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전문가'라더니 영어학원 선생님

2021-02-23 11:36:21 게재

전 부산스마트도시 총괄 천재원씨, 확인된 이력은 '영어강사'

컨벤션업계에 컨설팅 사업 … "이력 과장, 허위" 제보 이어져

2018년 4월 23일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인 부산 에코델타시티(부산스마트시티) 총괄책임자(Master Planner)로 천재원씨를 추천했다고 밝혔다. 4차산업위원회는 천씨를 '스타트업 육성 기업가' '혁신적인 기업가'라고 추켜세웠다. 1조원짜리 대규모 사업의 총괄기획을 맡겼지만 내일신문이 확인한 경력은 영어학원 선생님이었다.

23일 내일신문이 천씨의 경력을 추적한 결과 유명 어학원과 대학가에서 오랜기간 영어강사로 활동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와 동업을 준비하던 사업가는 "천씨의 경력이 상당히 과장됐었다"고 털어놨다.

천씨는 지난 5일 사문서위조와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로 법원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내일신문 2월 16일자 19면)
인터넷 영어학습 관련 사이트 등에 올라와 있는 천씨 관련 이미지 중 일부를 발췌했다. 유명 어학원 강사 출신으로 알려진 천씨는 강사 소개나 자신이 집필한 영어학습 교재에 미국 대학 졸업과 투자은행 근무 등 이력을 소개해왔다.


◆유명 어학원 영어강사 출신 = 내일신문은 천씨 주변을 탐문하던 중 공교롭게 천씨가 이력서 등에 언급하지 않은 경력을 확인했다.

첫 보도가 나간 직후 한 제보자가 연락을 해 "천씨는 '피터천'(천씨의 영어 이름)이라는 이름으로 유명 어학원 강사로 활동했다"고 전했다.

수소문 끝에 내일신문은 천씨의 전 직장 동료로부터 이러한 제보가 사실이라는 내용을 추가 확인했다. 천씨와 같은 학원 강사를 지냈다는 A씨는 "천씨가 2005~2006년 모 어학원의 분원 부원장(책임자)과 강의를 맡아 진행했다"며 "분원의 경영사정이 어려워져 폐원한 뒤 다른 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말했다.

해당 어학원에 천씨가 근무했는지 공식 확인을 요청했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해당어학원 법무팀은 홍보담당자를 통해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따라 퇴직한 지 5년이 지난 직원이나 강사에 대한 정보는 보관·제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수사기관 등의 개입 없이는 확인이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A씨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을 통해 천씨 이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천씨는 어학원에서 경력을 쌓은 뒤 대학가와 공공기관 등으로 활동 폭을 넓힌 것으로 보인다. 이는 천씨의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의 수강 후기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천씨의 강사 소개를 보면 대학가에서 취업준비생을 위한 영어면접 강의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공무원들의 보수 교육 기관과 기업체 등에서 강의를 했다. 이러한 이력 소개는 2010년까지 이어졌다. 천씨는 영어 관련 교재도 여러권 집필했다. 강의용 교재로 보이는데 이는 천씨가 영어 사교육 시장에 상당기간 종사했다는 의미다.

천씨는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여러권의 영어학습서를 내놨는데, 천씨는 '스타트업 육성 전문가'로 활동하던 2016년에도 영어학습서를 펴내기도 했다.

경찰은 또 천씨 이력을 스타트업이 아닌 컨벤션에서 찾아냈다. 천씨는 2014년부터 경찰 수사를 받던 2019년까지 한국컨벤션디자인연구원이라는 곳의 대표이사로 지냈다. 이곳은 컨벤션업체의 컨설팅을 해주는 곳이다. 공교롭게 천씨는 스타트업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7년간 헤지펀드를 운영했다고 소개했는데, 컨벤션디자인연구원 대표로 활동하던 시기와 겹친다. 이 연구원은 천씨가 해외로 도피하기 전 해산됐다. 경찰은 이러한 사실을 통해 천씨의 이력이 상당부분 허위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상당수 이력 확인 안돼 = 그동안 천씨가 언론과 각종 행사 등을 통해 소개한 자신의 경력을 종합하면 주요 경력은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재무학 또는 경제학 졸업 및 학위 △모건스탠리 뉴욕 본사 근무 △SK그룹 애널리스트 △보안업체 A사 근무 △영국 런던의 스타트업 육성업체 창업 및 공동대표, 투자회사 파트너 △한-이스라엘 상공회의소 사무국장 등이다.

천씨가 공공기관에 제출한 펜실베이니아대학 졸업장은 경찰과 검찰이 허위로 봤고, 법원도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결했다. 모건스탠리 외에도 외국계 컨설팅업체 미국 본사에 근무했다는 여러 이력이 있었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내일신문은 천씨가 각종 기업과 기관 등에 제출한 자기 소개서를 중심으로 이력의 진위 여부를 확인했으나 상당수 확인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와튼 스쿨 출신인 한 대학 교수에게 문의한 결과 동문명단에서 천씨를 찾아내지 못했다. 해당 교수는 "펜실베이니아대학 홈페이지에서 동문 여부를 검색할 수 있는데 조회가 되지 않았다"면서 "다만 한국인들은 영어 철자 때문에 간혹 검색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국내에 있는 와튼 스쿨 출신 교수와 기업인을 상대로 천씨 학력의 사실 여부에 대해 상당기간 조사를 벌여 결론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천씨를 접촉했던 경제계인사들도 천씨 이력이 과장되거나 허위였다고 털어놨다. 천씨와 스타트업 육성 사업을 추진한 B씨는 "천씨가 활동했다는 영국 법인의 등기를 확인한 결과 천씨 이름은 등재되지 않았다"면서 "해당 업체가 명함만 파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천씨가 펜실베이니아대학을 정상적으로 졸업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C씨는 "천씨가 모건스탠리 출신이라고 하길래 어느 분야에 종사하느냐고 묻자 답을 하지 못했다"면서 "각종 행사장에서 자주 만났지만 벤처사기꾼으로 보고 천씨와 거리를 뒀다"고 말했다.

내일신문은 천씨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입장을 들으려고 했지만 천씨는 페이스북 게시물들이 노출되지 않도록 한 뒤 답을 주지 않았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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