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바이든의 대 중국 강경책 동참할까

2021-06-09 12:00:05 게재

FT “EU, 중국에 회의적으로 변해 ... 하지만 냉전식 대결은 우려”

독일 앙겔라 메르켈(사진 왼쪽) 총리와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올해 1월 백악관에 입성한 직후부터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다른 것에 우선해 한가지 외교정책 목표를 분명히 밝혔다.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동맹과 함께하겠다는 것.

트럼프행정부 시절 미국은 중국에 강경하게 대했지만 동시에 가장 가까운 동맹과도 사사건건 부딪혔다. 바이든행정부는 미국의 글로벌 동맹을 다시 규합해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월 뮌헨안보회의에서도 “미국과 유럽, 아시아는 중국정부의 경제적 학대와 강압에 맞서 반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바이든 플랜은 일부 아시아 국가들에서 성공을 거뒀다. 일본 호주 등과 공동의 이해관계를 찾았다.

관건은 전통의 동맹 유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주말 취임 후 첫 해외순방을 한다. 현지시각 11일 영국 콘월에서 열리는 서방선진 7개국(G7) 정상회담에 참석한다. 그리고 벨기에 브뤼셀에 가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럽연합(EU)-미국 정상회담을 연다. 이후 스위스 제네바로 이동해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 “유럽의 외교관들과 관리들은 미국과 통합을 강조하는 성명서가 나오겠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어색한 현실을 다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EU가 최근 들어 중국에 대해 강경해졌지만 경제적·전략적 우선순위는 미국과 다르다는 것. 양측의 분열은 언제든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다.

EU의 한 선임 외교관은 FT에 “미국 행정부는 EU의 상황을 적절하게 고려하고 있다. 전임 트럼프 대통령,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과 달리 공개적인 갈등,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교착상태는 피하려고 노력한다”면서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의 이해관계는 미국과 100% 일치하지 않는다. 중국도 이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전 협의 과정에 관여한 사람들에 따르면 바이든행정부는 △홍콩 민주화시위 탄압 △신장 위구르 억압 △남중국해·동중국해에서 공세적인 군사훈련 △비판적인 국가에 대한 경제적 보복 등에 대해 뜻이 맞는 동맹들을 결집해 중국에 대항하길 원한다.

G7 정상회담에선 중소 소득 국가들에 인프라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논의할 전망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한편 EU와 미국은 민감한 기술을 중국에 판매하느냐를 놓고 협력하는 방법을 찾길 원한다.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는 다른 나라의 정상들도 대서양 양측의 통합 필요성을 인식한다. 트럼프행정부 시절 동맹간 소외와 분열을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FT는 “바이든 대통령은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다. 그는 중국을 겨냥한 냉전 스타일의 화법을 우려한다. EU의 한 관리는 “일부 EU 국가들은 적수(adversary)라는 용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종종 미국이 중국을 지칭할 때 쓰는 단어”라고 말했다.

리서치기업 ‘로디엄그룹’의 EU-중국관계 전문가인 노아 바킨은 “미국과 EU는 중국과 관련한 많은 우려를 공유한다. 하지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선 시각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은 자체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중국에 대해 물흐르듯 순탄한 협력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을 ‘체제 경쟁국’으로 지목

지난 2년 동안 유럽이 중국을 보는 시각은 점진적이지만 크게 변했다. 유럽국가 정상들은 중국이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무력과 보복 등 공세적인 외교를 지향하는 ‘전랑외교’(wolf warrior)를 벌이자 이에 맞대응할 필요성을 느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적극적으로 남중국해에 자국 전함을 보내려 한다. 중국을 상대로 ‘항행의 자유’ 메시지를 관철하려는 미국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미국의 방위조약국인 일본과 달리 대만에서 국지전이 일어날 경우 유럽이 힘을 보탤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항행의 자유에 대한 유럽의 지지는 중국과 관련해 미국이 홀로 남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과 관련한 유럽의 강경 스탠스는 최근 EU-중국의 투자협약에 대해 유럽의회가 비준을 연기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이 결정은 중국이 EU 정치인과 기관에 대해 보복제재를 내린 뒤 나왔다. 그에 앞서 EU와 미국 영국 캐나다는 신장 위구르인에 대한 처우를 놓고 중국 관료들에게 공동의 제재를 내린 바 있다.

