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무부, 북한 해커 3명 기소

2021-02-18 12:10:10 게재

정찰총국 소속, 1조4천억원 해킹혐의 … 바이든정부 북미관계 영향 주목

미국 법무부가 17일(현지시간) 북한 해커 3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AP통신,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현지언론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전 세계 은행과 기업에서 13억 달러(약 1조4000억원) 이상의 현금 및 가상화폐를 빼돌리고 요구한 혐의로 북한 정찰총국 소속 3명의 해커를 기소했다.

지난해 12월에 제출된 공소장에 따르면 기소된 해커는 박진혁, 전창혁, 김일이라는 이름의 북한군 정보기관인 정찰총국 소속이다. 정찰총국은 '라자루스 그룹', 'APT38' 등 다양한 명칭으로 알려진 해킹부대를 운용하고 있다.

미 법무부에 기소된 '북한 정찰총국 해커 3명' | 미국 법무부가 기소한 북한 정찰총국 소속 3명의 해커. 작년 12월에 제출된 공소장에 따르면 기소된 해커는 (사진 왼쪽부터) 박진혁, 전창혁, 김일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며 북한군 정보기관인 정찰총국 소속이다. 정찰총국은 '라자루스 그룹', 'APT38' 등 다양한 명칭으로 알려진 해킹부대를 운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 검찰은 이들이 2017년 5월 파괴적인 랜섬웨어 바이러스인 워너크라이를 만들어 은행과 가상화폐 거래소를 해킹하는 등 관련 음모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들은 2018년 3월부터 작년 9월까지 피해자 컴퓨터에 침입할 수 있는 수단인 여러 개의 악성 가상화폐 앱을 개발해 해커들에게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17년 슬로베니아 기업에서 7500만달러, 2018년에는 인도네시아 기업으로부터 2500만달러, 뉴욕의 한 은행으로부터 1180만달러를 훔치는 등 가상화폐 거래소를 겨냥했고, '크립토뉴로 트레이더'라는 앱을 침투경로로 사용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뿐 아니라 미 방산업체들과 에너지, 항공우주 기업들을 대상으로 악성코드를 심은 이메일을 보내 정보를 훔쳐가는 '스피어 피싱' 행각도 시도했다고 법무부는 밝혔다.

로스앤젤레스 검찰과 미 연방수사국(FBI)도 뉴욕 한 은행에서 해커들이 훔쳐 2곳의 가상화폐 거래소에 보관 중이던 190만달러의 가상화폐를 압수하기 위해 영장을 발부받았다. 이 화폐는 은행에 반환될 예정이라고 당국은 밝혔다.

법무부가 지난해 12월 기소된 사건에 대한 공소장을 이날 공개하면서 향후 북미관계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때 기소된 사건이라 해도 그 공개 시점이 조 바이든 신행정부가 대북정책을 검토하는 와중에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 국무부도 이번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17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이날 미 법무부가 발표한 북한 해커 3명에 대한 기소와 관련한 질문에 "우리의 대북정책 검토는 북한의 악의적인 활동과 위협을 총체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물론 우리는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해 가장 자주 얘기하고 있다"며 "하지만 북한의 악성 사이버 활동은 우리가 주의 깊게 평가하고 주시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이 사건(자체)에 대해 특별히 언급할 만한 게 없다"면서도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의 악의적인 사이버 활동이 미국을 위협하고, 전 세계의 우리 동맹과 파트너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이전 사건을 통해서도 알고 있다"며 "북한이 금융기관에 상당한 사이버 위협을 가하고 있고, 이는 여전히 사이버 첩보 위협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것은 파괴적인 사이버 공격을 수행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과거 그런 사례 중 몇 가지는 상당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기소는 2014년 발생한 소니픽처스 사이버 공격에 연루된 박진혁을 미 정부가 2018년 기소한 사건을 토대로 이뤄졌다. 당시 박진혁에 대한 기소는 미국이 사이버 범죄와 관련해 북한 공작원을 상대로 처음 기소한 사례였다.

소니픽처스 해킹이 발생했던 당시 북한은 소니픽처스가 북한 지도자 암살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 '인터뷰'를 제작·배급하는 것에 대해 강력히 반발한 바 있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은 해킹 사태 이듬해인 2015년 북한 정찰총국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북 제재를 담은 행정명령을 발동하기도 했다.

박진혁은 소니픽처스 외에도 2016년 8100만달러를 빼내 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해킹, 2017년 워너크라이 랜섬웨어 공격, 2016∼2017년 미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에 대한 해킹을 시도한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그는 북한의 대표적 해킹조직으로 알려진 '라자루스' 그룹의 멤버이자 북한이 내세운 위장회사 '조선 엑스포 합영회사' 소속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사례는 북한이 유엔과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그들의 주요 수출국에서의 금융 사이버 절도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아울러 미 법무부는 돈세탁을 통해 북한 해커들을 도운 것으로 알려진 캐나다계 미국인이 관련 혐의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존 데머스 법무부 국가안보담당 차관보는 "총이 아닌 키보드를 사용해 현금 다발 대신 가상화폐 지갑을 훔치는 북한 공작원들은 세계의 은행 강도"라고 비난했다.

캘리포니아 중부지검 트레이시 윌키슨 검사장 대행은 "북한 해커들의 범죄 행위는 광범위하고 오랫동안 지속됐다"며 "이는 정권을 지탱할 돈을 얻기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국가적인 범죄 행위"라고 말했다.

미국기업연구소 분석가인 니콜러스 에버하트는 "13억달러는 2019년 북한의 민수용 수입상품 총액의 거의 절반"이라며 "북한 경제에 있어 엄청난 것"이라고 전했다.

워싱턴=한면택 특파원 hanm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