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야당에 '넝쿨째 굴러온' 2030 … 대선까지 같이 가 줄까

2021-04-01 11:17:42 게재

지지율 쏠림, 지원유세 연설까지 '천군만마'

총선 때 발목 잡혔던 사전투표, 이번엔 독려

"일시적 반사이익 아니다" 대선 지속 자신감

"국민의당 선전 때와 유사 … 여당 하기 나름"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보수야당을 향한 2030세대의 호응이 전에 없이 뜨겁다. 공정·정의를 기치로 내걸어놓고 기득권과 다를바 없는 행태를 보여 온 집권세력에 대해 작심하고 '회초리'를 들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2030이 이번 선거 후에도 보수야당에 힘을 실어줄 것인지에는 회의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무상급식 논란 걱정, 기우였다" = 최근 이어지는 여론조사를 보면 서울시장 보궐선거 판세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쪽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보수정당의 고질적 취약지대인 2030세대가 '변심'한 덕이 크다.

'사전투표' 독려하는 국민의힘 | 국민의힘 김종인 중앙선대위원장, 유승민 전 의원 등 참석자들이 1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4.7 보궐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서울동행 회의에서 '사전투표'를 독려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MBN이 한길리서치애 의뢰해 지난달 28~29일 이틀간 서울시민 84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후보는 60.1%의 지지율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32.5%)를 27.6%p 앞섰다. 앞서 25일 발표한 같은 조사결과(오 46.3%, 박 25.3%)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연령별로는 오 후보가 20대에서 무려 61%, 30대에서도 48.7%의 지지율을 기록해 박 후보(20대 25.1%, 30대 43.4%)를 따돌렸다.

실제 유세현장의 분위기도 예전과 다르다. 당과 무관한 일반 청년들이 앞다퉈 유세 지원연설에 나서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개인 사업을 하는 37세 유 모씨가 "저도 박원순 전 시장이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원인을 제공한 오 후보를 마냥 좋아하지 않는다"면서도 정부 심판론과 시정경험자에 대한 신뢰를 부각시키는 연설로 화제를 모았다. 일명 '비니좌'라는 별명이 붙은 이 청년의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가 30만회를 넘어섰다.

'공정과 정의를 강조한' 27세 취업준비생의 지원연설 영상도 유튜브 조횟수 50만회를 넘었다.

반면 이에 대해 '기획동원' 의혹을 제기했던 민주당은 거꾸로 낯 뜨거운 처지가 됐다. 박 후보 지원 연설을 했던 청년들이 잇따라 민주당 활동전력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오세훈 캠프 뉴미디어본부장인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박 후보 쪽에서 오 후보로 단일화가 됐을 때 무상급식 문제로 20대의 반감이 클 거라고 얘기하고 다녔는데 결국 기우였음이 드러났다"며 "현 정부가 기회의 사다리를 박탈했다는 인식이 압도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평소 불리하다고 판단했던 사전투표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정권에 분노한 마음을 속으로 삭여서는 안 된다. 투표장에 직접 나와 정권 응징 투표를 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전투표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사전투표에 대한 일각의 우려가 있지만, 정권 심판이라는 민심의 큰 흐름 속에서 우리 국민의 위대한 힘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누적된 분노, 회초리 든 청년들 = 오 후보에 대한 2030의 호응은 집권세력에 대한 분노가 누적된 결과라는 데 전문가들의 이견이 없다.

2018년 말, 기획재정부의 '적자 국채발행' 의혹을 제기한 신재민 사무관을 "철부지"로 몰아가며 '꼰대' 면모를 보였다는 비판을 받았던 정부여당은 이후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강행, 조국사태 등을 거치며 2030세대의 외면을 받기 시작다. LH사태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촛불정국 때부터 젊은층의 가장 큰 관심사는 공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는데 정부여당이 이를 해소해주기는커녕 오히려 키웠다"며 "회초리를 들어야겠다는 결심이 굳은 상태에서 야당에 대한 기대나 불만 모두 상대적으로 적으니 쏠림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국민의힘 쪽은 단순한 반사이익은 아니라는 시각이다.

김병민 비상대책위원은 "조국 사태 때도 대학생들이 촛불집회를 하면서 분노했지만 우리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진 않았는데 이번엔 다르다"며 "일시적 반사이익은 아닌 것 같다"고 풀이했다. 그는 "5.18 사과, 약자와의 동행 등 당의 변화 노력에 이어 단일화까지 성사되면서 대안정당으로 볼 수 있는 상태까지 온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박 후보 쪽에 비해 네거티브를 자제하고 젠틀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오 후보에 대한 호감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따끔한 경고 이상으로 해석하긴 어려워" = 그러나 이번 선거가 끝나도 2030이 국민의힘을 지탱해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 교수는 "사실 오 후보 쪽 청년공약이 박 후보보다 딱히 나은 것도 없고, 당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은 여전히 좋지 않다"며 "내년 대선까지 2030을 지켜낼 동력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당이 초기에 호남민심을 일시적으로 흡수하며 선전했던 현상과 유사하다"며 "결국 민주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봤다.

2030의 보궐선거 표심과 실제 정당 지지도가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보수정당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한국갤럽의 지난달 23~25일 조사에 따르면 20대는 26%, 30대는 39%가 민주당을 지지했다. 국민의힘은 20대로부터 12%, 30대로부터 23%의 지지를 받는 데 그쳤다. 2월 2~4일 같은 조사에서는 민주당이 20대 26%, 30대 4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국민의힘은 각각 13%씩의 지지를 받았다. LH사태로 30대가 요동을 치긴 했지만 여전히 보수정당에 대한 젊은층의 시선은 차갑다는 방증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젊은층의 진보우위 정치지형이 바뀌었다고 보긴 어렵다. 따끔하게 경고하겠다는 의미 이상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며 "청년층이 여당에 대한 지지를 완전히 철회한 게 아니라면 여당이 수습할 수 있는 방안은 많다"고 말했다.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광양곡성구례갑 당협위원장(35세)은 젊은층의 오 후보 지지세에 대해 "우리가 잘했다고 볼 만한 요소는 거의 없다. 기득권의 모순을 누구보다 빨리 포착하는 2030의 특성이 발현된 것"이라며 "이번 선거에서 이긴 후에도 이들의 마음을 붙잡아 호감으로 바꿀 수 있을지가 숙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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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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