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갈등에 ‘새우 등 터지는’ 기업들

2021-07-14 12:45:47 게재

‘신뢰할 수 없는 기업’에 데이터보호 조치 ... “양국 모두 만족시킬 글로벌 기업 없어”

지난달 30일 뉴욕증권거래소 객장 스크린에 뜬 중국 차량공유기업 ‘디디추싱’의 로고. 이 기업은 뉴욕증시 기업공개(IPO)로 40억달러를 조달했으나 중국당국은 디디추싱이 개인정보 보호 의무를 소홀히 했다며 신규가입자 유치 금지, 중국 내 모든 앱스토어에서의 퇴출 등을 명령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지속적인 관계 악화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행정조치를 넘어 법적영역으로 전환되고 있다. 아시아타임스는 13일 “전세계 1, 2위 경제대국의 탈동조화 흐름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과의 대결국면마다 ‘미국은 공격자, 중국은 방어자’라는 프레임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젠 미국의 공격법과 동일한 무기를 개발해 실행하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논리다. 이같은 맞대응으로 미중관계가 더욱 악화할 것은 불을 보듯 환하다.

그동안 중국은 자국 기업과 개인에 대한 미국의 줄지은 제재조치에 분노했다. 미국뿐 아니다. 호주와 유럽연합(EU) 등 다른 서구권도 마찬가지로 비판하고 있다.

중국을 특히 자극한 건 미국이 중국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를 넘어 제3국, 제3자에게도 이를 지키라고 강제하는 상황이다. 행정조치뿐 아니다. 미국은 법을 개정해 미증시에 상장하는 외국기업의 회계요건을 엄격히 했다.

‘대결이 아닌 협력이 중요하다’고 자제를 촉구하던 중국은 2년 전부터 미국의 무분별한 제재를 따르는 기업들을 타깃으로 삼는 법적 대항조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초 중국의 움직임은 실체가 있다기보다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미중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중국의 대항조치는 구체적인 살을 더해 갔다.

중국은 2019년 5월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리스트를 만들겠다고 밝히면서 “국가주권과 안보, 개발이익을 보호하고 공정하고 자유로운 국제경제무역질서를 유지하며 중국기업과 기타 조직 또는 개인의 법적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은 외국기업들에게 해당 조치를 적용하지 않았다. 상무부의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리스트엔 어떤 외국기업의 이름도 오르지 않았다. 중국을 비난하는 외국계 싱크탱크와 비정부기구, 개인을 제재하긴 했다. 미국 상원의원 마코 루비오와 테드 크루즈, 전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 등이다. 이들에 대한 비자발급을 금지하고 중국기업과 거래할 수 없도록 했다.

올해 들어 중국정부의 입장이 다소 달라졌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1월 미국이 타국의 관할권에서도 불공정한 법을 적용하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한 규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중국의 기업과 기업인을 제재하고 이들과의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당국이 공개한 규정은 미중 무역을 막는 미정부의 조치가 아니라 제3국에 영향을 미치는 제재와 수출통제 조치를 타깃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중국은 미국의 제재를 따르는 제3국가와 이들 국가의 기업들을 겨냥한 것. 서구의 반중국 동맹을 무너뜨리려는 의도로 알려졌다.

중국이냐 미국이냐 양자택일하라

그러나 미국이 지난달 중국 태양광패널 제조사들을 제재리스트에 올리겠다고 한 이후 중국 상무부는 단호해졌다. 상무부는 “중국기업들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중국정부는 행정조치에 대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법제화 과정을 밟아 ‘반외국인제재’ 법안을 통과시켰다. 중국정부는 미국의 반중국 제재를 실행하는 개인들의 자산을 압류하고 비자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또 외국기업들이 미국의 조치를 따르는 과정에서 중국인과 기업이 피해를 입는다면 피해자는 이를 중국 법원에 고소할 수 있도록 했다. 차별적 제한조치로 발생하는 손실들을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아시아타임스는 “이 조치의 의미는 단순하다. 외국기업들에게 미국법을 따르거나 중국법을 따르거나 양자택일하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달 들어 중국 사이버공간관리국은 차량공유 기업 디디추싱을 자국내 모바일앱 장터에서 제거하라고 명령했다. 디디추싱이 개인정보의 수집과 활용을 규제하는 데이터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중국당국의 명령은 디디추싱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되기 몇시간 전에 단행됐다. 비슷한 다른 기업들도 이 조치에 영향을 받게 됐다. 당국은 디디추싱의 미국 기업공개(IPO)가 이뤄질 경우 지분을 가진 외국인들이 기업의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접근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우려했다.

