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위안, 달러패권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2021-04-07 12:26:27 게재
WSJ “실시간 거래추적에 거시경제적 이점 ... 아마존·우버의 시장충격에 버금갈 것”
요즘 화폐는 이미 가상적 측면을 지닌다. 신용카드는 물론, 미국의 애플페이나 중국 위챗페이와 같은 결제애플리케이션은 지폐나 동전을 지닐 필요성을 없앴다. 하지만 컴퓨터로 돈을 옮기는 수단에 불과하다. 중국은 법정통화 자체를 컴퓨터 코드로 바꾸려 한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는 금융시스템 외부에 존재하고, 정부가 발행하는 법정통화도 아니다. 하지만 디지털화폐의 미래를 보여줬다. 중국이 구상하는 디지털위안은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통제한다. 중국정부는 디지털위안을 통해 경제와 국민을 실시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중국은 디지털위안을 국제화할 계획이지만 글로벌 금융시스템과는 거리를 둘 방침이다. 이는 2차세계대전 이후 달러를 기본축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디지털위안의 발행목적은 뭘까. 인민은행 디지털화폐 연구소장인 무창춘은 “중국의 통화주권과 법정통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며 “우리는 미리 계획해야 한다”고 말했다. WSJ는 “아마존이 상거래시장을, 우버테크놀로지가 택시시장을 뒤흔든 것처럼 디지털화폐는 국제금융시스템의 펀더멘털을 재정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미국의 최대 경쟁국인 중국이 국가적으로 디지털화폐를 도입하는 데 앞장섰다는 건 워싱턴정가에 큰 우려를 던진다. 최근 미 재무장관 재닛 옐런과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 제롬 파월은 ‘중국의 디지털위안 등이 달러패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질문을 받고 “디지털달러 발행이 미래 언젠가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 등을 포함해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해 열심히 연구중”이라고 밝혔다.
달러는 이전에도 유력한 도전자를 맞은 바 있다. 유로화가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오히려 달러 중요성은 이후 더 커졌다. 달러는 다른 모든 국제통화를 압도한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 조사에 따르면 국제 외환거래의 88%에서 달러가 오간다. 위안화 거래는 고작 4%대다. 주요 경제학자와 애널리스트는 ‘디지털화폐 형식이라고 해도 은행간 전신송금 부문에서 위안화가 달러의 경쟁자는 될 순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디지털위안은 국제금융시스템의 주변부를 야금야금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국제적으로 돈을 송금할 때 디지털화폐의 유용성은 커진다. 또 달러시스템을 우회할 수 있는 디지털화폐는 미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경제제재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일하다 현재 국제문제 싱크탱크인 미 ‘대서양위원회’의 지오이코노믹스 센터장인 조시 립스키는 “달러를 위협하는 그 어떤 것도 중대한 국가안보 이슈가 된다. 장기적으로 달러의 입지를 위태롭게 한다”고 말했다.
중국 “통화주권과 법정통화 지킨다”
중국 디지털위안은 모바일폰에서 사용가능하다. 지난 수개월 동안 중국민 10만명 이상이 인민은행에서 모바일폰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았다. 이를 통해 정부가 지원하는 소액의 디지털현금을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매장에서 사용했다. 2살배기 딸의 사진을 찍는 데 디지털위안을 쓴 베이징의 젊은 여성 타오 웨이는 WSJ에 “아주 좋다”고 말했다.
중국정부는 디지털위안이 지폐, 주화와 함께 유통될 것임을 시사했다. 중국 외부의 은행가와 애널리스트들은 ‘중국이 결국 모든 화폐를 디지털화하는 게 목표’라고 본다.
