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물에 처방전 발행, 의료법 위반"
2021-02-24 11:31:13 게재
허위명의로 처방전 발급한 혐의
1심, 무죄 … 2심, 벌금 300만원
대법, 상고 기각 … 유죄 확정
제약회사 영업사원과 짜고 허구의 인물 명의로 처방전을 발급한 의사에게 벌금 300만원이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마취과 전문의인 A씨는 2016년 4월 발기부전 치료제 처방전을 존재하지 않는 사람 명의로 발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인 B씨는 발기부전 치료제를 판매하기 위해 A씨에게 처방전 발급을 요구했다. 이에 A씨는 C라는 허무인(존재하지 않는 사람) 명의로 처방전을 발급해준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모두 7차례에 걸쳐 발기부전 치료제 1361정을 취득한 혐의로 기소됐다.
의료법 17조 1항은 의사가 직접 진찰한 환자에게만 처방전을 발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A씨가 존재하지 않는 환자 C에게 처방전을 발급해줬으므로 이 법을 위반한 것으로 봤다.
◆1심, 처벌 근거 없어 무죄 = 1심(의정부지법 강진우 판사)은 A씨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지만 '가상 인물 명의의 처방전 발급'에 대해서는 처벌 근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B씨에 대해서는 약사법 위반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의료법은 환자를 진찰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한 경우를 처벌하는데, A씨는 가상의 인물 명의로 처방전을 발급했으므로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위 의료법 규정의 취지는 특정인의 건강상태에 관한 정보를 확인 없이 기재해 잘못된 투약 등을 막고자 함에 있다"라며 "허무인의 경우에는 실존 인물을 가장하지 않으면 위 행위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또 "의사가 직접 진찰하지 않은 환자를 대상으로 처방전을 작성했더라도 환자에게 교부한 행위가 없다면 처벌할 수 없다"면서 "허무인의 경우에는 환자에게 교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2심 "처방전 작성·교부 대상 동일해야" 유죄 = 하지만 2심은 A씨의 혐의를 인정하고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의정부지법 형사1부(재판장 오원찬 부장판사)는 A씨가 진찰행위를 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해준 점, 환자가 아닌 제3자에게 처방전을 교부한 점 등이 의료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처방전은 어디까지나 처방전에 환자로 기재된 진찰 대상자에게 교부해야 한다"며 "의사는 처방전에 환자로 기재되는 환자와 교부 상대방을 모두 직접 진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료법 일반 원칙에 따라 처방전의 작성 상대방과 교부 상대방이 동일할 것이 요구된다"라며 "A씨는 작성 상대방과 교부 상대방이 달라진데다가 처방전 발급의 전제가 되는 진찰 행위 자체가 없었다"며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2심은 B씨(벌금 300만원)의 상고는 기각했다.
A씨는 상고했지만,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대법원은 "원심이 의료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단을 그르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전화로 처방한 의사, 의료법 위반" = 한편 대법원은 지난해 5월 의사가 직접 대면해 진찰한 적 없는 환자와 전화통화만 하고 전문의약품을 처방한 것은 의료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한 바 있다. 최근 정부의 원격의료 정책 공식화에 따라 촉발된 의료계 영리화 논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는 지난해 5월 25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의사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D씨는 2011년 2월 환자 E씨를 직접 진찰하지 않은 채 전화통화를 하고 전문의약품을 처방해 줬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D씨는 재판에서 "E씨가 병원을 찾았지만 어린 나이 등으로 처방을 보류했다가 지인을 통해 다시 약 처방을 요청받고 처방전을 발급해 줬다"며 대면 진료를 통한 처방전 발급이라고 주장했다.
1심은 "대면 진료를 했다는 D씨 주장을 믿기 어렵다"며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전화 진찰을 했다는 사정만으로 '직접 진찰'을 한 게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며 1심 판단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전화통화를 이용해 비대면으로 이뤄진 경우 의사가 스스로 진찰했다면 직접 진찰을 한 것"이라면서도 "처방이 전화통화만으로 이뤄진 경우 그 전에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고 진찰해 환자 상태를 알고 있다는 사정이 전제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단 한 번도 환자를 만난 적 없고, 통화 당시에도 환자 특성에 대해 알고 있지 않았다면 '진찰'이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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