중국정부는 중국 기반 데이터를 외국의 사법 또는 법 실행기관에게 공개할 경우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디디추싱이 이 지점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홍콩시티대학 법학교수인 왕지양유는 “EU도 미국의 제재조치를 무력화하기 위해 대항입법을 마련한 바 있다”고 거론하며 중국이 자체법을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중국당국과 전문가들은 “우리는 다른 나라가 먼저 제재를 부과할 때 오직 방어적으로만 대항조치를 사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 상무부 전 부부장인 웨이젠궈는 “그것은 여전히 미국에 대한 경고”라며 “중국은 과거 미국의 부당대우를 감내했지만, 이제는 쉽사리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중국 기반 데이터를 외국이 쉽사리 획득하는 것만은 아니다. 중국당국은 지난해 12월 미국이 ‘외국회사문책법’을 통과시켰을 때 강하게 비판했다. 미증시에 상장하는 외국기업들에게 중국 내 사업활동에 대한 회계감사 자료를 의무적으로 제공할 것을 요구하는 법이다. 또 그 어떤 외국정부도 상장기업을 사실상 통제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회계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중국기업, 중국정부가 소유한 기업이 미증시에 상장될 수 없도록 한 조치였다.

양국 정부는 이 문제를 수년 동안 협의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중국 루이싱커피의 대규모 회계부정이 밝혀지면서 해법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루이싱커피는 의도적으로 3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주가가 폭락한 이후 뉴욕증시에서 퇴출됐다. 미국 투자자들은 회계부정을 사전에 알았더라면 루이싱커피에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당국의 비협조로 회계장부를 꼼꼼히 들여다볼 수 없었다.

미중 탈동조화 심화될 듯

이같은 상황 전개는 미중 양국관계를 새롭고 전례없는 방식으로 몰고갈 전망이다. 외국 금융당국들이 중국정부가 민감히 여기는 정보의 공개를 요구하면서 중국에선 증권화를 통해 자본조달을 준비하는 기업들에 대한 대대적인 감독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당국은 해외상장을 준비하거나 데이터의 국가간 이전을 추진하는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아시아타임스는 “중국정부가 이런 방침을 계속 이어간다면, 유망한 중국기업들의 글로벌 야심은 상당히 꺾일 전망이다. 현대 디지털경제를 이끄는 모든 기업들은 데이터를 통해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중국기업들의 손실은 커질 전망이다. 올해 상반기 중국 34개 기업들은 뉴욕증시 IPO를 통해 124억달러를 모았다. 중국정부는 유망한 기업의 IPO가 홍콩 금융시장에서 이뤄지길 선호한다.

피해를 보는 건 국제자본시장을 두드리는 기업들에게 한정되지 않는다.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는 기업이라면 중국정부의 조치에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특히 미중 양국간 긴장은 글로벌 회계감사 기업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들이 중국기업들의 회계자료에 접근하지 못한다면, 글로벌 투자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게 된다. 미국 회계감독위원회(PCAOB) 대니얼 괴즈너 위원은 “글로벌 회계법인들은 미중 양국의 충돌지점 한가운데에 있다”고 말했다.

미중 양국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들은 미국 또는 중국법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양자택일 상황에 몰릴 수 있다. 미국제재를 따르면서 중국시장에서 사업하는 건 어려워질 것이다. 반대로 미국제재를 무시하게 되면 그 자신이 미국당국의 제재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주중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인 그레그 길리건은 “중국이 마련한 새로운 법은 잠재적으로 미국법과 양립할 수 없다. 외국기업들은 양국법을 동시에 준수할 수 없게 되는 문제에 직면한다”고 말했다. 주중 EU상공회의소 회장 외르크 뷔트케도 “외국기업들은 미중관계악화로 정치적 희생양 또는 담보물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