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에게 주치의를

국민 개인 건강관리는 주치의에게 맡겨야

2021-06-18 11:30:53 게재

건강보험진료비만 86조, 노인 복약관리도 안돼 … "만성질환·중증화 예방 위해 도입 절실"

코로나19 세계 대유행 속에 6월 17일 현재 사망자가 382만명이 넘었다. 사망자 대부분 고령이고 중증장애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다. 코로나19 유행 상황이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변이와 새로운 바이러스 출현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건강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국민 개인의 일상 건강생활과 경증질환 진료를 담당하는 주치의를 두자는 보건복지 전문가들과 소비자단체 등의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건강취약계층을 위한 주치의제도 도입의 필요성 등을 살펴봤다.

이미지투데이


2020년 건강보험 진료비가 86조원을 넘어섰다. 이런 비용지출에도 불구하고 환자와 가족은 이 병원 저 의원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운명에 맡겨야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에서 12개 만성질환으로 진료받은 사람은 1880만명이다. 이들이 사용한 건보 급여비용만 34조5297억원에 이른다.

만성질환 가운데 고혈압 환자가 653만명으로 가장 많았다. 관절염 502만명, 정신 및 행동장애 335만명, 신경계 328만명, 당뇨병 322만명 등으로 나타났다.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주리 원장이 방문진료 중이다. 사진 안산사협 제공

일상생활 관리만 적절히 해줘도 중증화나 입원 치료, 그리고 다른 복합질환 발생을 막을 수 있는 고혈압에 3조6516억원, 당뇨병에도 2조7393억원이 사용됐다.

임종한 '주치의제도 도입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인하대 의대학장)은 "우리나라는 질병 예방과 생활 속 건강관리를 담당하는 의료체계가 없다. 노인 장애인 만성질환자 등 건강취약계층들이 많은 비용을 지출하면서도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행하게 살고 있다"며 "국민 개인이 주치의에게 건강관리와 질병 초기진료 등을 받을 수 있도록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공공보건의료제도를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비용 저효율 한국보건의료 = '주치의제도'는 지역사회 주민(개인) 또는 가족이 자신들의 일차의료 의사(주치의)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건강관리 및 진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제도다.

부천 원미동 어르신들이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청춘싸롱에서 다리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사진 부천사협 제공


개인은 자신의 건강정보를 자세하게 알고 있는 주치의의 조언에 따라 '건강증진' '질병예방' '만성질환 관리'등 합리적인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이런 기조로 스웨덴 덴마크 영국 캐나다 등에서 시행중이다.

우리나라는 1998년 김대중정부 당시 주치의제도 도입을 국정과제로 삼았지만 의약분업제도가 추진된 후 정부 자체 동력이 떨어지면서 추진되지 못했다.

현재 국내에서 공식적인 주치의 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상 '주치의' 활동을 수행하는 곳이 있다.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국에서 24곳이 운영 중이다.

의료사협은 조합의 개인과 가족, 지역사회의 건강을 지키는 여러 활동을 진행한다. 이들 의료사협의 활동에서 주치의 제도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안성의료사협에 따르면 의료사협은 △1차예방활동으로 건강할 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함께 하고 △2차예방으로 질병이 발생할 경우 초기에 발견하기 위한 검진과 사후관리를 진행한다. △3차예방으로는 아파서 거동이 불편해지면 왕진 가정간호 재가간병 주간보호 등을 제공한다.

안성의료사협은 지역주민들을 △신생아·영아기 △유아기 △학령기 △청소년기 △청년기 △노년기 주기별로 나누고 '성장발달' '충치 및 구강 건강' '예방접종' '금연' '만성질환 관리' '지역사회모임' 등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권성실 안성의료사협 우리동네의원 원장은 "지금보다 더 시간을 투자하면 환자 상태를 속속들이 알 수 있고, 간단한 증상 확인만으로도 큰병으로 가는 걸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노인 21% 약물 3∼4개 복용 = 특히 건강취약계층인 노인에 대한 주치의제 도입 필요성이 크다. 2020년 건보 전체 진료비 86조9545억원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들이 사용한 돈은 37조4737억원으로 43.1%를 차지했다.

