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을 기다리며
우리가 기다리는 '굴뚝'은 무엇일까
고공농성자 다룬 '굴뚝을 기다리며' … 극단 고래, 공동대표 체제로 연출과 운영 분리
[인터뷰] 이해성 강윤주 극단 고래 공동대표
극단 고래는 올해부터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 이 공동대표와 강윤주 공동대표(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가 함께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 연극계 최초로 연출과 운영의 분리를 시도한 사례다.
이와 함께 노동을 다룬 연극 'SWEAT 스웨트', 국립무용단 '산조', 국악계에서 합창 교향곡을 시도한 '아리랑, 끝나지 않은 노래'를 소개한다.
"굴뚝에 올라 있는 사람들은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저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혹독한 환경에서 426일 동안 뭘 기다리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죠. 개인의 욕망인 복직 투쟁 이상의 뭔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면 잘 이해가 가지 않더라고요.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고도의 기다림'이 계속 떠올랐고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마주해 작품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8일 서울 대학로에서 인터뷰한 이해성 극단 고래 공동대표는 '굴뚝을 기다리며'를 쓰고 연출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극단 고래는 '위안부'를 다룬 '빨간시'와 사회적 재난을 다룬 '비명자들' 시리즈 등 사회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작품으로 호평 받아왔다. 10일부터는 굴뚝에 오른 고공농성자들을 주제로 우리가 기다리는 것들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굴뚝을 기다리며'를 무대에 올린다.
◆극한의 상황, 우리의 삶 반추 = 이 공동대표는 2017년 블랙리스트 사태 당시 광화문 광장 캠핑촌에서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했다. 해고노동자들은 당시 이 공동대표가 극장장으로 있던 광화문 광장 '블랙텐트'의 설치와 해체에도 도움을 줬다. 2018년 겨울, 그는 당시 알고 지내던 파인텍 해고노동자들의 고공농성에 15일 동안 연대단식을 했다. 그는 "굴뚝은 70미터 이상의 고도에 있어서 중력·산소 농도 등 모든 것이 다르며 바람이 불면 굴뚝 자체가 흔들리기도 한다"면서 "태풍이 치면 천막이 날아가 밤새 비를 맞고 굴뚝이 휘어 있어 바로 눕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극한의 상황은 '굴뚝을 기다리며'에 고스란히 나온다. 다만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다. 굴뚝 위에서 주인공 누누와 나나는 절뚝거리며 좁은 굴뚝을 따라 걷는다. 이들은 말싸움을 벌이다 이내 화해하며 때론 함께 춤을 춘다. 실소와 폭소를 자아내는 언어유희가 계속되며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또 다른 등장인물들도 있다. 청소 미소 이소다. 청소는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현대사회 노동자들을 뜻한다. 반면 로봇인 미소는 조만간 다가올 탈노동을 의미한다. 이 공동대표는 "많은 일들이 기계화되면서 직업이 사라지는 시대, '인간에게 노동은 무엇인가' 질문해 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소에 대해서는 "'미투'는 사회적 정신적 혁명으로, 4050세대의 기득권이 2030 여성들에게 분산되고 있다"면서 "이소는 '미투'로 촉발된 현재의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고공농성자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반추해 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는 뭘 기다리고 있는지' 고민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장과 이론의 합 맞춘다" = 극단 고래는 올해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이 공동대표와 강윤주 공동대표(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2명의 공동대표 체제로 이 공동대표는 연출을, 강 공동대표는 운영을 맡을 계획이다. 이같은 연출과 운영의 분리는 우리나라 연극계에서 첫 시도다. 2010년에 창단해 11년째를 맞이한 극단 고래로서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도전인 셈이다.
이 공동대표는 "쓰고 연출하는 것은 창작 작업인데 제작비를 유치하고 정산을 하는 등 극단의 살림까지 하다 보니 한계를 느꼈다"면서 "전문 행정가가 함께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큰 상승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공동대표는 현장에서 역할을 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예술경영학자이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을 지내는 등 생활문화 문화정책과 관련해 여러 활동을 해왔다. 아마추어로서 생활예술 무대에도 종종 서곤 했다. 그러던 그는 관객으로서 2018년 '비명자들2'를 관람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아 극단 고래의 후원회원 조직인 통섭에 가입했다. 이후 통섭회원들과 함께하는 낭독공연에도 참여했다. 2020년 극단 고래가 10주년을 맞아 1달에 1편씩 연습실에서 실험적인 연극을 올려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연극으로 인큐베이팅하는 모습도 지켜봤다.
강 공동대표는 "미학적 사회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보여주는 극단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극단 고래가 지향하는 '고통의 공유를 통해서 상처를 치유한다'는 연극의 목적에도 공감했다"면서 "10주년을 맞아 단원들이 정말 해보고 싶었던 실험들을 시도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현장의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을 알아가는 단계에서 이 공동대표와 함께 현장과 이론의 합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사회적예술 기치로 활동 넓혀 = 이들의 의기투합으로 극단 고래에는 사회적예술을 기치로 내세우는 협동조합 '소셜아트고래'가 만들어졌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예술을 구현하기 위한 시도를 하는 조합이다. 또 극단 고래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을 이야기하는 무료 연속 강좌인 '고래인문예술아카데미'를 운영해 단원과 통섭회원들을 대상으로 인문사회학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강의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활동도 보다 확장할 계획이다.
이 공동대표는 "극단 고래를 시작한 이유는 연극을 통해 이 세상을 좀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서 "사회적예술 관련 활동을 꾸준히 하는 등 활동을 확장하다 보면 연극계에 사회적예술과 관련된 담론이 형성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공동대표는 "연기자로 성장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고래인문예술아카데미에 많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서 이들의 사회적예술에 대한 관심과 결핍을 느낄 수 있었다"라며 "또한 연습실이 위치한 정릉에서 주민들과 생활예술 활동을 해 나가면서 한국적 맥락에서의 생활예술에 대해 탐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소 대학로 연우소극장
일시 6월 10일~27일 평일 오후 8시/주말 오후 4시/월요일 쉼
가격 전석 3만원(비지정석)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