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남편 몰래 불륜남 집에 들이면 주거침입죄 될까

"남편 주거권 침해" vs "간통죄 우회 처벌"

2021-06-17 11:25:01 게재

1심 유죄·2심 무죄 … 대법원서 공개변론

대법관들 질의 이어져 … 전문가 의견 갈려

아내가 남편 몰래 불륜남을 집으로 들였다는 걸 알게 된 남편이 불륜남을 주거침입죄로 고소했을 경우 처벌할 수 있을까. 1심은 처벌 가능하다고 유죄 판결했지만,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이를 두고 대법원에서 공방이 벌어졌다.

◆전원합의체 공개변론 =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공동거주 상황에서 생기는 주거침입죄와 관련된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공개변론의 쟁점은 두가지다. 하나는 공동거주자 중 한 사람의 허락을 받았지만 다른 거주자의 의사에 반해 집에 들어간 경우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이며, 다른 하나는 공동거주자 중 한 사람이 타인과 함께 다른 공동거주자의 의사에 반해 집에 들어간 경우 주거침입죄가 성립되는지 여부였다.

첫 번째 쟁점은 한 남성이 불륜을 목적으로 부부의 집에 들어간 사건과 관계 있다.

A씨는 2019년 7~8월 내연 관계인 유부녀 집에 3차례 들어가 불륜 행각을 벌였다가 이 사실을 뒤늦게 안 남편으로부터 고소당했다.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침입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주거침입죄는 '주거의 평온'을 침해해야 성립하는데 내연녀가 열어준 문으로 들어갔으니, 집 안의 평온을 해친 게 없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1심은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남편은 그 자리에 없었지만 불륜남을 집 안으로 들이는 걸 반대했을 가능성이 크고, 이는 이 집의 공동 거주자인 남편의 의사에 반한 주거 침입이란 것이었다.

하지만 2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집에 들어오라는 내연녀의 승낙이 있었다면 당시 주거의 평온은 깨졌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주거침입죄의 성립 요건을 '현재 집에 있는 사람의 의사'로 좁게 해석한 것이다.

◆검찰 측 "주거침입으로 봐야" = 이날 공개 변론에서 검찰 측은 공동거주자의 승인이 있더라도 들어간 집에서 범죄 목적이나 범죄 행위, 민사상 불법 행위가 있었다면 주거침입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측 참고인인 김재현 오산대 경찰행정과 교수도 "주거침입죄는 거주자의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1명의 공동거주자가 동의한다고 해서 부재중인 다른 거주자의 주거권이 무시된다는 것은 사회 통념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한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다른 거주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거나 혼인·가족 생활의 기초가 흔들릴 정도의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목적·방식이라면 주거침입죄가 성립돼야 한다"고 했다.

여성변호사회는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해 가족 간 화해 여지를 마련해 줄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피고인 측 "의견대립은 공동체 내 해결" = 반면 A씨 측 변호인은 A씨를 주거침입죄로 처벌하는 것은 이미 폐지된 간통죄를 우회적으로 처벌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거침입죄가 사용된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또 공동거주자의 반대로 주거침입죄가 성립된다면 셰어하우스 등 다양한 주거 형태가 나오는 현실에서 타인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모든 거주자의 동의를 일일이 확인해야 해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

변호인 측 김성규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공동거주자 중 한 사람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주거침입으로 보는 것은 공동체의 의견 통일을 형법으로 강조하는 것"이라며 "의견 대립은 공동체 내부에서 해결할 문제인데 국가 형벌권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도 의견 제출을 통해 "다른 거주자의 의사에 반한다는 이유로 주거침입죄로 처벌한다면 출입에 동의한 거주자의 주거 자유와 평온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주거침입죄 인정은 신중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관들의 질의도 이어졌다. 안철상 대법관은 검찰 측을 향해 "부정한 목적이나 행위의 경우에만 주거침입죄를 적용한다면 해당 목적이나 행위에 대해 처벌하거나 책임을 물으면 되지 왜 주거침입까지 적용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기택 대법관은 변호인 측을 향해 "남편이 집에 있었고 A씨가 집에 오는 것을 반대했는데도 들어왔다면 주거침입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남편이 반대할 것을 명백히 아는데도 부재자라는 이유로 남편 의사가 무시될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공동거주자도 주거침입죄 해당되나 = 두 번째는 남편이 아내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문을 따고 집에 들어간 사건과 관련된 쟁점이다. 남편은 부부싸움을 한 뒤 짐을 싸서 집을 나갔다. 약 한 달 뒤 남편과 그의 부모가 집을 찾아갔는데, 집에는 '외출할 테니 집을 봐달라'는 아내의 부탁을 받은 처제만 있었다. 남편은 문을 열어 달라고 요구했지만 처제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에 남편이 부모와 함께 아파트 현관문 잠금장치를 부수고 집에 들어갔다. 남편과 부모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공동주거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남편과 부모에게 모두 벌금형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남편에게 무죄를, 부모에게는 1심과 같이 벌금형을 선고했다. 2심은 "공동거주자는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이에 검찰은 B씨가 공동거주자라도 다른 공동거주자의 공간을 침해할 권리가 없으며 범죄 목적이나 출입 과정에서 범죄가 수반되면 주거침입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현 교수도 "공동거주자인 가사도우미의 방에 집주인이 무단으로 침입할 경우 주거침입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변호인 측은 주거침입죄에서 말하는 '주거'는 '타인의 주거'를 의미하므로 공동거주자에게는 주거 침입이 성립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김선일 기자·연합뉴스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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