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 새로운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다-1.자치조례, 주민들도 발의한다

잠자던 '주민참여제도' 문턱 낮췄다

2021-01-27 12:17:45 게재

개정 지방자치법 핵심 '주민참여 확대'

주민투표법·주민소환법 개정도 추진

주민자치회 법제화 논의 다시 불붙어

32년 만에 전부개정된 지방자치법이 2022년 1월 시행된다. 이 법이 시행되면 주민이 조례를 직접 발의할 수 있다.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주민투표·주민감사청구도 쉬워진다. 지방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돕는 전문인력도 둘 수 있다. 주민투표를 거치면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의 형태를 바꾸는 일도 가능해진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자치분권 2.0' 시대를 맞게 되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1991년 지방의회 선거로 시작된 지방자치제도가 30주년을 맞는 해다. 이에 내일신문은 행정안전부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등과 함께 새롭게 바뀌는 제도가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미리 살펴본다. 주민과 지자체가 준비해야 할 일과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들도 짚어본다. <편집자주>

전국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을 중심으로 '자치분권 기대해' 챌린지가 이어지고 있다. 지방자치법이 32년 만에 전부개정된 것을 축하하고, 새롭게 맞을 '자치분권 2.0' 시대에 대한 기대를 담아 전달하는 일이다. 단체장·지방의원들은 물론 지역 시민사회와 주민들도 개정 지방자치법의 내년 시행에 거는 기대가 크다. 사진 SNS 내려받기


지난 20년간 주민들이 청구해 발의한 조례는 243개 모든 지자체를 통틀어 269건에 불과하다. 주민조례청구제도가 2000년 도입된 후 2019년까지 통계다. 연평균 13.5건, 지자체당 1.1건 수준이다. 30년 지방자치의 현주소다.

주민조례청구제가 이처럼 유명무실한 이유는 무엇보다 문턱이 높아서다. 현재도 주민들이 일정 요건을 갖춰 조례안을 발의할 수 있지만 지자체장(집행부)을 거쳐서 지방의회로 안건이 제출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집행부가 '요건이 안 맞다'며 주민들이 애써 서명한 조례청구를 각하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청구한 조례가 지방의회에 바로 제출되면 집행부의 불필요한 견제를 막을 수 있다. 집행부의 뜻에 반하는 조례도 주민들이 직접 의회에 제출할 수 있다.

청구요건도 완화된다. 그동안 조례청구 요건은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의 경우 주민총수의 1/100 이상 1/70 이하, 이 외 시·군·구는 주민총수의 1/50 이상 1/20 이하 범위에서 지자체가 조례로 정하도록 돼 있다. 인구가 가장 많은 경기도의 경우 청구권자의 1/100인 10만명이 서명해야 조례 제·개정을 청구할 수 있다. 지난 20년 동안 경기도에서 주민조례청구가 단 한 건밖에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개정된 지방자치법에서는 특별시와 인구 800만 이상 광역시·도는 청구권자의 1/200, 인구 800만 미만 광역시는 청구권자의 1/150, 인구 50만 이상 100만 미만 시·군·자치구는 1/100 이내의 서명이 있으면 청구가 가능하도록 완화됐다. 직접서명 뿐만 아니라 공인전자서명도 인정해준다. 청구권자의 나이도 19세에서 18세로 낮아진다.


지방의회의 심의 강제규정도 생긴다. 주민청구조례안은 접수된 날부터 1년 이내에 의회에서 의결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본회의 의결로 최장 1년까지 한 차례 연장할 수 있지만, 적어도 2년 안에는 조례안을 의결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 기한은 의회 회기가 바뀔 경우에도 자동으로 폐지되지 않는다. 현재 이 같은 내용은 개정 지방자치법에 근거한 주민조례발안법으로 만들어져 국회에 제출돼 있다.

