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투기자본 안방된 부동산 시장
지난해 외국인 건축물 거래 사상 최대 … 국토연 "주택시장 변동성 증가 위험"
중국인 구매 건수 급증 … 외국인 소유 아파트 32.7%, 소유주 거주한 적 없어
정부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을 통해 부동산 수요를 억제하고 있지만 외국인의 경우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1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국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투기 목적으로 수도권 토지와 아파트 등을 구입하는 외국인이 증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외국인 보유 토지는 253.3㎢로 전 국토 면적(10만413㎢)의 0.25% 수준이다. 전년과 비교해 1.9%(468만㎡) 증가한 수치다. 공시지가는 31조4962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3.1% 증가했다.
1년간 늘어난 외국인 보유 토지 면적은 여의도 면적(290만㎡)의 1.6배 크기다.
국적별로 미국(52.6%), 중국(7.9%), 유럽(7.2%), 일본(7.0%) 순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국가 출신이 25.3%를 보유했다.
주목할 대목은 중국인들의 약진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상훈 의원(국민의힘)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외국인 토지 보유 현황에 따르면 교포, 법인을 제외한 순수 외국인 소유 토지 면적이 지난해 상반기 기준 2014만2000㎡로 나타났다. 이는 2016년(1199만8000㎡) 대비 약 67.9%(841만4000㎡) 증가한 수치다.
중국인 소유 토지는 필지 기준으로 2016년 2만4035건에서 지난해 상반기 5만4112건으로 3만77건(125.1%) 증가했다. 공시지가 기준으로도 2조841억원에서 2조7085억원으로 30%(6244억원) 상승했다.
◆투기 목적 가능성 높다 = 문제는 외국인들의 국내 부동산 투자 중 상당수가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 성격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외국인들의 부동산 거래는 집값이 크게 오른 수도권 지역에 집중됐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들의 국내 건축물(단독주택·다세대주택·아파트·상업용 오피스텔 포함) 거래는 2만1048건으로 전년 대비 18.5% 늘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 1월 이래 최대 규모다.
거래는 수도권에 집중됐다. 경기도(8975건)가 가장 많았고 서울(4775건), 인천(2842건)이 뒤를 이었다. 특히 서울에서는 강남구(395건)의 거래가 가장 많았고 구로구(368건) 서초구(312건) 영등포구(306건) 종로구(272건) 송파구(256건) 등의 순이었다.
이 중에 투기성 거래를 의심할만한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해 국세청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소유주가 한 번도 거주한 적 없는 아파트가 32.7%에 달했다.
특히 가상코인을 활용한 환치기 수법, 탈세, 유령 회사와 같은 각종 꼼수를 부리는 외국인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관세청 서울세관본부는 최근 3년간 서울 시내 아파트를 매수한 외국인 중 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500여명을 조사했다. 그 결과 환치기나 관세 포탈 등 범죄자금으로 아파트를 매수한 17명(16채, 176억원), 외환당국에 부동산 취득사실을 신고하지 않고 아파트를 취득한 44명(39채, 664억원) 등을 적발했다. 적발된 외국인들의 아파트 매수 지역은 강남구가 13건(315억원)으로 가장 많고, 영등포구 6건(46억원) 구로구 5건(32억원) 서초구 5건(102억원) 송파구 4건(57억원) 마포구 4건(49억원) 등이다. 적발된 외국인 국적은 중국이 34명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 19명, 호주 2명, 기타 6명 등이었다.
실제로 중국인 A씨는 서울 아파트를 사기 위해 비트코인 '환치기' 수법을 이용했다. 한국과 중국 양쪽에서 활동하는 환치기 조직은 A씨가 중국에서 조직원 통장에 입금한 위안화 768만 위안으로 중국에서 암호화폐를 매수하고 이를 국내에 있는 조직원의 전자지갑으로 전송했다. 이후 환치기 조직은 국내 거래소에서 이를 매도해 A씨에게 4억5000만원을 송금했다.
