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50대기업 시총, 전세계 GDP 28%

2021-05-24 12:27:49 게재

블룸버그 “30년새 기술기업이 화석연료기업 대체 ... 중국기업 급부상”



시가총액 기준 전세계 최대 기업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호황을 누렸다. 팬데믹 와중엔 오히려 과거보다 더 나은 실적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산하 경제연구소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가 전세계 50대 기업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시가총액은 2020년 4조5000억달러 더 늘었다.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하면 전세계 국가 국내총생산(GDP)의 27.6%를 차지한다. 30년 전인 1990년엔 이 수치가 4.7%에 불과했다. 10년 전인 2020년에도 12.7%였다.

50대 기업들은 수십년 전에 비해 더 많은 이익을 내면서도 세금은 덜 낸다. 50대 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 중앙값은 1990년 35.5%, 2000년 31.6%, 2010년 24.6%, 지난해 17.4%로 하락했다. 반면 매출액 순이익률은 반대 방향이었다. 1990년 6.9%, 2000년 12.5%, 2010년 16.8%, 지난해 18.2%로 올랐다. 2020년 1달러 매출에 약 18센트 순이익을 냈다는 의미다.

또 일자리 창출 과정에 투자하는 비중을 줄였다. 1990년 당시 전세계 최대 상장기업이었던 IBM은 매출의 9%를 설비투자에 썼다. 2020년 최고 자리를 꿰찬 애플은 단 3%만 설비투자에 썼다.

이처럼 슈퍼스타 기업들의 영향력은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더욱 커졌다. 이들 기업을 어떻게 길들일 것이냐는 문제가 수많은 나라들의 정치적 어젠다가 됐다. 아마존과 같은 기술기업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1년 동안 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사업모델로 유동인구 규모에 좌우되는 전통의 경쟁기업들을 압도했다.

각국 정부의 코로나19 부양책도 거대 기업들에겐 순풍이었다. 또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저금리로 증시를 부양했다. 50대 기업들의 주가는 고공행진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법인세를 올리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경제적 불평등의 장기적 흐름을 꺾으려 한다. 최소한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단행한 법인세율 삭감의 일부만이라도 되돌리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거대기업들이 세율이 낮은 국가나 조세회피처로 이익을 옮기면서 세금을 누락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글로벌 공조를 추진하고 있다.

2019년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에 따르면 장부상 외국인직접투자(FDI)로 기재된 것의 40%는 실체가 없거나 해당 국가 경제와 연관이 없는 페이퍼컴퍼니의 유령 투자였다.

미국 재무장관 재닛 옐런은 지난달 연설에서 “지난 30년 동안 법인세율을 낮추려는 글로벌 경쟁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제 주요 20개국(G20)은 다국적 기업에 대한 과세와 관련해 글로벌 법인세 최저한도를 설정함으로써 보다 공평한 운동장을 만들자는 공감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입장에 아일랜드 등 조세회피처로 이름난 국가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 나라들의 낮은 법인세율에 애플과 알파벳(구글 모기업) 등 다국적기업들은 지역본부를 만들어 절세와 탈세의 미묘한 담장을 오갔다. 미국은 당초 글로벌 법인세 최저율을 21%로 설정하자는 입장이었지만,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차원에서 15%라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1990년 전세계 50대 상장기업엔 중국 국적 기업들이 전무했다. 그러다 2000년 1개, 2010년 7개, 지난해엔 8개가 리스트에 올랐다. 중국의 등장은 대개 유럽 기업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했다. 50대 기업 중 유럽 기업들은 지난 30년 동안 15개에서 지난해 7개로 줄었다. 반면 미국 기업은 1990년 30개, 2000년 30개, 2010년 25개였다가 지난해엔 32개로 오히려 늘었다.

50대 기업들의 업종도 크게 변했다. 기술기업들이 50대 기업 리스트 상단을 꿰찼다. 1990년 하드웨어 기술기업은 1곳 소프트웨어 기술기업은 2곳이었고, 나머지 47개 기업은 비기술기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하드웨어 기업은 7개 소프트웨어 기업은 14개, 비기술기업은 29개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를 제외하고 화석연료 기업들은 모두 중도탈락했다.

