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공사 담합한 건설사, 민사책임은 없어

2021-02-15 11:45:07 게재

부산교통공사, 담합 손해배상 소송서 패소

7년간 심리한 법원 "원고 측 입증 부족"

부산교통공사가 지하철 공사를 발주한 이후 입찰담합을 한 건설사들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며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을 부과하고 형사재판을 통해 담합을 주도한 업체들에게 유죄가 확정됐지만 손해배상액을 정확히 산출하지 못했다는 게 판결 이유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0부(한성수 부장판사)는 최근 부산교통공사가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한진중공업 금호산업 코오롱글로벌 SK건설 등 6개 건설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 사건은 2014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접수돼 무려 7년간 심리를 거쳤다.

2008년 12월 조달청은 부산교통공사를 대신해 부산지하철1호선 연장공사를 4개 공구로 나눠 입찰 공고했다.

1공구는 현대건설 컨소시엄, 2공구는 한진중공업 컨소시엄, 4공구는 코오롱글로벌 컨소시엄이 각각 최고점수를 받아 낙찰됐다. 이들에게 최종 지급된 공사비는 991억~1213억원에 달했다.

현대건설은 대우건설과 한진중공업은 금호건설, 코오롱글로벌은 SK건설 등과 경쟁을 한 후 사업권을 따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입찰에서 떨어진 업체들이 들러리로 나섰다는 사실이 드러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4년 4월 이들 6개사가 부산지하철 1호선 연장공사 1, 2, 4공구 입찰 과정에서 담합을 한 사실을 적발하고 10억9300만원에서 48억3400만원의 과징금 납부와 시정 명령을 했다. 일부 업체는 공정위 처분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부산지방검찰청은 공사를 낙찰받은 현대건설과 한진중공업 코오롱글로벌 등 3개사를 공정거래법 위반 죄로 재판에 넘겼고, 법원은 벌금 6000만~7000만원씩 선고했다.

이 과정에서 3공구의 경우 담합이 아닌 실제 경쟁이 이뤄졌다는 증거가 발견되면서 낙찰받은 건설사와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 모두 공정위나 수사기관 조치를 피하게 됐다.

부산교통공사는 "담합에 참여한 업체들은 투찰률 등을 사전에 합의하는 방법으로 입찰 담합을 함으로써 부당한 공동행위를 했다"며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다. 공정거래법 제56조1항은 법 위반으로 피해를 입은 자가 있는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담합 행위가 있을 때와 없을 때를 예상한 가격 차가 '손해'다.

예를 들어 예상가가 100억원인 공사에 대해 경쟁 입찰을 하는 경우 최저가를 써낸 업체가 사업을 낙찰 받는다. 이 업체가 90억원에 투찰한 경우 공사를 발주한 기관은 예정가보다 10억원의 예산을 절감하는 효과를 얻는다. 만일 이 사업에 업체들이 담합을 한 뒤 97억원에 낙찰 받는다면 예산 절감 액수가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이 경우 입찰 담합행위로 인한 손해를 7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종전까지는 뒤늦게 담합이 드러난 경우 공공기관이 책임을 묻지 않았는데 정부는 담합이 확인 될 경우 이에 대한 민사 책임을 묻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손해액 산출 방식에 대해서는 관련 소송에서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예상 차액을 손해액으로 산정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부산교통공사는 감정인을 통해 공구별 손해가 26억~65억원에 달해 담합에 참여한 업체들이 모두 156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행정소송과 형사재판과 같이 현대건설 등의 입찰은 담합행위로 규정했다. 이어 "피고들의 담합행위는 낙찰자, 투찰률 등을 사전에 공동으로 결정하는 행위로서 전형적인 입찰 담합에 해당한다"며 "일부가 형식적으로 참여하면서 1, 2, 4공구 입찰에서 가격 경쟁 자체가 소멸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손해배상에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재판부는 "감정인의 감정결과를 근거로 부산교통공사는 건설사들의 담합으로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며 "감정인의 감정결과만으로는 피고들의 담합행위로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감정인은 비교할 지하철공사 입찰 자료가 매우 적다는 이유로 토목건설공사 입찰 자료를 추가 분석했는데, 재판부는 신뢰성을 확보할 수준의 충분한 자료에 대한 분석이 이뤄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분석한 샘플의 숫자는 물론 손해액을 산출하는데 있어 추정 결과가 일관되지 않는 등 분석결과 신뢰성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부산교통공사는 아직 항소여부를 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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