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문화공간이 달라졌다

2021-03-23 11:39:29 게재

서대문구 신촌문화발전소

'워킹 스루'로 전시 관람

영화는 관객이 함께 완성

"관람객들 동선에 따라 작품을 겹쳐서 내걸었어요. 한곳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도록 유도한 거예요."

작가의 의중을 헤아리며 뚫어져라 그림을 감상하는 전시회가 아니다. 서울 서대문구가 코로나19 이후 일상화된 '비대면'을 문화공간에 접목했다. 단순히 작품을 온라인으로 감상하게끔 한 '랜선 문화공간'이 아니다. 현장에 대한 관람객들 욕구를 반영, 대면과 비대면을 혼합한 새로운 형태를 선보이고 있다.

문석진(왼쪽) 서대문구청장이 관람객들과 함께 확장현실 프로젝트 '가상이상'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 서대문구 제공


청년예술인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함께 성장하는 문화예술 공동체공간으로 2018년 조성한 창천동 신촌문화발전소가 중심에 있다. 건물 밖에서도 즐길 수 있는 워킹 스루(walking through) 전시와 관객들이 따로 또 함께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확장현실(extended reality) 영화가 눈길을 끈다.

5월 30일까지 이어지는 '활자, 활짝' 기획전은 아예 코로나를 염두에 두고 준비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에 지친 시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희망'을 주제로 한 타이포그래피(typography) 일러스트 등 그래픽디자인 작품 30여점을 선정했다.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내걸린 작품은 언뜻 지나치기만 해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르더라도 작품 속 글자 전체를 확인할 수 없도록 배치하기도 했다. 김나람 신촌문화발전소 홍보매니저는 "전체 단어나 문장이 아니라 한 글자만으로도 희망을 준다"며 "입구를 한 곳으로 통제하고 복도를 따라 이동하면서 감상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작가들에게는 사전에 전시 의도와 배치 등을 공유하고 그에 맞는 작품을 내놓도록 했다. 파이카팀으로 5개 작품을 선보인 이수영 작가는 "코로나 이후 혐오 표현이 난무하고 미움과 갈등 요소가 많아 부정적 의미의 단어를 배제하고 '사랑'이라는 인간의 기본 감정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건물 전체가 통유리로 돼있어 안팎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특성을 십분 살려 외부에서도 전시를 즐기도록 워킹 스루를 시도했다. 실제 각 작품은 도로변과 건물 측면에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앞서 지난 20일까지는 확장현실 프로젝트 '가상이상(假想以上)'을 진행, 관람객들이 새로운 세계를 접했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을 아우르는 초실감형 기술과 서비스를 입힌 작품 5점은 관객들이 함께 완성해가는 영화다. 해외영화제 가상현실 부문에서 인정받은 작품들로 선정했는데 책을 펼치거나 신문배달과 열차 선로변경, 위기에 처한 주인공을 위한 조치까지 관객 참여가 필수다.

다양한 공연상황에 맞춰 변용할 수 있는 소극장이 톡톡히 역할을 했다. 코로나 상황으로 지난해 250일 가량을 휴관하면서 일찌감치 가상현실로 눈길을 돌렸다. 연기자 등이 서던 무대를 4~5개 칸막이로 분리, 관객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전용 기기를 착용하고 작품을 즐기도록 했다. 관람을 전후해 전문가가 기기 사용법부터 작품 해설과 감상후기를 공유한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신촌문화발전소가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친 시민들에게 문화적 활력을 주는 공간으로 더욱 창의적이고 유연하게 운영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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