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 김경일 교수 별세

한반도 평화의 꿈 남기고 간 김경일 교수를 애도하며

2020-11-11 11:35:04 게재
김경일(金景一 진징이) 중국 북경대 교수가 8일 병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7세. 김 교수는 내일신문에 2010년부터 10년 동안 칼럼을 게재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1월 8일, 중국 북경대학 조선(한국)어학과 김경일(金景一) 교수가 별세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아직 한반도의 봄이 오지 않았는데, 아직 당신이 해줄 일이 쌓여 있는데 이렇게 돌연 세상을 뜨다니, 참으로 슬픔을 견뎌내기 어렵다. 그러나 소중한 지면을 빌어 그를 애도하는 것은 필자 개인의 소회를 넘는, 한 학자의 죽음이 갖는 무게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1953년 중국 길림성 돈화현에서 태어난 김경일 교수는 중국 민족번역국을 거쳐 1992년부터 30여년 동안 북경대학에서 한국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해 왔다. 특히 고인은 한중 수교 이후 근현대 한국의 역사와 문화, 한중관계사 등에 천착하면서 중국 한국학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전환기 한국학 연구의 질적 전환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기원', '중국 조선족 문화론', '중국조선족 이민 실록', '동방문화대관(한국부분)' 등의 숱한 학문적 업적이 이젠 그의 유작으로 남게 되었다.

한중관계 발전 초석 놓은 공 잊히지 않을 것

그의 삶을 관통했던 또 하나의 주제는 한반도 평화였다. 김 교수는 그동안 조선문화연구소(현재 조선반도연구센터) 소장을 역임했으며 북경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를 망라한 논단(論壇)을 개최해 왔다. 70여 차례가 넘는 논단을 이끌어올 수 있었던 것은 김경일 교수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네트워크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이해를 높이고 궁극적으로 한중관계 발전의 초석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고인은 김대중 대통령의 북경대 연설 성사에 힘쓰는 등 격동기 한중관계 발전에 노력하는 한편 국내 학계, 정치인들과 교유하면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견해를 가감 없이 피력해 왔다. 그를 아끼는 많은 지인들은 남북을 왕래하며 터득한 그의 실사구시적 논리가 정책결정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면서 그의 타계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다른 한편 고인이 한·중·일을 분주히 오가면서 차세대 한반도문제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에 남다른 정성을 기울여 온 것도 특기할 일이다.

평소 국론의 분열로 한반도 평화가 지체되는 것을 가슴 아파했던 고인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는 한반도 평화의 길을 늘 고민해 왔다. 한반도 전문가 논단에서 20년 이상 다양한 주장과 견해를 토론, 연구해 온 것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고인의 이런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내일신문에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칼럼을 게재하면서 '분단의 관성'이 초래할 수 있는 파국적 위험을 경고하고 남과 북이 상생과 공영의 큰 길로 나아갈 것을 호소해 여론의 큰 반향을 얻기도 했다.

하노이정상회담 결렬이 미국이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진단했던 2019년 7월 18자 칼럼은 이런 그의 혜안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여전히 남북관계보다는 북미관계 개선에 몰두할 것이라고 전망했던 올 2월 6일자 마지막 칼럼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고인의 짙은 아쉬움이 배여 있다. 이제 고인은 남북한이 한반도 평화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철칙'을 숙제처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정세가 위태로울 때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동분서주하던 고인의 모습이 눈에 선연하다. 난마 같은 현안을 읽는 눈을 밝혀주던 날카로운 필봉도, 현실감 넘치는 문제의식도 이제는 듣기 어렵게 되었다. 아쉽고 황망할 뿐이다.

아리랑의 선율 속에 영혼을 실어 보내며

남과 북의 화해 없이 한반도에서 장기적인 평화를 기약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분노와 적대의 관계를 넘어서려면 화해와 평화의 연대가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남과 북의 소통을 매개하고 이질성을 완충할 제삼자의 조력이 필요하다. 이런 역할을 자임해 왔던 고인의 공백이 너무 크다. 이제 이는 모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삶을 바친 고인의 뒤에 남은 자들의 책무가 되었다.

고인이 생전에 '몹시도' 사랑했던 아리랑의 선율 속에 그의 영혼을 실어 보내드리면서 미래를 같이할 동아시아 평화역량의 결집을 소망하게 된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소망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고인의 유족들께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 분열과 분단이 없는 곳, 평화와 통일의 희망이 충만한 곳에서 부디 영면하시라.

홍면기(동북아역사재단 명예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