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세상은 어디로 향할까
2021-07-21 12:44:37 게재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저명한 경제학자·사상가에 '새로운 시대' 물어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저명한 학자와 사상가들에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시대를 진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케임브리지대 퀸스칼리지 학장 모하메드 엘 에리언은 '족쇄를 푼 정부'를, 메사추세츠대 애머스트캠퍼스 교수인 자야티 고시는 '치명적인 불균형의 시대'를, FP 선임 어드바이저 앙투안 반 아그마엘은 옛 법칙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지만 새로운 규정이 아직 확실하지 않은 '퍼지노믹스'를 새로운 시대의 표제어로 꼽았다. 다음은 각 인물의 시대전망.
퍼지노믹스(Fuzzynomics)-앙투안 반 아그마엘, 포린폴리시 선임 어드바이저
민주주의와 시장기반 해법에 대한 오랜 믿음이 좌우파 모두에게 공격받고 있다. 우리는 전환기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동시에 글로벌 주도권은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중국은 산업화 이전 시기 지배적인 경제강국으로서의 지위를 되찾으려 한다. 대만을 둘러싼 위기에서 고전적인 군사독트린이나 기술에 결함이 있다는 게 증명될 수 있다. 중국의 정치적 벼량끝전술을 맞아 미국은 초강대국 지위를 도전받을 수 있다.
세가지 도전과제가 시장기반 해법을 위협하고 있다. 사회변화에 대한 우파의 저항, 경제·인종적 불평등에 대한 좌파의 반발, 그리고 기후변화다.
국제적으로 패권의 중력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이 흘러간 옛 규칙들을 국제사회에 강제할 여지가 크게 줄었다. 미국의 군사·경제·소프트파워는 지배력에 필요한 수준 이하로 위축되고 있다. 미국의 기술적 우월성이 아직 사라진 건 아니지만 중국은 인공지능과 전기차 등 주요 영역에서 미국을 강하게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도 서구 주도 백신의 대안을 공급하며 존재감을 뽐낸다. 기축통화인 달러는 유통기한이 지나가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이 여전히 미국의 예외주의를 믿지만 전세계 나머지 국가는 그렇지 않다.
퍼지노믹스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 새롭거나 낡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요리법이다.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 돈을 쓴다는 의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통화정책이 경제에 활력을 준 것처럼, 케인스주의 재정지출이 대공황에서 세계를 구한 것처럼, 또 다시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돈을 지출하는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은 계속 돈을 찍어 지출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는 듯 보인다.
실험경제(The Experimental Economy)-스테파니 켈튼, 스토니브룩대 교수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현재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를 맞은 전세계 각국은 각종 정책실험을 하고 있다. 금융위기를 맞아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와 제로금리 또는 마이너스금리를 실험했다. 대출과 소비를 유도해 경제성장과 고용회복을 노렸으나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뒀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미국 의회는 팬데믹 실업지원을 실험하고 있다. 실업보상 자격이 안되는 이들에게 소득지원을 했다. 또 급여보호프로그램과 현금지급을 실험했다. 일부 의원들은 코로나 위기가 끝날 때까지 대규모 반복적인 현금지급을 원했다. 또 다른 일부 의원들은 실업급여가 소진될 때마다 의회의 승인없이 자동적으로 연장되는 트리거조항 실험을 원했다. 연준은 '평균물가상승목표제'라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이 인플레이션 자극을 우려하고 있다.
향후 한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인플레이션이 촉발된다면 연준이 금리인상 해법만 고수하진 않을 것이다. 새로운 방식의 실험을 통해 물가상승 압력을 낮추려 할 것이다. 그리고 경제회복이 일자리 늘리기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일부 국가에선 정부가 공공부문 일자리를 보장하는 정책 실험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한다.
족쇄를 푼 정부(Government Unbound)-모하메드 엘 에리언, 케임브리지대 퀸스칼리지 학장
탈규제와 자유화의 40년 이후 많은 선진국 정부들은 경로를 뒤집어 시민의 일상생활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촉매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정부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본다. 수세대에 걸친 재앙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주요국 정부들은 시민들에게 전례없이 현금을 직접 지원했고 기업의 파산을 막았다.