중국이 동유럽, 중유럽 국가들과 결성한 ‘17+1 그룹’이 최근 위축된 것도 또 다른 사례다. 12개 EU 국가가 참여한 이 그룹은 한때 중국의 유럽 진출을 상징했다. 중소규모 유럽 국가는 중국의 투자를 열렬히 원했다. 하지만 이제 리투아니아가 공개적으로 발을 뺐고, 다른 EU 국가들도 해당 프로젝트를 경원시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유럽의 태도변화는 중국을 일부 영역에선 파트너이자 일부 영역에선 경제적 경쟁자로 규정한 2019년 EU 보고서에서 두드러졌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중국을 ‘체제 경쟁국’(systemic rival)으로 불렀다는 사실이다. 독일산업연맹(BDI)도 같은 해 이례적으로 강경한 보고서를 냈다. 중국의 부당한 사업 관행에 대해 유럽이 더욱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시에 EU는 유럽의 이해관계를 지킬 새로운 무기를 선보이고 있다. 해외, 특히 중국의 점증하는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최근 사례 중 가장 두드러진 건 유럽의회의 법안 상정이다. EU 이외 국가의 국영기업을 제재할 수 있는 권한, 공급망 내 속한 기업들을 상대로 권한 남용을 중지할 권한을 EU 위원회에 부여한 법안이다.

미 국무부 부장관인 웬디 셔먼은 최근 EU를 방문한 자리에서 “유럽이 중국을 보는 시각에 상전벽해의 변화가 있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의 한 고위관리도 “미국은 중국에 대해 유럽과 많은 진전을 이뤘다”며 “신장에 대한 단합된 제재는 큰 성과다. 6개월 전 EU와 캐나다 영국 미국이 중국의 인권탄압에 대항해 협력할 수 있겠느냐고 내게 물었다면 나는 ‘불가능하다’고 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바이든행정부가 직면한 문제는 그같은 태도상의 변화를 어떻게 가시적인 협력으로 전환하느냐는 것. EU-미국 정상회담에서는 ‘범대서양 무역기술위원회’ 출범이 논의될 전망이다. 5G와 반도체, 공급망, 수출통제, 기술 규정과 표준 등에 대한 양측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다.

과학기술 대치전선 강화

그러나 전직 CIA 전문가이자 현재는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 연구원으로 있는 마티즌 래서는 “기술이 중국에 대항하는 가장 중요한 영역 중 하나라고 인식되지만 글로벌 공급망의 복잡성을 고려하면 신속한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경고한다. 그는 “반도체 산업은 고도로 글로벌화됐고 공급망은 믿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다. 미국과 EU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며 “핵심 플레이어인 일본 한국 대만과 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EU의 한 관리는 “기술과 관련해 대서양 사이에 여전히 중요하고 지속적인 차이점이 있다”며 “예를 들어 EU와 미국이 데이터 보호와 빅데이터 콘텐츠에 대한 입장차를 극복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반도체 수출과 관련한 갈등은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를 보여준다. 네덜란드 기업 ASML은 최첨단 반도체 제조장비 시장을 지배한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비다. 하지만 ASML은 2019년부터 중국 최대 반도체 기업인 SMIC에 극자외선(EUV) 리소그래피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고 있다. 네덜란드정부가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 바이든은 지난주 SMIC를 포함한 59개 중국 기업에 대한 미국인의 투자를 막았다.

네덜란드는 ASML에 대한 수출허가 보류에 대한 이유를 공개한 바 없다. 하지만 이 사안에 정통한 사람들은 트럼프행정부가 네덜란드 정부에 로비를 벌였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트럼프행정부는 EUV기술이 중국 군부의 최첨단 무기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잠재적 우려를 갖고 있었다는 것.

ASML은 “현재의 지정학적 환경을 고려하면 네덜란드 외무부가 결정을 재고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통상장관인 시흐리트 카흐는 지난달 “ASML 수출허가 건은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우리는 개방적인 통상국가이고자 한다. 따라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동맹국과 이 사안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이는 매우 특별하고 민감한 문제”라고 말했다.

