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균형발전 정책 포기 선언한 것"

2021-07-13 10:44:09 게재

바이오랩허브·이건희미술관 입지결정에

부산·대전 등 비수도권 지역 반발 거세

자치경찰 일원화, 더딘 국회이전도 불만

허태정 대전시장은 12일 확대간부회의에서 "과정에 대한 논란이 있고 여러 아쉬움이 있지만, 무엇보다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을 어디서 이룰 것인지에 대한 더 큰 고민이 있어야 한다"며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공모사업인 'K바이오랩허브' 입지를 선정하면서, 애초 정부에 사업 아이디어를 낸 대전시를 배제하고 인천 송도로 결정한데 대한 비판이다.

같은 날 부산에서는 시민·사회단체들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이건희미술관' 서울 건립 결정에 대한 반발이 이어졌다. 동남권발전협의회는 이날 "우려했던 바가 현실이 됐다. 서울공화국을 강화시키는 발표에 아연실색할 따름"이라고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부산시새마을회·한국자유총연맹부산시지부·바르게살기운동부산시협의회 등 3개 국민운동단체도 이날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최근 비수도권 지자체에서 정부가 핵심 국정기조인 국가균형발전 가치를 포기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가 K바이오랩허브와 이건희미술관을 수도권에 두겠다고 발표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대전시가 반발하는 이유는 단순히 공모에서 떨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애초 대전시가 정부에 사업 아이디어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공모사업으로 전환됐고, 인천 송도가 낙점 받기까지 과정 자체가 불공정했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K바이오랩허브는 코로나19 백신 모더나를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한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 스타트업 지원 기관 '랩센트럴'을 벤치마킹한 모델이다. 대전시가 2019년 이 바이오랩센트럴을 한국형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정부에 제안해 지원을 요청한 사안이다. '뒤통수를 맞았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허 시장은 "향후 공모사업 평가 배점에서 지역균형발전가점이나 사업 아이템을 제안한 자치단체에 대한 인센티브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백신산업특구를 경쟁력으로 내세워 대전만큼 기대를 품었던 전남 화순도 불공정을 문제 삼았다. 구충곤 화순군수는 "접근성을 핵심 평가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반발했다.

이건희미술관 설립 역시 비수도권 지자체들이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결정이라고 지적하는 대표 사례다.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은 "수도권과 지방의 문화격차를 줄이려면 오히려 피해야 할 서울에 이건희미술관을 짓는다는 건 문화 분권에 대한 지역 열망을 외면하고, 국가균형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가균형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이건희미술관 서울 건립을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800만 동남권 주민들의 힘을 모아 이건희미술관 서울 건립이 철회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발은 이미 부산을 넘어 동남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13일에는 예술계 단체들이 집단 성명을 낸다. 부산예총·부산민예총·울산예총·울산민예총·경남예총·경남민예총은 13일 오후 2시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동시에 '이건희 기증관의 일방적 입지 결정에 대한 부산·울산·경남 예총·민예총 입장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들은 각각 부산시청 앞, 울산프레스센터, 경남도청 앞에서 입장문을 발표한다. 문화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부·울·경 문화예술계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단체가 모여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문체부에 이건희미술관 설립 계획의 원점 재검토와 입지선정을 공모방식으로 재추진하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당초 계획에서 한 발 물러서 자치경찰제를 일원화한 것이나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을 미적거리는 것을 두고도 분권·균형발전에 역행한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잇따른 수도권 규제완화를 두고도 마찬가지 반응이다.

이 같은 비수도권의 반발은 문재인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전체에 대한 혹평으로 이어졌다.

이두영 지방분권충북본부 공동대표는 "이번 랩허브 공모와 이건희미술관 입지 결정으로 문재인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포기했음이 명확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지방소멸과 수도권 초집중화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IT·BT 등 신성장동력을 수도권에 몰아주고 문화격차까지 더 벌이면 균형발전은 요원해진다"며 "당·정은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국회에 청와대까지 모두 세종시로 이전하고 공공기관 지방 이전도 빠르게 추진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그나마 민심이반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신일 윤여운 방국진 차염진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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