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하나로 온 마을이 '훈훈'
수원시 25곳에 '공유냉장고'
끼니걱정 덜고 공동체복원
지속가능 도시 만드는 '힘'
"어려운 사람만이 아닌 이웃 누구나 정을 나누는 공유냉장고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세권로의 한 골목길에 '공유냉장고'를 설치, 운영하고 있는 이윤경(53)씨. 이씨는 5년째 이 골목에서 카페를 운영하면서 단골손님들이 챙겨주는 음식을 함께 나눌 방법을 고민하다 '공유냉장고'를 설치했다. 수원시 20호 공유냉장고다. 공동주택단지로 연결되는 골목이라 이용하는 주민이 많다. 주민들이 넣어 둔 음식은 또 다른 주민이 금세 가져간다. '노지에서 재배했다'는 메모장과 상추가 '참 잘 먹었습니다'라는 답글로 돌아오기도 한다.
이씨는 카페가 문을 닫는 날에도 공유냉장고를 이용할 수 있도록 외부에 자리를 마련했고 접이식 천막도 설치했다. 틈틈이 들어온 먹거리 상태를 확인해 보기 좋게 진열하고 냉장고를 청소하는 것도 이씨 몫이다.
권선구 서둔동의 한 음식점 앞에 설치된 4호 공유냉장고는 인근 홀몸 어르신들의 끼니 해결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곽상희(49) 대표가 이웃 주민들을 위해 반찬과 찌개류를 넣어둔 덕분이다. 반찬이 가득 차는 오전 11시와 오후 3시쯤이면 홀몸 어르신들이 공유냉장고를 찾는다. 이 모(82) 할머니는 "혼자 지내며 밥을 어떻게든 해도 반찬을 하기는 힘든데 공유냉장고 덕분에 끼니 챙기기가 훨씬 수월해져 고맙다"고 전했다.
수원시와 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먹거리 거버넌스' 실천사업으로 2017년 시작한 '공유냉장고'가 마을 전체를 훈훈하게 만들고 있다. 공공의 예산지원 없이 순수하게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는 '공유냉장고'는 4년 만에 25개로 늘었다. 공유냉장고가 활성화되면서 운영자들끼리 온라인 채팅방을 만들어 매일 공유냉장고 운영현황과 관리에 관한 일화를 공유하고 있다. 지난해 환경부가 주최하고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주관한 제22회 지속가능발전대상 공모에서 대통령상을 수상, 우수 사례로 인정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후원도 늘고 있다. 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인근 대형마트에서 냉장고를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탑동시민농장 등 '도시농업 시민봉사단'은 수확한 농산물을 공유냉장고를 통해 시민들과 나눌 계획이다.
공유냉장고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가져간 만큼 음식물을 채워 놓는 게 규칙이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음식이나 주류 약품류 등은 공유할 수 없다. 환경보호를 위해 음식물을 담아 둔 유리병·재활용기는 반납해야 하고 플라스틱이나 비닐봉지 사용은 최소화한다.
지수진 수원시 지속가능발전팀장은 "독일의 골목냉장고에서 따온 아이디어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농업과 먹거리'라는 지속가능발전 대표과제 실천을 위해 시작했다"며 "초기에는 음식물 싹쓸이 등 문제도 있었지만 지속적인 안내와 관리, 주민참여로 잘 정착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 팀장은 "이용자들이 가져간 음식을 또 가져다 놓을 때, 남겨놓은 쪽지 등이 운영자에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며 "공유냉장고가 먹거리 거버넌스 구축은 물론 이웃사랑, 공동체 복원 등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