정부 개입의 규모와 범위가 전례없는 수준이지만 방향은 새롭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있기 전에도 공공부문은 이미 확장적으로 개입하고 있었다. 수년 동안 모두를 아우르는 포용적 성장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기업 집중도가 심화됐다. 특히 빅테크 기업들이 그렇다. 기술기업과 관련된 각종 사건사고도 많았다. 국가안보 위해나 데이터 유출, 가짜뉴스, 플랫폼 감시, 행동조작 등이었다. 각국 정부는 이들 기업을 규제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또 경제 일반에 대한 규제, 세원 확대와 현대화에 진지한 입장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부개입 확대로 이동하는 시대적 시계추는 향후 오랜 기간 유지될 전망이다.
포스트 금융자본주의(Post-Financial Capitalism)-담비사 모요, 경제학자
새롭게 등장하는 경제적 문화가 글로벌 기업의 교역과 투자, 행동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전환되면서 기업들은 이익을 넘어 새로운 잣대로 성공 여부를 평가받게 됐다.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ESG) 어젠다는 복잡하다. 기업은 이제 기후변화는 물론 노동자로의 권한 이양, 성적·인종적 다양성, 공평한 보수, 인권, 상품과 서비스 원산지 등을 신경써야 한다.
새로운 경제적 문화는 기업 리더들이 헤쳐나가야 할 상쇄효과를 수반한다. 예를 들어 화석연료 기업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투자를 철회하는 건 연료부족 가격폭등의 위험성을 무시하는 격이다. 대대로 가난을 물려받는 이들에게 고통이 전가될 수 있다. 현재 이용가능하고 믿을 만한 에너지원에 접근하지 못하는 전세계 인구가 15억명에 달한다.
ESG 등 사회적 목표로의 전환은 서구 노동자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기술부문 노동자들이 그렇다. 하지만 중국 노동자들은 여전히 '9-9-6' 조건에서 일한다. 오전 9시에서 밤 9시까지 주 6일 근무한다. 중국의 노동관행이 서구 노동자와 소비자들에게 거부감을 줄 위험이 있다. 기업 리더들은 이를 고민해야 한다.
공격적인 ESG 어젠다는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새로운 ESG 시대를 맞아 기업 리더들은 글로벌 지형 변화를 투명하고 지속적이며 유연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동시에 지속가능하면서 문화적 차이에도 유념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새로운 사회계약(A New Social Contract)-마리아나 마추카토,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교수
기업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이야기한다. 정부는 기후변화 같은 도전과제에 대처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시대는 말보다 행동을 요구한다. 그리고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의 상호과정 중심에 공공선을 놓아야 한다. 그동안 정부와 기업의 관계는 공생이 아닌, 기생적이었다. 정부는 보건의료와 관련해 수십억달러를 제약업체의 혁신에 쏟아붓는다. 하지만 납세자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개발된 신약을 이용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정부가 인터넷을 개발했지만 기술기업들이 인터넷을 통해 시민의 프라이버시를 남용한다. 정부는 그에 소극적으로 대처한다.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어 기업과 국가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가치를 중심에 놓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사회계약을 통해 지적재산권을 어떻게 다룰지, 지대추구 대신 집단지성을 어떻게 북돋울지, 인터넷 알고리즘을 어떻게 설계할지 정해야 한다. 노동자 권리에 대한 조건들, 정부의 보조금과 구제금융이 환경오염물질 배출에 따라 달라질 조건들, 특히 경제적 이익들이 각기 다른 행위자들 사이에 배분되는 조건들이 사회계약으로 정해져야 한다.
장기 부양책 시대(Era of Secular Stimulus)-루치르 샤르마, 모간스탠리 수석 전략가
코로나19 팬데믹의 경제적 고통을 줄이기 위해 수조달러가 지출됐다. 경제전문가들은 '우리 모두 케인스주의자가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의 공공지출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약 1세기 전 대공황을 맞아 조언한 것을 크게 왜곡한 것이다.
케인스 이전 널리 퍼진 견해는 '정부는 경제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공황 초기 미국 재무장관 앤드류 멜론은 허버트 후버 대통령에게 "공황은 경제의 약한 고리들을 도태시킨다. 위기로부터 더 강한 자를 등장시킨다"고 조언했다. 뒤따른 경제적 고통의 깊이는 매우 깊었다. 오히려 다윈주의적 경제 접근법이 도태되는 결과를 낳았다. 동시에 케인스가 등장할 길을 열었다. 그는 정부가 돈을 빌려 경제위기의 고통을 완화하고 경제회복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접근법은 1960년대까지 미국 정부가 경제침체에 대응하는 매뉴얼이 됐다.
