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 정치공방 '피해자 중심주의' 실종

2021-01-11 11:46:23 게재

유튜버, 왜곡된 '선제대응'

국민의힘 진상규명 '외면'

여, 보선후보 내며 '훈계'

정치권이 새해부터 성추문 공방으로 난잡하다. 최초 의혹 제기부터 여야 사이의 논쟁 과정까지 '피해자 중심주의'도, 반성도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꿴 것은 의혹을 최초 폭로한 강성 보수 유튜버였다.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는 6일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7일 탈당)의 성폭력 의혹을 제기했다.
물 마시는 김종인 비대위원장 |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을 마치고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이들은 구체적인 시점과 장소, 여성의 직급·성씨까지 언급하며 자극적으로 사건을 묘사했다. 김 의원이 법적 대응 의사를 밝히자 "피해자와 목격자가 다 특정된 상황"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날 폭로에는 정작 피해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무했다. 피해자가 실재할 경우 2차 가해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가세연이 내세운 명분은 '피해회복'이 아니라 보궐선거였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쪽에도 제보가 간 걸로 파악했다"며 "선거에 악용할 수 있기 때문에 먼저 터뜨리는 게 맞다"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의 대응방식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의혹제기 후 김 의원이 탈당했다는 이유로 진상규명을 사실상 포기했다. 피해자가 있다면 여전히 당 소속일 텐데도 확인조차 하지 않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없는데 무슨 성범죄냐' '피해자가 고발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들이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민주당 소속 시장들의 성추문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며 심판론을 폈다. 그러나 김 의원에 이어 장진경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까지 유사 의혹을 받으면서 '성추문 심판' 명분이 퇴색됐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11일에야 "정 위원의 경우 교원 징계기록을 보지 못해 검증을 못한 과실이 있다" "김 의원의 경우 피해자의 미투 고발이나 경찰 신고가 없어서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사후 대책에 대해서는 "앞으로 성비위 관련 사건에 대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만 밝혔다.

기세등등하게 국민의힘에 반격을 개시한 민주당 역시 '제 눈의 들보'를 못 본다는 비판이 나온다.

신영대 민주당 대변인은 10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어지는 성추문과 검증실패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공당의 책무이자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민주당은 두 시장의 성추문으로 인해 보궐선거 사유가 발생하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기존 당헌당규를 뒤집으면서 여성계는 물론 진보진영 내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피해자의 입장과 관계없이 성추문이 정략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역시나 달라진 것 없는 국민의힘, 인권감수성을 잃은 민주당 모두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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