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야당복'에 웃더니, 통합 '여당복' 미소 … '시소 정치'

2020-08-12 11:46:16 게재

내가 잘해서보다 상대편 실축 덕분에 주도권 잡는 구도 되풀이

여권 실축에 야권 상승세 … "홈런 욕심보단 루상 주자 모아야"

지난해 말, 박지원 당시 대안정치신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측근 복은 없지만, 확실한 야당복은 있다. 야당복, 이게 보통 복이 아니라 천복"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정권이 임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잘해 여론 지지를 얻기도 했지만 야당 실책으로 인한 반사이익이 더 컸다는 의미다.
미래차 현장간담회 기념촬영 하는 더불어민주당│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조정식 정책위의장, 공영운 현대차 사장 등이 12일 경기 고양시 현대 모터스튜디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K-뉴딜위원회, 미래차 현장간담회에서 전기차·수소차 등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제1야당인 통합당은 문재인정권을 견제하기는커녕 자충수를 두기 바빴다. 지난해 초에는 당 소속의원들이 5.18 망언들을 쏟아내며 빈축을 샀다.

황교안 대표는 태극기세력과 손잡고 툭하면 장외로 뛰쳐나갔다. 극우 유튜버에 휘둘리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다. 4.15 총선을 앞두고는 사천과 돌려막기 공천 등 공천 파동을 자초했다.

통합당의 자충수는 최근까지 계속됐다. 진중권 시사평론가는 지난달 12일 "통합당이 괜히 어설픈 공격 하다가 역공만 당하고 있다"며 "태영호는 (김정은 신변에 대한) 정보도 없이 쓸데없이 돗자리 깔았다가 망신당하고, 곽상도는 괜히 남의 아파트(문 대통령 아들) 공격했다가 되치기당하고, 배현진은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상주(박원순 전 시장 아들)를 건드렸다가 빈축이나 샀다"고 지적했다.

진 평론가는 "하여튼 민주당은 야당복이 터졌다"며 "(통합당은) 되지도 않는 소리로 억지로 깎아내리려고만 하지 말고 민주당에 등 돌린 민심이 찍어줄 만한 당으로 개혁하라"고 지적했다.

다만 국면이 180도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통합당이 "여당복이 터졌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통합당이 '민심이 찍어줄만한 당으로 개혁에 성공'한 게 아니라, 여권이 잇따라 자충수를 두면서 야권이 주도권을 잡는 상황이 된 것이다.

4.15 총선에서 압승한 여권은 스스로 '똥볼'을 차기 시작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 의혹 으로 사퇴하는 것에서 시작해 △더불어시민당 양정숙 의원 부동산 논란 △더불어시민당 윤미향 의원 '정의연' 관련 의혹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논란 등이 이어졌다.

민주당의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 논란은 물론이고 △추미애 법무부장관, 검언유착 사건 수사지휘권 발동 △부동산 급등과 부동산 대책 실효성 논란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청와대와 정부 고위공직자 다주택 논란이 줄을 이었다. 문 대통령 국정지지도와 민주당 지지율이 급락하고, 상대적으로 통합당 지지율이 상승하는 결과가 빚어졌다.

결국 문재인정권 들어 정치권은 '시소 게임' 양상이다. 한쪽이 올라가면 반대편이 내려가고, 반대편이 올라가면 그 상대가 내려가는 식이 된 것. 통합당 수도권 중진의원은 12일 "여권이 연일 자충수를 두면서 우리(통합당)에게도 기회가 열리고 있다"며 "여당복이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중진의원은 "상대투수(여권)가 컨트롤 난조인데, 그때 타자(통합당)가 홈런 치겠다고 욕심 내면 안된다"며 "홈런보다는 팀플레이를 통해 루상에 주자를 더 많이 모으는게 중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여권의 자충수에 들떠서 섣부르게 나설 게 아니라, 진중하게 시간을 갖고 개혁과 실력쌓기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얼마전까지는 야당이 워낙 못해서 여당이 가만 앉아서 얻어먹었는데, 요즘은 여당이 못해서 야당이 얻어먹는 모양새"라며 "소수야당이 (원내에서) 할 수 있는건 별로 없는만큼 (여당이) 때리면 맞는 약자 프레임으로 가는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통합당은 욕심 낼 필요도 없고 조급하면 다시 무너진다"고 덧붙였다.

통합당도 강성 보수단체가 주최하는 8.15 집회에 불참하기로 하는 등 '가마니 전략'(대외행보를 최소화하고 여권 실책을 가만히 기다린다는 취지)을 구사하는 모습이다.

원내에서 최소한의 대여공세만 펼친다. 통합당 핵심관계자는 12일 "8월국회에서는 운영위를 열어 수해와 부동산정책 실패 등을 따질 것"이라며 "청와대가 얼마나 '벌거벗은 임금님'인지 확인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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