주민참여 요건 완화는 주민조례청구 뿐만 아니라 주민감사청구에도 적용된다. 현재 주민감사를 청구하려면 시·도는 500명, 50만 이상 대도시는 300명, 시·군·구는 2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각각 300명, 200명, 150명으로 낮아진다. 주민감사청구도 다른 주민참여 제도와 마찬가지로 활성화되지 못한 상태다. 최근 주민감사청구 현황을 보면 2006년부터 2019년까지 14년 동안 청구된 주민감사는 332건 뿐이다.

박성호 행안부 지방자치분권실장은 "주민은 행정서비스 관련 개선사항을 조례안으로 구체화해 지방의회에 제출하고 통과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자신의 의사가 정책결정에 실제로 반영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주민조례발의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의원내각제 형태 지자체도 가능 =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주민들에게 준 권한 중 가장 큰 것은 자치단체의 기관구성 형태를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의 기관분리형(단체장-지방의회) 구성뿐만 아니라 통합형(의원내각제) 구성도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인구수가 일정 수준 이하로 감소한 지자체의 경우 지금처럼 단체장과 지방의회 간 상호 견제 위주의 구조가 효과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선출된 지방의회가 기업처럼 CEO형 단체장을 공개 선임할 수도 있고, 지방의회가 간선으로 단체장을 뽑을 수도 있다. 단체장과 소수 의원을 선출해 일종의 집단지도체제로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도 지자체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독일 영국도 한 나라 안에서 여러 형태의 지자체 권력구조가 존재한다. 앞으로 별도 법률을 제정해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형태의 지자체 권력구조를 시험해볼 수 있다. 이 경우 최종 선택은 주민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주민투표·주민소환법도 개정 추진 = 새해 들어 기초지자체 두 곳에서 단체장을 대상으로 한 주민소환이 진행되고 있다. 강원도 양구군에서는 군수 소환투표를 위한 서명절차가 22일 시작됐다. 경기 과천시에서도 20일 시장 주민소환 절차가 시작됐다. 이날 주민들이 지역 선관위에 청구신청을 했고, 서명부가 교부되면 양구와 마찬가지로 60일간 서명이 진행된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주민소환이 실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선 유권자 총수의 15%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소환투표에 들어간다. 지난해까지 99건의 주민소환이 추진됐지만 이 가운데 89건은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실제 투표로 이어지지 못했다. 투표로 이어진 10건 중에서도 개표까지 이어진 건 2건 뿐이다. 투표율이 개표 충족요건인 33%를 넘지 못해서다. 결국 지난해까지 추진된 99건의 주민소환 가운데 2건만 개표했고, 소환됐다. 2건 모두 경기 하남시의원이다.

지방자치법 개정에 발맞춰 유명무실했던 주민투표법·주민소환법 개정도 추진된다. 이 법이 통과되면 주민투표가 실시될 경우 투표율과 무관하게 무조건 투표함을 열어보게 된다. 다만 주민소환의 경우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완화된 개표요건(투표율 25% 이상)을 적용한다.

온라인 서명 청구와 전자투표도 도입해 주민 참여를 확대한다. 온라인 포털, 휴대폰 앱 등을 활용해 어디서나 투표를 할 수 있게 된다. 그간 종이서류만 인정돼 주민 참여가 쉽지 않았고, 서명부를 심사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이밖에도 행정구역 단위로만 가능했던 주민투표 구역을 생활 구역 단위로 정할 수 있게 하고, 주민소환투표의 경우 획일적인 청구요건을 주민 수에 비례해 적용키로 했다.

한편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 때 풀뿌리 주민자치의 핵심인 주민자치회 조항이 삭제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주민자치회는 주민생활과 연관된 행정기능을 주민 스스로 결정하는 기구다. 지난해 6월 기준 전국 118개 시·군·구에 626개의 주민자치회가 설치·운영되고 있다. 이후에도 많은 주민자치회가 추가로 만들어졌다.

["[신년기획] 새로운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다" 연재기사]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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