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보험과 소비자 신뢰

2021-01-05 12:08:27 게재
보험업계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화두는 ‘소비자 신뢰회복’이다.

2021년 신년사에도 ‘소비자 신뢰’에 대한 내용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정희수 생명보험협회장은 기업의 성장과 번영에는 고객의 깊은 신뢰가 밑바탕이 돼야 하며 생명보험 산업도 예외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지원 손해보험협회장도 자리가 바뀌면 풍경이 달라진다는 말처럼 소비자 입장에서 보험산업을 바라보는 것이 신뢰회복의 시작이라며 역지사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금융업권 전체에서 보험에 대한 소비자 신뢰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최신 통계인 2020년 1~3분기 권역별 금융민원 비중을 보면 손해보험이 35.2%로 가장 높았고 생명보험이 23.7%으로 그 다음이었다. 보험상품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중소서민(19.4%), 은행(13.4%), 금융투자(8.3%) 등에 비해 민원 비중이 월등히 높다.

소비자 신뢰 문제만큼 최근 보험업계에서 중요한 또 다른 이슈는 ‘디지털 혁신’이다.

보험업 성장뿐만 아니라 이른 바 ‘빅테크’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생존이 걸린 문제다. 보험계약 체결부터 보험금 지급까지 전 영역에 걸쳐 디지털화를 실현하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 IT기술을 성장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문은 계속되고 있다.

IT산업과 금융업간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등장한 빅테크와의 경쟁에서 보험업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걱정하지만 빅테크가 단지 느슨한 규제 덕분에 빠른 성장을 이룬 것은 아니다. 빅테크들은 보험사보다 앞서 소비자 친화적 인터페이스를 구현하고 있고 여기에 편리함과 만족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빅테크들을 더 찾고 있다.

빅테크의 급성장은 한편으론 디지털 혁신이 소비자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보험업의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됐지만 그 방향이 소비자 신뢰나 만족보다는 비용 절감이나 효율화에 더 치중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보험연구원 ‘보험산업 진단과 과제(III)-소비자 중심 경영’ 보고서)은 아쉬운 대목이다.

보험의 신뢰 회복을 위해, IT와 금융간 경계가 흐릿해지는 ‘빅 블러’(Big Blur) 현상을 보험사와 소비자 사이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보험사와 소비자의 경계가 느슨해진다는 것은 보험사 직원들이 먼저 가입하고 싶고, 경험하고 싶은 상품과 프로세스를 만들자는 얘기다. 새해가 되면 매번 언급되는 ‘신뢰 회복’이지만 올해는 이 말이 형식적인 인사말에 그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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