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리포트

영풍제련소 하류에 다슬기가 없는 까닭

2021-02-24 11:11:35 게재
영풍석포제련소 하류 낙동강에는 '다슬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제련소 상류 여울에서는 쉽게 관찰되는 다슬기가 제련소 하류에서는 가슴장화를 신고 들어가 샅샅이 뒤져도 도통 보이지 않습니다.

2015년 여름 낙동강 취재 때 직접 확인한 사실입니다. 승부역 상류부터 분천리 비동교, 그 아래 현동천 합수지점, 더 아래 봉화소수력발전소 하류에도 다슬기가 없습니다. 심지어 청량산을 지나온 농암종택 앞 낙동강 여울에서도 다슬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이 일대 낙동강 지천에는 다슬기들이 지천입니다. 승부역 아래 골포천, 양원역 아래 회룡천, 현동역 아래 현동천, 명호에서 낙동강과 합수되는 운곡천에서는 다슬기들이 쉽게 관찰됩니다.

2015년 이후 매년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다슬기는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낙동강 수계에 없던 천연기념물 '어름치'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2014년 석포제련소 황산유출사고 이후 잘못된 민물고기 방류 탓으로 보입니다.
영풍석포제련소 1공장과 2공장 사이를 가로지르는 석포보. 하천점용허가를 받은 시설물이라고 하지만 취수용이나 농업용으로 전혀 쓰이지 않는다. 사진 남준기 기자


◆"황산이 다슬기에게 더 치명적" = 23일 영풍석포제련소가 낙동강 수질 보호를 위해 430억원을 들여 지하수 차단시설을 만든다는 보도자료를 보내왔습니다.

지하 수십미터 암반층까지 차수벽을 치고 차집시설을 설치해 오염된 지하수가 낙동강으로 침출되는 것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겁니다.

영풍석포제련소는 2019년 1·2공장 내부 바닥에 10m 깊이로 1.5km의 차수막을 쳤습니다. 2020년에는 빗물이 지하수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장바닥을 내산벽돌 등으로 교체했습니다.

그런데도 오염된 지하수 수십톤이 매일 낙동강으로 흘러듭니다. '카드뮴' 같은 중금속과 함께 수중생물에 치명적인 '황산'도 줄줄 새나옵니다.

지하수 유출 조사를 했던 박창근 가톨릭대 토목학과 교수는 "평균산도 3~4, 최고산도 1에 이르는 강산성 물질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고 말합니다.

박 교수는 "카드뮴은 물고기나 다슬기를 바로 죽이지 않지만 황산은 다르다"며 "이동성이 강한 물고기들은 피할 수 있지만, 다슬기들은 움직임이 느려서 피해를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차수벽 등 오염방지시설물이 공장 내부가 아닌 낙동강변 공유수면에 설치된다는 겁니다.

23일 오전 '영풍석포제련소 봉화군대책위원회'는 봉화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봉화군은 영풍석포제련소 낙동강 하천점용 허가신청을 불허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상식 대책위원장은 "우리집 정화조가 넘쳐서 옆집이 오염됐는데, 옆집 마당에 차수벽을 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위원장은 봉화군 의원 출신으로 지금까지 영풍석포제련소 주변 정밀 환경조사를 주관해왔습니다.

◆영남지역 1300만의 식수원 = 영풍석포제련소 공장입지에 대한 논란도 여전합니다.

석포제련소가 낙동강 상류에 들어선 건 1970년입니다. 그때는 제련소 인근에 연화광업소라는 아연광산이 있었습니다.

1998년 8월 연화광업소가 폐광한 뒤 석포제련소는 호주에서 캔 아연광석을 동해항으로 수입, 트럭으로 운송해서 낙동강 최상류에서 녹이고 있습니다. 물류나 공장입지에서 보더라도 말이 안되는 조건입니다.

이 일대 낙동강은 우리나라 최남단 '열목어'(멸종위기야생동물 2급) 서식지입니다. 이런 중요한 하천에 다슬기가 살지 못할 정도의 수질오염물질이 수십년 동안 배출되고 있습니다. 낙동강은 영남지역 1300만 사람들이 마시는 식수원입니다.

지금까지 영풍석포제련소는 여러번의 조업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국가경제 피해' '연관산업 타격' 등을 내세워 한번도 조업정지를 한 적이 없습니다.

십수년 동안 매년 1조원 가까운 순이익을 내는 회사가 "이전할 곳이 없다"며 여전히 낙동강 최상류에서 아연을 생산합니다.

동네에서 제일 잘 사는 부자가 "공장 만들 공간이 없다"며 마을 공동우물 바로 옆에서 독성 화학물질 공장을 운영하는 상황이 50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남준기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