1970년대 초 브레턴우즈 통화체제가 붕괴했다. 금과 통화의 연계가 끊어지자 각국 정부는 돈을 빌리고 쓰기가 수월해졌다. 1970년 이전 선진국 정부들이 주요 전쟁 외에 대규모 적자를 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70년대 들어서 각국 정부는 사실상 매년 상당한 적자를 냈다. 시기가 어렵거나 아니거나 상관없었다.
개입주의적 정부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정부지출 수도꼭지를 활짝 열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촉발될 것으로 예상됐다. 1970년대 말 고인플레이션이 닥쳤다. 정치인들은 중앙은행인 연준에 문제를 맡겼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두자릿수 올렸다. 심각한 경기침체를 몰고 왔지만 인플레이션은 잡았다. 주요 선진국 인플레이션은 약 2%로 떨어졌고 그 수준을 유지했다. 게다가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기술발전이 이뤄지면서 인플레이션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중앙은행과 정부는 소비자물가 인플레이션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경기침체를 대응할 수 있다고, 심지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연준은 1987년 말 증시가 붕괴하자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1998년 민간 헤지펀드가 파산하자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이후 경제위기 때마다 기업 구제금융이 이어졌다.
그 다음 거대한 변화는 2008년에 일어났다. 국채뿐 아니라 회사채와 기타 금융자산을 사들였다. 일본이 선도한 부양기법이었다. 경제에 돈을 주입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2008~2019년 미국과 유럽연합, 영국, 일본 등 이른바 G4의 중앙은행들은 8조달러 이상의 금융자산을 매입했다. 그들의 총자산은 13조달러 가까이로 늘었다. 이전에 매입했던 총량보다 더 많은 자산을 그 기간 동안 사들였다. 게다가 자산매입 대부분은 2009년 경기회복 이후 수년이 지난 뒤 이뤄졌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푼 돈은 기대만큼 경제를 부양하지 못했다. 미국의 전 재무장관 로렌스 서머스는 '구조적 장기침체'라는 용어를 되살렸다. 이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실망스런 경제성장을 묘사한 용어였다. 하지만 기준금리가 낮았고 돈 빌리기가 쉬워지면서, 적자는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점차 인기를 얻어갔다.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 가릴 것 없이 '인플레이션이 통제되고 경제성장이 낮게 유지되는 한, 정부는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계속 빌릴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 시기 공화당은 세금감면 형식으로 대규모 부양책을 꺼냈다. 2009년 경기침체가 끝난 뒤 8년이나 지난 때였다. 미국의 적자 수준은 역대 경제확장 막바지 중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작은정부' 시대를 끝내고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각국 정부는 계속 커지고 있었다. 팬데믹은 그 흐름을 가속화할 뿐이었다. G4국가 정부는 평균적으로 2001년엔 GDP의 2.6%, 2008년 GDP의 5.3%, 지난해엔 GDP의 12.7%에 달하는 부양책을 썼다. 2차세계대전 이후 최고치였다.
G4국가의 중앙은행들 역시 기록경신 대열에 합류했다. 중앙은행의 통화부양책 규모는 2001년 GDP의 약 5%였다. 2008년 7%, 2020년엔 19%에 달했다. 지난해에만 자산 8조달러를 더했다. 12개월 기록이 이전 11년 총합보다 많았다. 올해도 G4 중앙은행들은 매달 모기지담보증권을 포함한 자산 수십억달러어치를 사들이고 있다. 주택시장의 지나친 활황세가 부작용을 낳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우리가 지금 보는 건 경기침체를 완화하기 위한 케인스주의적 부양책이 아니다. 장기적 부양책의 시대다.
치명적인 불균형의 시대(Age of Deadly Disparities)-자야티 고시, 메사추세츠대 애머스트캠퍼스 교수
글로벌 불평등은 코로나19 팬데믹 전에도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팬데믹 동안 더 커진 격차는 사실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경제부국들의 기회주의적인 백신 확보, 지적재산권 통제를 통한 지식식민주의는 코로나19 감염병이 지속적으로 지구촌의 삶과 경제를 파괴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경제부국의 국민은 거대 정부를 통해 공공서비스 확대, 소득 지원 등의 혜택을 본다. 반면 가난한 국가 국민은 정부지출 삭감, 재정긴축에 직면했다. 그 결과 실직과 삶의질 하락, 굶주림, 필수 공공서비스 접근 봉쇄 등으로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잃어버린 세대'가 급증하고 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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