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 벗어나 집 앞까지 온 마약공장·대리점

2021-04-30 12:05:23 게재

주거밀집 지역에 마약공장 차리고 주상복합 공용화장실서 '던지기'

마약범죄가 갈수록 지능화·고도화 되고 있다. 거래액도 상상을 뛰어넘는 데다가 주거지가 밀집된 지역을 거래 거점으로 삼거나 마약공장을 차려 놓는 경우도 속속 적발되고 있다. 집 앞에서 공공연히 마약제조가 되는 상황이다.

내일신문이 최근 1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마약사건을 파악한 결과 점조직 형태의 대면 거래에서 비대면 방식으로, 더 나아가 거점형 범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한 거래는 일반화돼 있고, 갈수록 지능화되는 형국이다.

2018년 검찰이 적발한 경기 고양시 오피스텔 마약공장 모습. 외부에서 보지 못하도록 암막 커튼을 치고선 햇빛 대신 LED 전구로 재배했고, 자동으로 물을 주는 등 스마트팜과 같은 시설을 갖췄다. 사진 서울중앙지검 제공


◆거점 잡고 던지기 = 일반 투약 및 거래에서는 '던지기'가 일반적이다.

던지기 수법은 매도자가 특정 지역에 마약류를 던져 놓으면 매수자가 이 장소를 뒤져 수령하는 방식이다. 매도자는 마약을 비닐백 등으로 포장한 뒤 숨겨져 있는 곳을 사진으로 찍어 매수자에게 전송하고, 매수자는 이를 수령한다.

최근 마약사범들은 던지기 거래 장소로, 상가건물의 화장실이나 에어컨 실외기가 모여 있는 곳 등을 선호한다. 과거에는 지하철역 화장실 등을 선호했지만 이용객이 많고 미화원들이 수시로 점검하기 때문에 마약범죄자들이 피하고 있다.

또 수사기관이 마약거래 현장을 덮쳐 매도자와 매수자가 동시에 검거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현장에서 증거를 확보해도 검거가 아닌 추적을 해야한다. 상선(윗선) 검거를 위해서다.

A씨는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류를 사들인 후 다시 되팔아 왔다. 지난해 가을부터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주상복합건물 공용 화장실을 거래 거점으로 삼았다. 저층은 상업시설이지만 윗층은 아파트인 건물이다. 인근 초중고교까지는 불과 400m도 떨어지지 않았다.

A씨는 이 공용화장실에서 수백만원어치 마약류를 사들이고 되팔아오다가 검거됐다. 그는 매도자에게 화장실에 마약류를 놓고 갈 것을 요구했고, 마약을 사겠다는 이에게도 이 화장실로 올 것을 요구했다. 이 건물 공용화장실이 마약대리점이 된 셈이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대개 마약 거래는 자신의 주거지나 일터에서 떨어진 곳에서 하는 게 일반적이다. 자신의 직장이나 주거지 주변에서 거래를 한 다는 것은 그만큼 마역거래가 일상화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거지에 대마공장 세워 = B씨는 다크웹을 통해 대마를 판매하는 형의 지시에 따라 서울 동작구와 관악구, 경기도 고양시 등에 대마공장을 차려 운영하다가 검거됐다.

수사기관이 공장을 급습했을 당시 동작구 공장에는 대마 70주, 관악구에는 63주, 고양시에서는 104주를 각각 재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판매하기 위해 보관하던 대마만 8.4㎏에 달했다.

이들이 얼마나 판매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B씨 일당은 수시로 대마를 흡연했다고 자백했다. B씨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나머지 일당에게는 각각 징역 1년 6개월에서 2년, 집행유예 2~3년씩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강력부는 2017년에는 부산에서, 2018년에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각각 대마공장을 적발한 바 있다. 부산에서는 도심상가건물에서 대마 30주를 재배해 판매하고 있었다. 이들은 1.25㎏을 팔아 1억5000만원어치 비트코인 수익을 얻었다.

'오피스텔 공장'으로 알려진 2018년 경기 고양시 오피스텔 사건은 그동안 적발된 재배 규모 중 가장 컸다. 이들은 150㎡ 규모 오피스텔 안에 수경재배를 할 수 있는 자동화 시설을 갖추고 300주를 키웠다. 대마 잎을 떼어낸 후에는 건조실로 옮겨 한 곳에서 재배 및 가공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들이 유통한 대마는 1㎏을 넘기지 않았지만 가상화폐로 거래를 해오면서 1억원 이상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필로폰 공장의 경우 화학공정으로 악취가 심한데다가 기술자와 장비가 필요하다. 이에 반해 대마는 일반인들이 구별하기 힘든데다가 특별한 공정이 필요하지 않아 급속도로 늘고 있다는 게 수사기관의 분석이다.

◆대규모 수입·수출까지 = 2018년 동남아시아 지역의 한 국가에서 법무부 조사부(한국의 강력부)가 필로폰 제조 유통공장을 급습했다. 이 공장에서 이미 제조된 400㎏이 유통돼 200kg은 압수됐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이 분석한 결과 압수되지 않은 물량이 한국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제기됐고, DEA는 한국 대검찰청에 경고했다. 수사기관이 추적에 나서 일부를 압수했지만 이미 상당 부분 유통된 뒤였다.

수사기관은 다른 마약류 중 필로폰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한다. 국내 마약 투약자들 중 필로폰 투약이 5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마약류에 비해 중독성이 커서 단약이 어렵기 때문이다.

마약류를 대량 거래할 때도 각종 대법원의 양형 기준을 고려해 지능적인 거래를 한다. C씨는 2020년 8월 새벽, 필로폰 거래 지시를 받았다. 최근 흐름상 필로폰은 회당 0.7g씩 투약하고 1회당 50만원 정도에 거래된다. 그가 매수자에게 건넨 필로폰은 700g으로 1000명이 1번씩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C씨가 판매한 필로폰이 일반인들에 유통될 경우 소매가로는 5억원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 C씨는 검거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수사기관은 C씨가 받은 돈의 액수에 주목했다. 그가 받은 돈은 4100만원. 대법원 양형기준은 마약 대량거래범(대량범)에 대해 3가지 유형으로 나눠 분류하고 있다. 5000만원 이상을 거래하면 가중처벌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다른 범죄와 병합이 되더라도 처벌을 낮추도록 4000만원 안팎에서 거래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만큼 마약사범들이 교묘해졌다.

이렇게 들어온 마약류는 국내에 유통되거나 역 수출 되기도 한다. 마약류 수출은 큰 손들이었으나 최근에는 국제우편이나 택배를 통한 소량 수출도 가능하다.

D씨는 미국에서 필로폰을 구해달라는 요청을 SNS로 받은 뒤 마약류를 택배로 미국에 수출하다가 검거됐다. 1심 재판부는 그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한국은 마약오염국" 연재기사]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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