이렇게 엄청난 비용을 사용하지만 사실상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대부분 질병예방과 건강유지보다 치료 위주로 의료가 진행되고 있다.

2020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약물을 복용하지 않는 비율은 17.8%에 불과하다. 노인 21.4%가 약물 3∼4개를 복용한다. 5개 이상 복용하는 경우도 4.3%나 된다.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 따르면, 나이가 많을수록 건강이상이 발생한 장기가 여러 곳이기 때문에 통합적으로 파악하고 진단할 필요가 있다. 주치의가 있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부천의료사협은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을 직접 방문진료하고 생활습관을 교정하고 맞춤형 운동법을 알려준다. 교육을 받은 지역 건강리더들이 매주 방문해 만성질환관리와 운동을 도와준다.

부천시의 노인통합돌봄 선도사업과 결합해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중단됐던 지역의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청춘싸롱'도 다시 열었다. 건강강좌나 문화활동, 운동을 매주 2시간 진행한다.

부천의료사협 조규석 원장은 "지금처럼 행위별 수가제로 계속 운영한다면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공공의료에 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음의 병 앓은 경우, 신체질환도 같이 봐야 = 최근 정신건강 문제로 인한 개인-가족의 고통과 사회 부담도 급증하고 있다.

2019년 기준 국내 정신질환자수는 치매를 제외하고 약 316만명에 이른다. 최근 5년 동안 약 22% 늘었다. 국민 4명 중 1명은 평생 동안 한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할 정도로 흔한 사회 문제가 됐다.

정신질환자 약 50%가 만 14세 이전에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장기간 지속관리가 필요하고 사회적 부담도 크다. 삶의 의욕 저하나 알코올 등 각종 약물에 의존하고, 극단적으로는 자살 위험도 높다.

느티나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 따르면, 마음의 병이 왔을 때 스스로 알기도 어렵고 어느 의사에게 상담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마음에 대한 병을 관리하고 치료하려면 적절한 약을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약물의 효과만큼이나 부작용도 커서 전문성을 갖춘 주치의가 담당할 필요가 있다,

느티나무의료사협은 예약제를 통해 적어도 10분 정도 마음을 살핀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약물에 대한 거부반응도 있을 수 있다. 최소한의 약물을 사용하면서 환자의 마음을 열고 나누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장창현 느티나무의원 원장은 "약물 부작용에 대한 소통이 중요하다. 가족들이 환자의 건강상태를 돌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적절한 영양 섭취, 신체활동, 수면 습관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며 "마음의 병과 신체 상태를 동시에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주치의제 본격 안착시켜야 = 2019년 기준 261만명의 등록 장애인 건강도 주치의제 도입을 필요로 한다.

장애인들은 장애가 원인이 돼 생기는 건강 문제뿐만 아니라 건강을 위한 신체활동이 적고, 의료지원 부실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후천적 만성질환 때문에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현재 등록된 중증장애인은 98만명(37.6%)이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에 비해 실제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비율이 훨씬 높다. 2017년 기준 장애인의 만성질환 발생률은 84.3%(202만명)로 비장애인 46.5%보다 37.8%p 높았다.

장애인의 평균 사망연령은 2017년 기준 75.1세로 국민 기대수명 82.7세보다 평균 7년 이상 낮았다.

함께걸음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 따르면, 장애인들은 대부분 만성질환을 포함해 복합질병을 앓고 있다. 이들은 개별적인 치료도 필요하지만 주거 환경을 확인하고 생활양식을 이해하는 가운데 질병관리가 병행되어야 한다.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생활관리 처방을 함께 진행할 수 있는 주치의적 접근이 절실하다.

함께걸음의료사협은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 '방문진료' '건강학교' '건강활동소모임' '우울감 극복 명상프로그램' 등과 고립과 격리에서 오는 우울감을 털기 위한 '무장애 등반', 장애인들이 집을 떠나 숙박할 수 있는 '나들이 사업' 등을 진행 중이다.

최봉섭 함께걸음의료사협 전무이사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맞춤형 검진기관이 부족하다"며 "통합적인 건강관리가 될 수 있는 주치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장애인 건강주치의제도가 건강취약계층 가운데 유일하게 도입돼 있다. 시범사업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본격적으로 안착시키라는 장애계 안팎의 요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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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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