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기다림' 지방자치법 전부개정

2020-12-10 11:26:23 게재

'자치분권 확대 기틀 마련' 의의

주민자치회 빠져 반쪽짜리 비판

시·도 요구 부단체장 증원 불발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근간이 되는 지방자치법이 32년 만에 전면 개정됐다. 자치분권 확대를 위한 새 틀이 마련된 것이다. 다만 오랜 논의를 통해 마련한 주민자치회 활성화와 시·도 부단체장 증원 등 지자체들이 요구했던 일부 조항이 빠져 아쉬움을 남겼다.

국회는 9일 본회의에서 주민참여 확대, 지방의회 역량강화와 책임성 확보, 지방자치단체 행정 효율성 강화 등 자치분권 확대를 뼈대로 하는 '지방지치법 전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이번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은 민선 지방자치를 본격적으로 실시하는 기반이 된 1988년 전부개정 이후 32년 만에 이뤄졌다.

염태영 수원시장(오른쪽 4번째), 백군기 용인시장(오른쪽 3번째), 이재준 고양시장(오른쪽 2번째), 허성무 창원시장(왼쪽 2번째)과 4개 도시 시의회 의장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함께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국회 통과를 축하하고 있다. 사진 수원시 제공


이번 개정 법률안의 가장 큰 의의는 무엇보다 획기적인 주민주권 구현에 있다. 지방자치법의 목적교정에 '주민자치'의 원리를 명시하고, 지방의 정책결정과 집행 과정에 대한 주민의 참여권을 신설했다. 또 지방자치법에 근거를 둔 주민조례발안법을 별도로 제정해 주민이 단체장이 아닌 의회에 조례안의 제정 개정 폐지를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주민조례발안·주민감사청구의 인구요건도 완화했고, 참여연령도 19세에서 18세로 하향 조정했다. 지역 여건에 따라 주민투표로 단체장의 선임방법 등 지자체 기관구성 형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눈에 띈다. 주민들이 원하면 의회 의장이 지역 대표를 맡는 내각제 형태의 기관을 구성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는 지금의 정형화된 틀을 깰 수 있도록 문을 열어뒀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변화다.

하지만 당초 정부안에 포함됐던 주민자치회 실시와 관련한 조항이 빠진 점은 아쉽다. 주민자치회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야당의 우려 때문에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주민자치회는 특별법에 근거해 2013년 시범사업으로 실시된 이래 전국적으로 118개 시·군·구, 626개 읍·면·동으로 확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32년 만에 지방자치법이 개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세다. 실제 주민자치회 조항 삭제와 관련해 130개 민간단체와 2290명의 개별 인사들이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다.

◆지자체 역량강화, 자치권 확대 = 이번 개정안이 갖는 또 다른 의의는 자치단체의 역량강화와 자치권 확대 조항이 담겼다는 점이다. 중앙부처의 자의적인 사무배분을 방지하기 위해 지역적인 사무는 지역에 우선 배분하는 보충성의 원칙 등 국가-지방 간 사무배분 원칙과 준수의무를 규정하고, 자치단체의 국제교류·협력 추진 근거도 마련했다. 또 법령에서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한 사항에 대해 하위법령에서 위임의 내용과 범위를 제한하거나 직접 규정하지 못하도록 해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입법권을 강화한다.

논란이 됐던 특례시 조항은 결국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로 제한했다. 대상은 경기 수원·고양·용인시와 경남 창원시 4곳이다. 다만 행정수요·균형발전·지방소멸위기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과 절차에 따라 행안부 장관이 정하는 시·군·구에 특례를 부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 다른 지자체에도 여지를 남겨두긴 했다.

지방의회 사무직원의 임용권을 의회 의장에게 부여하고, 자치입법·예산심의·행정사무감사 등을 지원할 '정책지원 전문인력'을 도입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다만 기존 정부안에는 없던 기초지방의회 사무직원 임용권이 포함되면서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기초지방의회 직원 숫자가 적어 별도 직렬이 생길 경우 인사 운용에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행안부도 보완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정책지원 전문인력을 의원 정수의 1/2만 두도록 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지방의원들은 당초 취지인 정책보좌를 충실히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책임성·투명성 강화방안도 = 지방에 마냥 자율과 권한만 준 것은 아니다. 개정 법안에는 주어진 자율·권한만큼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조항도 담겼다.

지방의회의 투표결과 및 의정활동, 집행기관의 조직·재무 등 지방자치정보를 주민에게 선제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정보공개시스템을 구축하여 주민의 정보 접근성을 높였다. 지방의회의 윤리성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도록 윤리특별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했다. 또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윤리심사자문위원회를 설치해 의원에 대한 징계 등을 논의할 때 의무적으로 의견을 수렴하도록 했다.

지방의원이 직무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그간 논란이 되어왔던 겸직금지 의무 규정을 보다 구체화하고, 겸직이 허용되는 경우라도 의무적으로 겸직내역을 공개하도록 했다. 또 시·군·구의 위법한 행위에 대해 시·도가 조치하지 않을 경우 국가가 직접 시정·이행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해 위법한 행정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도·감독 장치를 보완했다.

이 밖에도 지방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의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 지방의 주요 주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신설한 것, 또 지자체 간 경계조정을 위해 자율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할 수 있도록 한 것, 지자체 간 협력을 위한 특별지방자치단체 구성근거를 구체화한 것 등도 주목할 만한 내용이다.

이번에 개정된 지방자치법은 공포 후 1년 후부터 시행된다. 행정안전부는 법이 차질 없이 시행될 수 있도록 관계법률과 시행령·시행규칙 제·개정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진 영 행안부 장관은 "이번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은 1988년 이후 32년 만에 맞이하는 큰 변화"라며 "획기적 자치분권을 위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만큼 자율성과 책임성을 바탕으로 한 지방의 창의적인 혁신을 통해 주민들의 삶이 실질적으로 발전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신일 곽태영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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