화폐를 발행하는 정부 입장에서 디지털화폐는 거시경제적으로 이상적인 도구다. 사람들의 지출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고, 재난민에게 신속히 구호자금을 보낼 수 있다. 금융범죄를 즉각 적발할 수도 있다. 중국정부는 디지털위안 시범사업에서 사용자들이 신속히 지출할 수 있도록 사용만기를 뒀다. 신속한 경제부양이 필요할 때 더없이 유용한 측면이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는 극심한 변동성으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인민은행은 디지털위안 가치의 출렁임을 엄격히 통제할 전망이다. 사실상 디지털위안과 지폐 또는 주화에 가치상 차이를 두지 않기 위해서다. 또 유동성 증가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디지털위안이 발행될 때마다 물리적 형태로 유통중인 1위안을 거둬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2009년 비트코인이 세상에 등장했을 때,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디지털화폐의 중요성을 무시했다. 반면 중국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중국 지도부는 암호화폐가 정부의 힘을 약화시킬 가능성을 우려했다. 2002~2018년 인민은행 총재를 지낸 저우샤오촨은 “비트코인은 나를 감탄시킨 동시에 두렵게 만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2014년 그는 국가가 발행하는 디지털화폐 가능성에 대해 공식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과거 중국은 통화와 관련해선 선구자와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위안화 가치에 대한 중국의 엄격한 통제는 다른 나라의 조치와 명확히 대조되는 지점이었다. 이와 동시에 중국에선 금융기술 혁신이 진행중이었다. 중국인들은 디지털결제 애플리케이션인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에 열광했다. 현금사용 필요성이 사실상 거의 없어졌다.
그리고 2019년 중순 미국의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이 자체적인 암호화폐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국민국가 단위를 넘어 전세계 광범위한 사용자기반을 갖고 있는 페이스북이 디지털화폐를 발행·유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경각심을 불렀다. 기술이 전통의 화폐시스템을 뒤집을 수 있다는 생각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페이스북의 디지털화폐를 막는 데 집중해 결국 뜻을 이뤘다. 반면 중국은 디지털위안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주요도시에서 디지털위안 시범사업에 돌입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중앙은행들은 노심초사하기 시작했다. 디지털화폐로 전세계를 아우르겠다는 페이스북의 야심이 중국정부에 의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한 간부는 “일종의 우버 충격이었다”며 “다른 나라의 통화가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유통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핵탄두보다 달러제재 무력화가 더 위협
달러는 전세계 2만1000곳 이상의 은행들의 원자재다.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은 오래 전부터 국제적 통화 흐름을 꿰뚫고 있었다. 미국정부는 달러시스템을 거치는 한 전세계 그 어느 개인이나 기관이라도 자금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전격 동결할 수 있다. ‘달러 무기화’로 비판받는 대목이다.
핵무기 프로그램과 관련, 북한과 이란에 대한 미국 제재는 두 나라의 경제를 마비시켰다. 비밀주의를 자랑하는 스위스 은행들도 8년 전 미국정부의 압박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지난 2월 미얀마의 쿠데타 이후 미국은 이 나라 군부지도자들의 계좌를 동결했다. 미 재무부가 관리하는 ‘특별지정국가 및 개인명단’은 사실상 지구상 모든 나라를 겨냥하고 있다.
미국과 무역·기술전쟁을 벌이는 중국은 최근 미정부의 광범위한 경제제재에 당황했다. 250명이 넘는 중국인이 제재대상에 올랐다. 미국이 내세운 이유는 소수민족에 대한 학대나 홍콩 민주화 탄압이다. 홍콩 행정장관인 캐리 람은 집에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고 한다. 자칫하면 미국의 제재대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글로벌 은행들이 람 장관의 자금을 맡길 꺼려해서다.
국제금융거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의 중개가 필수적이다. 미국은 SWIFT를 통해 국제 자금흐름을 손바닥 읽듯 꿰뚫는다. 하지만 디지털위안은 다르다. 미국의 감시를 피할 수 있다. 디지털위안이 국제적으로 매력을 끌게 될 지점이다.
