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산고속도로 동식물조사 부실 의혹

최근 학회지에 실린 관련 논문도 인용안해

2021-01-15 11:42:56 게재

국토부 "대안검토, 전략평가 단계에서 끝난 것" … 환경부 "DMZ 핵심생태계 보전 쪽으로 평가진행"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환경영향평가서(초안) 생물상 조사가 최근 각종 저널에 실린 관련 논문자료도 인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평가서는 '동식물상'에서 "현지조사 및 자료조사 결과 법정보호종은 현지조사 29종, 자료조사 33종으로 총 42종이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일대에서 확인된 멸종위기종 등 법정보호종은 50여종이 넘는다.

2020년 9월 DMZ생태연구소와 파주환경운동연합은 문산-도라산고속도로가 추진중인 임진강 하구 장단반도 일대에서 50여종의 멸종위기 생물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1급 생물은 '수달'(어민 탐문) '참수리' '저어새' '두루미' '황새' '검독수리' '흰꼬리수리' '수원청개구리' 8종이다.

멸종위기 2급은 '물범'(탐문) '삵' '재두루미' '흑두루미' '개리' '큰고니' '남생이' '표범장지뱀' '돌상어' '물장군' '참호박뒤영벌' 등 43종이다. 물범과 참호박뒤엉벌은 국토부 전략환경평가 과정에서 확인됐다.

◆15년 조류 조사 자료 인용안해 = DMZ생태연구소는 2005년부터 2019년까지 15년 동안 서부 민통선 장단반도 일대에 도래하는 겨울철새를 매주 일정한 동선으로 조사해 개체수를 집계했다. 환경과생명을지키는교사모임 파주환경운동연합 등도 2012년부터 주 1회 씩 이 지역 생물상을 조사해왔다. 생태조사에서 '두루미' '수달' '수원청개구리' 등 총 49종의 법정보호종이 발견됐고, 생태적으로 중요한 '긴다리소똥구리' '초원수리' '동쪽애물방개'도 확인됐다. 이런 생물상 조사 결과는 2020년 9월 11일 '내일신문'에 자세하게 실렸다.

특히 문산-도라산고속도로 건설 예정지는 멸종위기 조류의 6년 평균 개체수가 매우 많은 지역이다. 노선 예정지 인근에서 관찰된 멸종위기1급 조류는 '검독수리' '두루미' '저어새' '흰꼬리수리' 등이다.

김승호 DMZ생태연구소장은 "이 일대에서는 '노랑부리저어새' '독수리' '새매' '솔개' '재두루미' 등 멸종위기2급 조류도 많이 보인다"며 "멸종위기 조류는 특히 계획노선인 장단반도를 중심으로 가장 많이 관찰된다"고 말한다.


◆물방개 물장군 금개구리 등 집중서식 = 도라산고속도로 예정지 서부 민통선 안에는 다른 데서는 잘 볼 수 없는 '둠벙'들이 많다. 둠벙은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지하수를 가두어두는 인공습지다. 이 지역은 민통지역이라는 제약 때문에 대규모 관개수로를 건설할 수 없어 여전히 둠벙을 이용한다.

DMZ생태연구소는 이 일대 둠벙 가운데 143곳을 선정, 2018년 8월 15일부터 9월 22일까지 생물상을 조사했다. 그 결과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2급 '물방개'가 18곳, '물장군'이 3곳, '대모잠자리'가 1곳의 조사지에서 나왔다. 조사 과정에서 비무장지대 인근 최초로 멸종위기2급 '애기뿔소똥구리'도 발견됐다. 역시 멸종위기2급인 '금개구리'도 고속도로 계획노선 일대 둠벙에 주로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결과는 2020년 6월 한국습지학회에서 발표됐고 논문은 '환경과 생태' 2020년 8월호에 게재됐다.(<서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일대 둠벙의 저서성대형무척추동물 종 다양성 및 군집 특성> 정현용·염철민·김재현·박신영·이예원·표진아·김승호)