카흐 장관은 또 "중국에 대해 많은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 EU와 미국은 팀을 이룰 필요가 있다. 하지만 EU 내 다양한 기관 사이에서도 더욱 단합하고 협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 정책에 있어 모순적인 결과를 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독일에 양자택일은 없다

중국을 최대 교역국으로 중시하는 독일이지만, 최근 수년간 산업계의 대 중국관은 강경해졌다. 중소규모 기업들은 산업스파이들로부터 지적재산권을 지키는 데 고전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기업들이 유럽의 경쟁기업들을 속속 인수하는 걸 지켜봤다.

미국은 종종 독일정부의 대 중국 입장을 비판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독일을 냉전식의 대결적 입지로 몰아넣으려는 시도에 저항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올해 초 뮌헨안보회의에서 연설할 때, 중국에 대한 양국의 입장차는 분명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말 EU와 중국의 투자협정을 성사시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바이든 취임 한달 전 중국과의 투자협정을 신속처리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런 메르켈 총리는 오는 9월 독일 총선이 끝나면 정계를 떠난다. 중국에 대한 독일 정치권의 입장이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중국과 EU가 경제적으로 탈동조화하는 데 반대하는 정치인은 메르켈뿐 아니다. 대표적으로 루마니아 출신 유럽의회의원으로 메르켈의 기독민주당과 같은 중도우파 'EPP그룹' 소속의 이울리우 윈클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는 그 어떤 주장에도 단호히 반대한다.

내부 이견

바이든 대통령은 유럽 동맹국과의 만남에서 한일 정상간 만남 때의 전략을 다시 쓸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은 일본 스가 요시히데 총리, 한국 문재인 대통령과의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공개적인 대만 지지를 이끌어냈다. 한일 모두 미국과의 공동성명에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표현을 넣어 중국의 반발을 샀다.

미국 싱크탱크 '저먼마셜플랜'(GMF)의 중국 전문가인 보니 글레이저는 "바이든 대통령이 한일 양국에 취한 접근법을 유럽 정상회담에서도 쓸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과 중국을 놓고 어느 편을 들 것이냐 물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이 일본과 한국엔 강하게 압박했지만 유럽에 대해선 강도를 누그러뜨릴 것"이라며 "중국에 대해 내부적으로 의견이 갈린 유럽대륙을 다뤄야 하는 복잡미묘한 상황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안에 정통한 한 취재원은 FT에 "미국은 G7정상회담에서 중국에 대해 가능한 한 강도높은 표현을 쓸 것이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우한연구소 기원설' 등과 같은 문제를 제기해 배를 뒤집을 정도는 강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G7 외무장관들은 최근 공동성명서를 통해 전례없이 광범위하게 중국을 비판한 바 있다. 따라서 조만간 열릴 G7정상회담에서도 중국을 놓고 공개적인 이견 분출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다른 점은 명확하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은 중국의 인권탄압에 초점을 맞추지만, 일본은 중국이 남중국해·동중국해에서 벌이는 군사력 전개에 더욱 우려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신장 위구르 문제에 대해 중국을 제재하지 않았다.

한편 미국-EU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지속적인 분열을 피하려 고전할 전망이다. 보잉-에어버스 보조금 문제는 오래 전 불거진 갈등이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바이든행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에 집중하는 것과 관련, 미국-EU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우선 힘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브루킹스연구소 외교전문가인 톰 라이트는 "바이든행정부는 유럽에게 뭘 얻어낼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유럽을 원하는지에 대해선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궁극적으로 중국과 경쟁하는 유럽을 원한다면, 미국은 EU와 전략적 자율성, 부담의 공유, 무역문제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바꿔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은 바이든 당선 이후 대서양 관계의 해빙무드를 환영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4년 뒤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에 대해 우려한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 입성에 재도전할 뜻을 밝히면서다.

EU의 한 관리는 "지금 유럽의 분위기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 직후와 비슷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미국-EU 관계는 심각하게 악화됐다. 하지만 이번엔 숙취(hangover)가 심하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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