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특파원 현장보고

트럼프 정계복귀 선언에 민주·공화 ‘고민’

2021-02-16 12:29:33 게재

미국 상원탄핵재판에서 두번째로 무죄평결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실상의 정계복귀를 선언하자 이를 저지하려는 민주당과 ‘트럼프 그림자’에서 탈출하려는 공화당이 대응책에 부심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재판은 57대 43표로 유죄평결이 더 많았으나 탄핵에 필요한 67표에는 10표가 모자랐다. 민주당 상원의원 50명 전원에 공화당 상원의원 7명이 유죄로 평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무죄평결 이후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운동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머지않아 굉장한 여정을 다시 계속하기를 고대하고 있다”며 정계복귀를 예고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참모들, 열성 지지자들은 2022년 11월 실시되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상하원 다수당 탈환을 적극 지원해 이를 성사시키면서 정계에 복귀해 정치적 영향력을 복원하려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측은 탄핵에 찬성한 공화당 의원들을 손볼 계획이다. 공화당 하원의원 10명과 상원의원 7명 가운데 재선이 열리는 선거구의 공화당 경선에 친트럼프 후보를 내세워 현역을 갈아치우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딜레마 빠진 공화당 일각 신당창당 논의도

백악관과 상하원 다수당을 모두 잃은 공화당 진영은 정치적 부활을 위해 트럼프 아래로 계속 뭉쳐야 할지, 아니면 트럼프 그림자를 탈피해야 할지를 놓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는 게 미 언론들의 관측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해온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무죄평결에 한표를 던지고도 본회의장 발언을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날의 사건에 실질적, 도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난했다. 공화당 진영 내 트럼프 지지자들이 여전히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기에 그의 정계 복귀, 영향력 행사를 최대한 차단해 트럼프 그림자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연방하원에서 공화당은 현재 222대 210석으로 뒤지고 있다. 매카시 의원은 2022년 중간선거에서는 민주당 의석 47석을 타깃으로 삼아 하원 다수당 탈환을 고대하고 있다. 때문에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원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대선에서 7400만표를 얻은 트럼프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놓고 의견이 양분된 가운데, 공화당 일각에서는 신당 창당 논의도 나오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전직 관리와 활동가 등 공화당원 120여명이 지난주 온라인 화상회의를 열어 극우 쪽으로 치닫는 공화당과 경쟁할 중도우파 신당을 설립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극우세력을 부추겨 의회폭동이 일어난 뒤 나타난 공화당 내 반발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토안보부 장관 비서실장을 지낸 마일스 테일러는 “공화당 내 많은 이들이 아직도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트럼프 때문에) 공화당 명예에 큰 흠집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며 논의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 회의에서는 신당 창당을 두고 찬반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참석자 40% 정도는 신당 창당을 지지했으나 그보다 많은 이들이 공화당 내에 분파를 신설하는 방안을 선호했다. 더힐은 참석자들을 인용해 “신당 논의가 계속되고 있으며 향후 수주, 수개월에 걸친 회의가 계획돼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신당 창당론은 공화당 연방의원들 사이에서는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탄핵에 찬성한 애덤 킨징어 하원의원(일리노이)은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신당 창당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탄핵을 지지한 공화당 하원서열 3위 리즈 체니 의원(와이오밍)도 “당을 쪼개려는 어떤 시도에도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당내에서는 신당 창당이 이론적 선택지일 뿐 미국 정치체계 내 장애물이 너무 많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향후 백악관과 상하원을 장악한다는 목표에서 신당 논의가 시작됐으나 정작 신당을 창당하면 보수 지지층을 분열시켜 오히려 민주당에 이롭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민주당 ‘트럼프 형사 기소’ 만지작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계복귀, 특히 2024년 대선 재출마를 법적으로 저지하려는 민주당 진영은 탄핵재판에서 유죄평결을 내린 직후 공직출마금지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플랜 A’가 무산되자 형사 기소를 통해 이를 저지하는 ‘플랜 B’를 계속 시도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진영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조지아에선 선거결과 뒤집기를 정치적으로 위협한 혐의를, 뉴욕에선 사업 관련 위법행위 여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연방정부 법무부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형사범죄 혐의를 수사해 기소한 뒤 사법부로부터 유죄평결을 이끌어내 공직출마 금지 결의안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퇴임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재판이 위헌이라는 공화당 진영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상원탄핵재판을 강행했다. 1년 전 탄핵재판에 21일이 소요됐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5일 만에 절차를 끝냈다. 애당초 유죄평결을 기대했다기보다는 트럼프의 복귀, 2024년 대선 재출마를 가로막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는 해석을 낳았다. 만약 상원탄핵재판에서 유죄평결이 내려졌다면 즉각 공직출마 금지 결의안을 발의해 단순 과반수로 통과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탄핵재판의 무죄평결로 트럼프에 대한 공직출마 금지 결의안은 물건너갔으나 일반 형사범죄로 기소해 법원의 유죄판결이 나온다면 공직출마 금지 결의안을 추진할 기회를 다시 얻게 된다.

바이든의 성공과 공화당의 변신이 최상

그러나 민주당 진영이 역작용을 최소화하며 트럼프의 정계복귀와 대선 재출마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탄핵이나 형사기소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 시대 정치를 잘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 공화당이 ‘트럼프에 의존했다가는 또 다시 망한다’는 점을 자각해 스스로 변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백악관과 연방 상하원 다수당을 동시 장악한 민주당이 코로나 사태를 진정시키고 경제를 회복시키면서 공화당 스스로 트럼프와 손절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이 트럼프 저지를 위한 최상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전략에는 여러 변수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오는 6월 말까지 전국민 백신접종을 완료해 코로나 사태에서 탈출할지, 1조9000억달러 규모의 ‘미국구조계획’이 2월 말이나 3월 초까지 연방 상하원에서 승인받아 시행될지, 그에 따라 미 경제가 급속히 회복될지 등 중대한 시험대를 통과해야 한다. 결국 향후 2년간의 민주당 집권이 미국민의 마음을 살 정도로 성공하면 2022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는 한편 트럼프의 복귀도 막아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최고 지도부의 정치가 미국의 부활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2022년 중간선거에서 최소 하원 다수당을 공화당에게 빼앗길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면 트럼프가 화려하게 복귀해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와 바이든의 리턴매치가 벌어질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한면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