WSJ에 따르면 2019년 미 하버드대에서 워게임을 실시했다. 미국 베테랑 당국자들은 디지털위안으로 몰래 자금을 건네받은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나선다는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대책을 강구하느라 부산을 떨었다고 한다. 워게임 참가자 중 현재 바이든행정부에 승선한 사람이 여럿이다. WSJ는 “참가자들은 북한의 핵탄두보다 달러제재를 무력화시키는 디지털위안의 위력을 미국 안보에 더욱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했다”고 전했다.
국무부 정무차관을 지냈고 현재 주중대사로 유력한 니콜라스 번스는 당시 워게임 참가자들에게 “중국이 미국의 제재 지렛대를 우회하면서 우리에게 큰 골칫거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디지털위안에 대한 중국의 마케팅도 적극적이다. 국영방송인 CGTN이 온라인에 게재한 영어 애니메이션엔 미국 성조기가 그려진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디지털위안이 새겨진 금주화에 넉다운 당하는 장면이 들어있다. 해당 장면 설명은 “미국은 달러 기반 SWIFT를 통해 다양한 주체들을 제재하면서 국가간 금융거래와 은행시스템을 무기화하고 있다. 디지털위안은 이에 대해 독립적인 대안을 제시한다”고 돼 있다.
디지털위안 도입 초기엔 돈이 금융시스템에서 유통되는 방식에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민은행 방침에 따라 6개 국영은행이 중소규모 일반은행과 알리페이·위챗페이 등 결제앱 업체에 디지털위안을 배급하면 이들이 송금-수금자의 상호작용을 관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전자거래와 달리 디지털위안은 A에서 B로 즉각 이동하게 설계돼 있다. 이론상 은행이나 금융앱의 중개과정이 필요없다. 수수료나 거래지연이 없다는 의미다. 유일하게 필요한 중개인은 중앙은행이다.
인민은행 무장춘 소장은 "디지털위안은 국가가 보증하기 때문에 민간기업 소유의 결제플랫폼들이 제기하는 금융시스템 위협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열린다. 중국은 각국 선수들에게 디지털위안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을 넘어 전세계로 뻗치는 디지털위안의 야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게 될 것이다. 중국은 또 BIS, 홍콩·태국·아랍에미리트 중앙은행과 함께 디지털화폐 유통을 위한 국가간 프로토콜을 개발중이다.
전직 연준 이사로, 현재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 있는 케빈 워시는 "디지털위안을 향한 중국의 달음박질을 보면 미국이 어떻게 금융인프라를 현대화할지 주목된다"며 "미국이 5~10년 더 기다린다면 매우 심각한 정책적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리서치기업 'CBDC트래커'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 60개국 이상이 디지털화폐를 연구중이거나 개발중이다. 디지털화폐 잠재력은 크다. 세계은행 추산에 따르면 전세계 17억명이 은행서비스에서 배제돼 있다.
바하마공화국은 이미 공식 디지털화폐를 발행해 금융서비스에서 배제된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일부 국가들은 디지털화폐가 이주노동자 가족에게 더없는 편리함을 제공한다고 본다. 소액의 타국 송금은 번거롭고 수수료도 비싸기 때문이다.
ECB 간부는 "국가간 개인송금엔 수일이 걸린다. 속도와 효율성의 장점은 물론, 각국이 중국과 금융거래를 늘리는 상황을 고려하면 결국 디지털위안은 타국민도 선호하는 화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중국이 디지털화폐 국제 규정을 설정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5G이동통신이나 무인자동차, 안면인식 등처럼 선진 금융기술에서도 표준을 마련하거나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한편 최근 상원 청문회에 참석한 연준 파월 의장은 '미국패권을 방어하는 데 디지털달러가 도움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았다. 파월 의장은 "그같은 질문에 대한 연구는 우선순위가 매우 높은 프로젝트"라며 "우리는 첫번째가 될 필요는 없다. 대신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