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입양아동 학대 사망사건

정부·국회·사회 무관심이 재발 부르는 원인

2021-01-12 11:42:45 게재

법원 개입만으로 입양부모 검증 역부족

입양기관 "사후관리 문제없다" 주장만

입양기관은 입양 후 아동을 4차례 조사해야 하고, 이 가운데 2회는 가정방문을 해야 하지만 이를 이행하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정인이 입양을 주선했던 홀트아동복지회의 사후관리에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5일 보건복지부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입양기관 사후관리 경과' 자료에 따르면 학대의심 신고 후 확인을 위한 방문에서 입양부모의 말만 듣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홀트는 2014년 보건복지부 특별감사 결과 사후관리 보고서 부실 작성 등 입양특례법을 위반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입양은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가정을 찾아주는, 아이의 삶과 직결되는 중요한 절차이기때문에 국가에서 책임지고 아동의 최상의 이익을 고려해 진행해야한다"고 말했다.

'홀트아동복지회 특별감사 실시 촉구'│국내입양인연대 등이 7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보건복지부는 직무유기한 홀트아동복지회 특별감사 실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사고 발생할 때만 공분 = 입양부모의 학대로 아동이 숨진 사례는 정인이가 처음은 아니다. 2016년 발생해 사회적 공분을 샀던 대구·포천 입양아동 학대 사망사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1. A양(사망 당시 4세)은 공식절차를 밟지 않고 입양원 원장의 개인적인 자문을 토대로 2015년 말 대구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이로부터 8개월 뒤 A양은 입양부모 학대로 멍과 화상 자국이 가득한 몸으로 병원을 찾았다 뇌사 판정을 받았다. 탁구공만한 혹이 생길 정도로 머리에 심한 충격을 받은 A양은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다 2016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2. 경기도 포천의 한 가정에 입양됐던 B양(사망 당시 6세)도 같은 해 입양부모 학대로 사망했다. B양 양부모는 '벌을 준다'며 B 양의 온몸을 투명테이프로 묶고 물과 음식을 주지 않은 채 17시간가량 방치해 다음날 숨지게 했다. 끔찍한 학대가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B양은 사망 당시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상태였다. B양이 숨지자 입양부모는 그동안의 학대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워 야산에서 시신을 불태운 뒤 훼손했다.

잇단 사망사고에 시민단체와 국회의원들은 '대구·포천 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이들 입양가정은 아동을 입양하기에 적합한지, 입양아동을 양육할 능력이 있는지 제대로 확인·평가받지 않았다. 입양 후에도 아동의 안전과 적응여부를 살피는 사후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위원회는 입양아동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제도개선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2018년 1월 위원회에 참가한 의원들을 중심으로 국회에 '입양특례법 전면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국회의 무관심으로 상임위에 계류됐다가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국회와 정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입양제도에 무관심한 사이 또 다시 입양부모 학대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12월 13일 서울 양천구에서 생후 16개월 입양아가 온몸에 멍이 든 채로 병원에 실려와 숨진 이른바 정인이 사건이다.


◆민간기관 자의적 판단에 의지 = 사건 발생 후 반복되는 입양아 학대사망 사건의 원인으로 시민사회단체는 민간 입양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이뤄지는 현행 입양제도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입양특례법 개정을 통해 아동에 대한 입양 절차가 아동 이익 최우선의 원칙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상세하게 규정하는 방향으로 법제도 개선과 공공기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도 입양절차에서 국가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 국내 입양은 친부모(혹은 기관)와 양부모의 의사가 합치되면 가능했다. 하지만 2012년 2월 10일 민법 개정과 2011년 8월 4일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미성년 아동의 입양의 경우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해 국가 개입의 근거를 마련했다.

현재는 입양특례법에 따라 아이를 입양하려는 입양부모는 보유 재산 수준, 아동학대·가정폭력·성폭력과 같은 범죄경력 유무 등을 포함한 서류를 가정법원에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민간기관을 중심으로 예비 입양부모의 심리적 안정성 등을 판단하기 위한 심리검사와 가정조사 등이 이뤄진다. 법원은 이를 검토해 입양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정인이 사건' 가해자인 양부모도 이런 절차를 거쳐 문제없다는 판단을 받았다. 이를 근거로 법원은 입양허가를 결정했다. 이를 놓고 민간기관이 주축이 돼 예비 입양부모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검증이 이뤄졌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어른들이 미안해'│1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검찰청과 남부지방법원 앞에 세워진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근조화환. 법원은 13일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양모 장모씨와 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양부 안모씨의 첫 공판을 연다. 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입양기관 감사하라" = 홀트아동복지회(홀트)는 논란이 커지자 6일 "정인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면서도 입양절차와 관리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홀트는 양부모와 입양 신청일부터 친양자 입양신고일까지 총 7차례 만남을 가졌고 사후관리 기간인 8개월 동안 3차례 가정방문, 17회 전화 상담을 하는 등 절차상 하자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홀트는 이날 사과문에서 "앞으로 입양 진행 및 사후관리 강화를 위한 법, 제도, 정책적 측면에서 입양기관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각도로 검토해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탁틴내일, 인트리와 국내입양인연대,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미혼모협회 아임맘, 뿌리의집, 정치하는엄마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한국한부모연합 등 10개 단체는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홀트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특별감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6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홀트는 정인이의 고통을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기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왜 정인이를 지켜주지 못했는지 묻는 것"이라며 "학대신고가 있었다고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연락을 받기 전에 아동학대의 징후를 확인 못했는지, 이후 3차례에 걸쳐 양부모에 의한 아동학대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이뤄졌을때 사후관리 내용은 무엇인지 밝혀라"라고 요구했다.

◆홀트 4년전에도 감사 = 홀트가 사후관리를 부적절하게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2014년 6월 홀트를 상대로 한 특별감사 보고서에서 '홀트가 국내 입양된 아동 중 일부에 대해 사후관리를 미흡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홀트는 2012년 8월부터 2013년까지 국내 입양된 아동 92명 중 13명(14%)에 대해 가정방문 등을 통한 '사후 관리 가정조사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아동 4명에 대해서는 아예 전화로만 상담하고 보고서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기관 담당자는 입양된 아동의 적응상태를 관찰하는 등 1년간 사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정인이의 비극은 부모와 경찰 외에도 부모로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입양된 데서 출발했다"며 "정부는 입양 절차를 민간에만 맡겨 두지 말고 입양 아동의 이익을 위해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홀트만의 문제 아니다 = 이는 비단 홀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민간 입양기관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입양기관 지도점검 결과' 자료에 따르면 동방사회복지회는 2017년 범죄경력 회신서에 기재된 성범죄 경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입양 자격을 갖췄다는 의미의 '양친가정 조사서'를 발급했다. 동방사회복지회는 행정처분에 해당하는 '경고'를 받았다. 이 기관은 앞서 2015년과 2016년에도 예비 양부모들이 제출한 내용과 다른 내용을 양친가정 조사서에 기재하거나 범죄경력을 확인하기도 전에 양친가정 조사서를 발급해 각각 '경고' '주의조치'를 받은 바 있다.

두 기관을 포함해 입양기관 5곳이 2015∼2019년에 받은 행정조치는 30여건에 달한다. 하지만 행정조치는 대부분 시정, 주의조치 또는 경고에 그쳤다.

신 의원은 "민간 입양기관이 주도하는 입양절차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입양 후 1년이 지난 뒤에도 상담과 지원이 필요한 입양가정에 대해서는 입양기관의 사후관리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현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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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김형선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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