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준, 발작없는 양적긴축 가능할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2013년 긴축발작과 달리 우아한 출구전략 가능할 수도”
‘양적완화’(QE)가 시장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벌이는 논쟁은 문화전쟁과 비슷하다. 비판하는 쪽에선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 실행하는 양적완화가 자산거품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한편 정부에 은밀히 재정을 댄다고 주장한다. 이를 찬성하는 쪽에선 위기를 맞아 얼어붙은 시장을 안정시키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맞선다.
JP모간체이스에 따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를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자산은 2020~2021년 11조7000억달러 늘었다. 올해 말쯤이면 28조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현재 S&P500 전체 기업의 시가총액 3/4에 해당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이제 논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라며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에서 벗어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만 해도 중앙은행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안전자산, 현금으로 쏠리는 시장을 잠재우려 채권을 사들였다. 하지만 오늘날 각국 금융시장은 흥청거리고 인플레이션은 오르고 있다. 양적완화의 정당성은 거의 소진됐다.
특히 미국경제는 활황세다. 이달 2일(현지시각)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에 새롭게 추가된 일자리는 85만개에 달했다. 월가도 양적완화로 주입된 넘치는 유동성을 주체할 수 없는 형편이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이 관장하는 역레포(역환매조건부약정) 시장엔 7500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몰려 있다. 지난달 30일엔 거의 1조달러의 유동성을 빨아들인 바 있다. 게다가 미국 주택시장은 활황세다. 따라서 연준의 모기지담보증권 매입은 불난 데 부채질하는 격이다.
일부 중앙은행들은 이미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중앙은행은 지난 4월부터 채권매입 규모를 줄이고 있다. 호주중앙은행은 이달 6일 ‘9월부터 자산매입을 축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중앙은행은 자산매입 목표액(8950억파운드)에 다다르면 양적완화를 중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은행 앤드류 베일리 총재는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전 자산을 축소하는 방안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있다. 뉴질랜드중앙은행은 5월 당초 계획한 700억달러 자산매입을 중도에 멈출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중앙은행은 팬데믹 관련 양적완화를 어떻게 줄여나갈지에 대해 논의중이다.
그에 비하면 연준은 좀 과묵한 편이다. 지난달 연준 제롬 파월 의장은 “자산매입 축소에 대한 논의에 들어갈지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연준이 올해말이면 양적긴축을 선언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코노미스트지는”연준의 조심스런 태도는 2013년 기억 때문”이라며 “당시 연준이 채권매입량을 줄이겠다고 밝히자 채권이 시장에 쏟아지고 달러가치가 치솟았다. 신흥국 시장은 막대한 자본유출로 고통 받았다”고 전했다. 이른바 ‘긴축발작’이다. 파월 의장의 지난달 언급 역시 작은 규모지만 발작증세를 불렀다. 신흥국들의 통화가치가 하락했다.
양적완화의 효과를 수량적으로 계산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몇몇 단서는 있다. 중앙은행의 자산매입이 장기 채권금리를 낮춘다는 데에 모두들 동의한다. 하지만 얼마나 시장을 떠받치는지는 불확실하다. 지난해 벤 버냉키 전 연준의장은 “2014년을 기준으로 미국에서 5000억달러 양적완화를 할 때마다 미국채 10년물의 금리가 0.2%p씩 떨어졌다”고 시사한 바 있다. 이를 주먹구구식으로 적용하면 현재 연준의 총자산이 7조5000억달러에 달하기에 장기금리를 3%p 낮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분석도 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조지프 가뇽은 2016년 연구보고서를 통해 중앙은행이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하는 자산을 매입할 경우 국채 10년물의 금리를 약 0.5%p 낮춘다고 주장했다. 이를 현재에 대비하면, 미국과 영국, 유로존에서 펼치는 양적완화는 장기금리를 약 2% 정도 낮춘다고 볼 수 있다.
2013년 긴축발작 경험이나 위에서 언급한 수치들을 고려하면 주요국 중앙은행의 양적긴축은 글로벌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는 전세계적으로 자산가격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이는 장기금리가 지속적으로 낮을 것이라는 추정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월 의장은 올해 초 “자산매입과 관련한 의사소통에 매우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지는 긴축발작의 교훈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짚었다. 발작없는 긴축이 가능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014년 긴축발작은 버냉키 전 의장이 연준의 자산매입 속도를 줄일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비롯됐다. 투자자들이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자산가격이 하락했다. 이는 양적완화의 ‘신호이론’ 가능성을 시사한다. 즉 중앙은행의 자산 규모가 장기채권 금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미래의 기준금리에 대한 신호로 기능하면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만약 이 이론이 맞다면 발작없는 양적긴축이 가능할 수 있다”며 “사람들이 막연히 생각하는 자산매입과 금리결정 사이의 연관관계를 끊어내면 된다”고 지적했다.
적절한 사례도 있다. 연준은 코로나19 위기에서 사실상 양적긴축을 무리없이 수행했다. 팬데믹 초기 시장이 얼어붙었을 때 연준은 두달 만에 1조5000억달러에 육박하는 미국채를 쓸어담았다. 그랬던 연준은 현재 한달에 약 800억달러의 국채를 매입하고 있다. 그런데도 금리가 곧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은 없다. 또 채권 금리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신호이론을 지지하는 영국중앙은행 금통위원 거트얀 블리헤는 최근 한 연설에서 연준의 ‘사실상 양적긴축’을 지적하며 “채권금리와 양적완화 사이에 기계적인 연관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코로나19 팬데믹뿐만 아니다. 연준은 2018~2019년에도 자산규모를 크게 줄인 바 있다. 당시엔 채권을 시장에 매도하는 대신 만기가 도래할 때 재투자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산을 축소했다. 이때도 채권금리에 주목할 만한 큰 변화는 없었다. 최근 몇달 동안 양적긴축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커졌음에도 지난 3월말 이후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오히려 낮아졌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그렇다면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우아한 출구전략에 성공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 상승과 시장의 호황이 중앙은행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상황”이라며 “중앙은행의 자산이 계속 불어있는 상태는 잠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통화정책 실탄이다. 양적완화는 위기시 신속하고 규모 있게 시행할 경우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하지만 안정을 되찾는 상황에서는 효과가 줄어든다. 위기의 순간 중앙은행이 결연히 행동할 여지를 줄인다.
둘째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부적절하게 뒤섞일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그같은 비난에 직면했다. 올해 1월 파이낸셜타임스(FT)가 영국 국채시장의 18개 대형 투자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대다수는 ‘영국중앙은행의 채권매입 목적은 경제부양이라기보다 정부의 긴급지출에 자금을 대기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여기서 더 심각해지면 정부가 거리낌없이 지출해도 된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 양적완화를 활용해 경제불평등이나 기후변화에 대처하자는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 그러면 광의의 통화공급이 늘어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는 더욱 커진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중앙은행들은 경제위기가 닥치면 최전선에 나서야 한다. 상황이 정상화되는 때엔 존재감을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