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 새로운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다-2.단체장 거수기 오명 벗는다

지방의회 부활 30년, 권한·책임 모두 커졌다

2021-01-29 11:46:50 게재

32년 만에 전부개정된 지방자치법이 2022년 1월 시행된다. 이 법이 시행되면 주민이 조례를 직접 발의할 수 있다.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주민투표·주민감사청구도 쉬워진다. 지방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돕는 전문인력도 둘 수 있다. 주민투표를 거치면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의 형태를 바꾸는 일도 가능해진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자치분권 2.0' 시대를 맞게 되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1991년 지방의회 선거로 시작된 지방자치제도가 30주년을 맞는 해다. 이에 내일신문은 행정안전부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등과 함께 새롭게 바뀌는 제도가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미리 살펴본다. 주민과 지자체가 준비해야 할 일과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들도 짚어본다. <편집자주>

2020년 제10대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시의회가 코로나 국난 극복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의회 제공


1991년 지방자치 부활과 함께 다시 열린 지방의회는 개원 30년을 맞아 큰 변화를 맞게 됐다. 지난해 말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지방의회 권한이 큰 폭으로 강화됐기 때문이다.

지방의회 권한 강화의 핵심은 독립성과 전문성이다. 인사권 독립을 가장 큰 변화로 꼽는다. 그간 지방의회 사무기구 직원 임용권은 의장이 아닌 자치단체장에게 있었다. 단체장과 집행부를 견제·감독해야할 지방의회 직원들이 단체장 영향력 아래 있어 지방의회 독립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국회 사무총장은 국회의장이 뽑지만 지방의회 사무처장·사무국장은 의장이 아닌 단체장이 임명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인사권 부재는 그간 지방의회 발전을 가로막는 핵심요인으로 작용했다. 인사권이 의회가 아닌 집행부에 있으니 당연히 그쪽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일부 의회는 인력 운영에 골머리를 앓았다. 집행부에서 승진을 포기한 직원이나 퇴직이 임박한 직원을 골라 의회로 보내면서 의회가 마치 문제 있는 직원들 집합소로 인식되는 폐단도 발생했다.


기존 인사제도는 지방의회 전문성 향상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의회 직원 상당수가 집행기구로 복귀하기 때문에 지방의회 관련 업무 경험이 의회 내에 축적되지 못했다.

기대를 모으는 또 다른 변화는 정책지원 전문인력 도입이다. 지방의회는 그간 의원 개인이 조례발의부터 예산심의·행정사무감사 준비까지 모든 걸 도맡아 했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한해 예산이 40조원에 달하는데 이를 100여명 시의원이 감시하려면 의원 한명당 약 4000억원을 심의해야 한다. 국회와 같이 전문 정책인력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꼼꼼한 검증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조례의 힘이 커진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개정된 지방자치법은 자치입법권 강화를 명문화했다. '법령에서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한 사항은 그 법령의 하위 법령에서 그 위임의 내용과 범위를 제한하거나 직접 규정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 상위법이 조례를 통제하는 상황을 차단했다.

2010년 서울시의회가 채택한 친환경무상급식 조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시의회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맞서며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를 통과시켰다. 주민투표까지 벌어지며 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정부가 상위법, 시행령 등을 이용해 무상급식 조례를 불발시키려 했다면 더 거센 저항이 벌어졌을 것"이라며 "지방자치를 규정하고 움직이는 조례의 자율성 강화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중앙정부·국회의 견제는 여전 = 30년 만에 지방자치법이 큰 폭으로 개정됐지만 진정한 자치·분권으로 나아가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방의회에 대한 중앙정부와 여의도 정치권 견제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한다. 이번 개정에서도 정책전문인력의 도입규모와 시기가 당초안보다 크게 후퇴했다. 정책지원 전문인력을 의원정수의 절반만, 그것도 2023년 말까지 연차적으로 도입한다고 명시했다. 국회는 정책지원 전문인력이 의원 개인비서처럼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지만 지방의회 현장에선 이처럼 변형된 제도가 혼선을 가중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의원 2명당 1명이 배치된다면 소속 정당이 다른 경우 지원인력 공유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책전문인력을 상임위별로 배치하는 경우에도 폐단이 우려된다. 의회전문성 제고를 위해 수년간 정책전문인력을 운영해본 서울시의회 경험에 따르면 상임위별 인위적 배치 이후 실력 있는 일부 전문인력에 모든 의원의 요청이 쏠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한번 뽑으면 상임위 간 이동도 쉽지 않아 균형있는 정책역량 개발에도 차질이 생겼다.

지방의회 한 관계자는 "여러 견제와 감시 장치들이 마련돼 있기 때문에 의원의 개인비서처럼 운영될 우려는 극히 적다"며 "제도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 전문인력 절반 도입이 아닌 의원 1인당 1명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행령에 의한 지방의회 통제는 개정된 지방자치법의 근본적 한계로 지적된다. 개정법은 지방의회 권한 확대를 큰 폭으로 허용하면서도 인사권 독립, 정책지원전문인력 도입에 따른 각종 절차 및 운영 필요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다시 말해 법안이 대폭 개정됐지만 시행령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현행 제도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지거나 미세한 변화에 그칠 수 있다는 의미다.

◆시행령, 제도취지 훼손 말아야 = 이 때문에 법안 개정 이후 후속작업 과정에서 제도도입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0년 만에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실질적인 주민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끝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권한 강화와 함께 강조되는 것은 지방의회 자체의 자정과 신뢰회복 노력이다. 일부 사례이지만 지방의원들 의 엇나간 행태는 지방의회에 대한 불신을 쌓는 악재로 작용했다. 이번 개정에서도 권한 강화와 함께 다수의 견제 장치가 마련됐다. 지방의원 겸직 금지를 보다 명확히 하고 정보공개를 강화하며 제 식구 감싸기를 차단하기 위한 윤리특위 상설화 등은 지방의회의 책임성과 투명성 강화에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사권 독립 대상이 시·군·자치구의회까지 확대되면서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갑자기 늘어난 채용 업무 탓에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 있다. 의장의 인사권이 커지면서 이른바 정실인사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김한종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장은 "광역의회와 지방의회간 인사교류 등 예상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후속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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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김신일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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