기술기업의 이례적 약진은 각국 정부의 규제를 불렀다. 중국정부는 마윈이 이끄는 앤트그룹의 기업공개(IPO)를 막판에 중단시켰다. 또 알리바바그룹 등 계열사에 큰 벌금을 부과했다. 텐센트 등 다른 기술기업으로도 규제와 단속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은 아마존 알파벳 등 기업들을 상대로 어디에 본사를 두는지가 아니라 어디에서 영업을 하는지에 근거해 과세하는 방법을 모색중이다. 당초 이 구상은 트럼프 재임 기간 미국과 갈등을 빚게 하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바이든행정부 들어 이를 조정하려는 움직임이 엿보인다. 대서양 양편의 거래가 타결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미국에서도 거대기술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초당파적 지지를 받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이자 ‘아마존 저격수’로 불리는 리나 칸을 미국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으로 임명했다. FTC는 이미 페이스북을 해체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또 미 법무부는 알파벳에 대한 반독점 행태에 소송을 제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다른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인 팀 우를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했다. 우 교수는 2018년 ‘거대함의 저주’(The Curse of Bigness) 저서에서 “반독점법을 더욱 공격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현재 미국의 상황은 1세기 훨씬 전의 반트러스트 운동을 연상시킨다. 당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석유와 철도, 기타 산업의 독점을 해체했고 거대기업들에게 더 강력한 규제를 가한 바 있다.

슈퍼스타 기업들의 지배력이 늘어나면서 노동자들이 더 불리한 입장에 처한다는 대목도 있다.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십년 동안 미국의 임금상승률이 둔화한 이유를 기업 간 경쟁이 줄어든 데에서 찾고 있다. 2018년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산업 3/4에서 지난 20년 동안 기업 집중도가 더 늘었다. 더 적은 수의, 더 거대한 기업들이 시장을 지배하게 됐다는 것이다.

일부 기술기업들은 대규모 노동자 없이도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사업모델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 아마존과 알리바바 같은 기업들은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지만 저숙련, 저임금 일자리에 치우쳐 있다.

블룸버그는 “새로운 세대의 거대 기업들은 넉넉한 이익을 내면서도 세금은 덜 낸다. 자본 또는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도 줄였다”며 “이들은 통화, 재정정책에 벅찬 도전과제를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낮은 세금이 고용과 투자를 자극하면서 성장을 북돋울 것이라는 공급측면 경제학파의 주장은 이제 과거의 일일 수 있다. 그리고 중앙은행들이 저금리로 비슷한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개념 역시 타격을 받고 있다. 주요 거대기업들은 주체할 수 없는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빌릴 이유가 없다.

2020년 글로벌 50대 기업들은 모두 1조8000억달러 현금을 확보했다. 한해 필요한 설비투자의 수배를 커버하고도 남는 액수다. 1990년 50대 기업의 현금은 한해 설비투자액의 31.4%에 불과했다. 2000년 88.1%, 2010년 120.3%, 2020년 355.0%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다소 안심이 되는 대목은 글로벌 대기업 순위도 크게 요동칠 수 있다는 점이다. 10년 전인 2010년 대비 지난해 신규 진입한 글로벌 20대 기업은 아람코 아마존 페이스북 텐센트 테슬라 알리바바 비자 TSMC 삼성전자 JP모간 마오타이 마스터카드 등 12개였다. 글로벌 50대 기업으로 확대해도 약 절반 가량은 10년 전 리스트에서 탈락했다.

블룸버그는 “새로운 기업의 진입이 꼭 산업계의 창조적 파괴를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 거대 오일기업이 거대 기술기업으로 세대변화를 하는 것처럼 글로벌 경제의 시대정신 변화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며 “하지만 시장의 역학은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점, 최고자리로 오른다 해서 계속 머무를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은 긍정적 요소”라고 평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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