A씨는 이렇게 불법 반입된 자금으로 서울에서 11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취득했다. 관세청 조사 결과 A씨가 아파트를 구입할 당시는 외국보다 비싼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시세,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출입국외국인청 이민특수조사대는 무역비자로 국내에 들어와 부동산 투기를 한 서남아시아 출신 B씨를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적발해 검찰에 송치했다. B씨는 2017년 7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인천과 부천 소재 빌라와 오피스텔 등 부동산 7채를 매입하고, 이를 임대해 수익을 올리는 등 비자의 범위를 벗어난 활동을 한 혐의를 받는다.
B씨는 단기 시세차익을 거두기 위해 이른바 '갭투자'로 부동산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3월 무역 경영(D9) 비자로 입국한 B씨는 20년 넘게 국내에 머물면서 자동차 모터와 전자제품 등을 수출하는 일을 해왔다.
이민특수조사대 관계자는 "외국인 부동산 투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며 "앞으로 주택 외 상가, 토지 등 거래내역도 조사하는 등 관계부처와 부동산 전반에 걸쳐 외국인 투기 세력을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내국인 역차별' 주장까지 나와 = 부동산 시장에서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내국인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내국인의 경우 주택담보대출 제한과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 보유세, 양도소득세 중과 등으로 부동산 매입을 막고 있다. 반면 외국인들은 이런 규제망을 피해 국내 부동산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해외 투기세력에게 안방을 내준 격이라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동산 전문가들에 따르면 외국인 부동산 투자에 대한 규제법이 불분명해 외국인 다주택자와 그들의 대출 여부 확인이 쉽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외국인들이 자국에서 대출을 받아 국내 부동산 투기를 할 경우 이를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 국내에서 보면 현금 구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 가족들 명의로 집을 여러 채 사더라도 그들이 서로 가족인지 파악하기 힘들어 다주택자 중과세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에 최근에는 갭투자를 이용하는 외국인도 늘고 있다. 3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병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토교통부가 제출한 주택자금조달계획서 세부내역을 분석한 결과 외국인이 서울시와 경기도에 있는 주택을 구입하면서 세입자의 보증금을 이용한 갭투기 건수가 2019년 54건에서 2020년 217건으로 4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난해 6월 이후 외국인들이 갭투기에 적극 나서면서 작년 6월부터 12월까지 월 평균 22.4건의 갭투기가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중국인 C씨는 자기자금은 3억원에 불과했지만, 세입자 보증금 22억5000만원을 이용한 갭투기로 서울시 광진구 자양동 다가구주택을 25억5000만원에 매입했다.
일본인 D씨는 자기자금이 2억8000만원에 불과했지만, 세입자 보증금 25억1500만원을 이용해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의 한 고급빌라를 27억9500만원에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곳곳에서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토연구원은 발간한 '국토정책브리프'에서 외국인의 국내 주택 구매가 우리 주택시장의 변동성을 증가시킬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국토연은 "외국인의 주택 투자는 이미 세계적으로 중요한 이슈로 부각됐다"며 "제주도에 쏠렸던 중국인들의 투자 수요를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에도 외국인의 주택 매입에 따른 시장 변동 위험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국토연은 또 부동산 취득 시 내국인과 외국인 간에 차이를 두지 않는 조세 제도가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박천규 국토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부부가 주택을 각각 1채씩 보유하면 다주택자가 돼 양도세가 중과되지만 외국인은 주택 보유 여부를 증명하기 어려워 과세에 차별이 생길 수 있다"며 "호주처럼 비거주 외국인의 주택 구입을 제한하는 등 외국인 거래에 대한 정책 시스템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 외국인 부동산 구입 제한 입법 움직임 = 외국인 부동산 투기를 경험한 국가들은 주택 취득 자체를 제한하는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호주에선 2017년부터 외국인이 신축 주택이 아닌 기존 주택을 취득하지 못하게 했다. 신축 주택을 취득할 경우에도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뉴질랜드는 2018년 제정된 해외투자법에 따라 외국인에 대해 주거용 부동산 취득에 제한을 뒀다.
홍콩은 해외자본 유입으로 인한 부동산 과열로 인해 2015년부터 투자이민제도를 전면 중단다. 또 비영주권자가 주거용부동산을 취득할 경우 취득 가격의 30%를 취등록세로 내도록 했다.
국내에서도 21대 국회 들어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대부분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으로, 국내 주요지역에 대한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을 막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