◆장단반도 숲은 생물다양성 보루 = 현재 국토부가 추진중인 계획노선은 장단반도 서쪽 구릉지대 숲을 10km 이상 길게 관통할 예정이다. 환경영향평가서(초안)에서 국토부는 "식생보전등급 2등급도 없고 대부분 3등급 이하"라고 이 일대 숲의 가치를 평가했다. 평가서는 "사업시행으로 불가피하게 훼손되는 4만27그루의 자연수목(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등) 중 식재공간 등 현지 여건을 감안하여 529주를 이식수목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서술한다. 지뢰제거 구간에서 훼손되는 나무들은 아예 이식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그러나 장단반도 일대 숲은 비무장지대 인근의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보루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2020년 10월 12일 국제저널 '생태와 진화'(Ecology and Evolution)에 김재현 외 9명이 참여한 <비무장지대 주변 새들의 기능적 다양성에 대한 전통 농촌 경관의 구조적 함의> (김재현, 박신영, 김승호, 강근원, 브루스 월드 만, 이명화, 유민혜, 양현영, 정현용, 이은주) 논문이 실렸다.

논문에 따르면, 장단반도 민통선 내 숲은 가뭄이 발생했을 때 여름철새 등 조류군집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들은 특히 물 스트레스에 민감하다. 극심한 가뭄은 새들의 생존에 큰 영향을 준다. 연구 사이트는 2015년에 큰 가뭄을 겪었다. 4월부터 7월까지 이 지역의 연평균 강수량은 718mm인데, 2015년에는 393mm밖에 오지 않았다. 논이 많은 지역은 가장 높은 종 다양성과 풍부함을 보였지만 가뭄에 가장 취약했다. 논 곳곳에 있는 둠벙도 심한 가뭄에 다 말라버렸고, 피난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가뭄이 극심한 시기에는 숲에서 새들이 훨씬 더 많이 관찰됐다.

김승호 소장은 "이는 민통선 내 숲이 둠벙과 함께 이 일대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며 "장단반도 내 숲을 유지하는 것이 조류 종 다양성을 유지하는 열쇠"라고 말했다.

논문은 마지막에 '남북 관계 개선과 관련한 DMZ 개발 계획에는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보호 대책이 포함되어야 한다'며 '우리의 연구가 하나의 근거가 되기를 바란다'는 연구자들의 바람을 담았다. 이 연구는 한국연구재단(NRF-2017R1A2B4006761)과 생물다양성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민감하고 중요한 최신 논문 자료는 환경영향평가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평가서는 자료조사에서 '환경부 전국자연환경조사 자료' '국립생물자원관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 '문산-내포 도로확포장공사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 '서울-문산 고속도로 환경영향평가서' '문산 첨단산업단지 조성사업 사후환경영향조사' 등의 자료만 인용해 분석했다.

◆핵심은 임진강 하류와 장단반도 관통 = 국토부 도로정책과 관계자는 "대안노선 검토는 이미 전략환경평가 과정에서 끝났고, 환경영향평가는 현 계획노선의 환경영향을 저감하는 방향으로 진행중"이라며 "이제 평가서 초안이 나온 단계이고 부족한 부분은 추가조사 등을 통해 보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환경부 자연환경정책실 관계자는 "도라산고속도로 예정노선은 남측 장단반도와 북측 사천강하구 습지 사이를 관통한다"며 "한강하구에서 초평도 사이의 임진강 핵심 생태계를 보전하는 쪽으로 평가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산-도라산 고속도로는 2018년 말 국회가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DMZ 개발사업이다. 이 일대는 한강하구 중립수역과 DMZ의 연결점으로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생태계 다양성이 유지되는 곳이다.

문산-도라산 고속도로는 남북한을 연결하는 첫 고속도로로 남북협력과 DMZ 보전이 함께 갈 수 있을지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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