리를 비워뒀다. 이례적인 일이다. ㄹ과장도 서울대 출신이다.

공정위 다른 관계자는 "조 위원장 취임 뒤 인사에서 연공서열에서 벗어나 기수 파괴를 시도하고 있다"면서 "시도 자체는 좋지만, 문제는 원칙과 기준 없이 오락가락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직원 다수가 납득하기 어려운 '연공서열 파괴인사'가 오히려 '특정대학 특혜나 비고시·비명문대 출신 홀대 시비'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학연이나 지연. 고시-비고시를 떠나 능력과 인품 등을 엄정하게 평가하는 인사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이미 고시-서울대 출신이 간부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인력구조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 "조 위원장 취임 이후 이런 현상이 특별히 커진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국장급 승진 또는 총괄과장 발탁이 가능한 후보군 자체가 서울대-고시 출신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달라는 설명이다. 공정위는 "인사 문제 판단은 외부에 공개하기 어려운 속사정들이 많이 있다. 여러 측면을 객관적·종합적으로 평가해 인사에 반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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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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