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곡물메이저, 수급 변동성에 '어깨춤'

2021-07-27 13:08:35 게재

경제회복 등으로 수요 늘고 가뭄 등으로 공급 악재 … 이코노미스트지 "빅4 이익 커져"

미국 경제가 다시 활발해지면서 중국산 상품의 수요가 높아졌다. 때문에 이를 실어나르는 컨테이너가 크게 부족해졌고, 미국의 커피 수입업체들은 브라질산 원두를 수송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미국인들은 1인당 하루 평균 2잔의 커피를 마신다.

미국으로 향하는 원두 대부분이 도착하는 뉴올리언스 항구의 재닌 만수르는 "수입업체들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입업체들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컨테이너보다 훨씬 큰 컨테이너를 빌려 군데군데 빈 상태로 원두를 수입한다. 만수르는 "추가비용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라며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커피가격뿐 아니다. 운수송 적체와 곡물생산지역의 미미한 작황 등이 수요 급증과 맞물리면서 미국 식음료 전반에 걸쳐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UN식량농업기구(FA O)는 글로벌 식량 수입액이 올해 1조9000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한다. 2019년엔 1조6000억달러였다.

지난 5월 주요 곡물원자재에 대한 FAO 지수는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2개월 연속 상승이기도 했다. 또 다른 벤치마크 지수인 S&P 곡물지수는 2020년 7월 이후 40% 올랐다. 이달 22일 아이스크림에서 마요네즈까지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다국적기업 유니레버는 "원자재 가격이 올라 생산비가 크게 늘었다"며 "10년래 가장 빠른 속도"라고 말했다. 주요국 중앙은행에선 식품 가격급등이 광범위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미 많은 국가들에서 예사롭지 않은 물가상승이 진행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이는 소비자에겐 나쁜 소식이지만, 곡물메이저들(거대기업)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라며 "곡물메이저들은 국가와 다국적기업을 대리해 식품류를 공급하고 저장하고 수송한다. 이들은 저장탑(사일로)과 철도, 선박 네트워크는 물론 공급루트를 변경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데이터를 소유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의 변동성은 곡물메이저의 이익을 담보한다"고 전했다.

주요 곡물메이저엔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와 번지(Bunge), 카길(Car gill), 루이 드레퓌스(Louis Dreyfus) 등 빅4기업이 있다. 각 기업의 앞 철자를 따 'ABCD'로 불리기도 한다. 도합 24만명의 직원을 보유한 빅4는 최근 인재를 충원하는 동시에 풍작과 흉작의 사이클에 덜 민감한 사업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움직임은 향후 글로벌 식량시장의 상황을 예고한다.

ABCD 기업들은 1세기 이상 식량 구매자와 판매자를 주선해왔다. 빅4 중 가장 나이 어린 ADM은 1902년 창업했다. 가장 나이 많은 번지는 그보다 84년(1818년 창업) 빠르다. 2010년대 초까지 수십년 동안 인구 증가와 번영의 확산, 글로벌화 가속 등을 배경으로 곡물메이저들은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했다.

그리고 나서 시들기 시작했다. 농작물 과잉생산이 지속되면서 가격이 안정적으로 낮아졌다. 곡물메이저들의 이익이 줄었다. 스마트폰과 기타 기술의 발전으로 실시간 데이터 파악이 가능해졌다. 농부들의 손끝에서 각 지역의 조건, 글로벌 가격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중개기업의 시장지배력이 줄어들었다.

곡물 생산자들은 가격변동을 극복하기 위해 대형 저장고를 구매했다. 이는 곡물메이저들의 차익거래 기회를 줄였다. 빅4의 아성에 도전하는 기업들도 등장했다. 세계 최대 원자재 거래기업 글렌코어의 농업자회사인 '비테라'나 중국 국영식품대기업의 해외거래 자회사인 '중량그룹'(COFCO 인터내셔널) 등이다. 2013년 ABCD의 매출 합계는 3510억달러였지만 2016년엔 2500억달러로 감소했다.

감소한 매출은 계속 유지됐다. 지난해의 경우 반전이 있었다. 매출은 전년과 비슷했지만 순이익 합계는 45억달러로 전년 대비 2배 늘었다. 애널리스트들은 상장기업인 ADM과 번지가 올해 더 좋은 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한다. 두 기업은 조만간 2분기 실적을 발표한다.

곡물메이저들의 이익은 농작물 수급에 갑작스런 변동이 생길 때 커진다. 수요 측면부터 보면 코로나19 팬데믹은 식습관을 바꿨다.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봉쇄와 격리조치가 잇따랐다. 사람들의 수입은 줄어들었다. 외식 대신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육류와 어류, 유제품은 채소와 값싼 포장식품에 자리를 내줬다. 그러다 올해 들어 식당과 매점, 카페 등이 다시 문을 열고, 경제회복으로 임금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농부인 알랭 가우보는 "1년 전 우유 생산량을 줄이려고 고생했다"며 "이제는 젖소를 최대한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사육돼지수를 크게 늘리고 있다. 2018년 돼지독감으로 마릿수가 절반으로 급감한 바 있다.

브라질 영농기업 인수전문회사인 '아쿠아캐피털'의 세바스찬 포픽은 "가축은 농작물에 대한 승수효과를 낳는다. 식물을 직접 섭취하는 것보다 동물사료로 쓸 때 더 많은 곡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중량그룹의 알폰소 로메로는 중국이 올해 3000만톤의 옥수수를 사들일 것으로 예상한다. 늘어난 돼지를 먹이기 위해서다. 역대 최고 기록이었던 지난해 1100만톤에서 3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수요의 또 다른 상승 요인은 고유가다. 에너지작물을 매력적인 대안으로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연료로 쓰이는 농작물이 많아질수록 식량체계에 남은 농작물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에너지 생산에 쓰이는 미국 콩기름 규모는 2020~2022년 사이 39% 증가할 전망이다. 지난해 브라질의 옥수수 추출 에탄올 생산량은 전년 대비 절반 이상 늘었다. 올해는 지난해 대비 1/4 늘어날 전망이다.

농작물 수요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공급 측면에 다양한 압박 요인이 중첩되고 있다. 북미와 남미의 가뭄으로 작황량이 줄었다. 브라질의 가을밀 수확은 1/5 감소했다. 이는 한해 브라질의 밀수출 물량과 비슷하다.

컨테이너 부족상황은 커피와 같은 특수작물에 악영향을, 화물여객기의 운항 중단은 과일과 야채 등 신선과일에 악영향을 미쳤다. 벌크선 운임료가 크게 올라 공급체계를 더욱 압박했다. 올해 들어서만 150% 상승했다. 일부 요인은 국제유가 상승이다. 동시에 석유로 만드는 비료와 기타 화학제품, 농기계·장비 가격도 올랐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지면서, 글로벌 곡물 도매가를 밀어올리고 있다. 대두와 옥수수는 1년 전에 비해 각각 56%, 68% 비싸졌다. 이는 소비자가격에 전가된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집에서 만들어먹는 치즈버거 1개당 가격은 2019년 대비 11센트 올랐다. 상황의 불확실성과 재고 감소 등이 변동성을 촉발하고 있다. 워싱턴D.C 소재 싱크탱크인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는 지난 4개월 동안 옥수수를 '과도한 가격 변동 품목'에 올렸다. 밀과 커피 가격 역시 변동성이 크다.

곡물메이저들은 이같은 변동성을 즐기고 있다. 농산물 가격이 높아지면 ABCD 기업의 마진도 상승한다. 농부들이 높은 운송료 등을 고려해 한번에 더 많은 양을 팔려고 할수록 거대기업들은 고정비를 보다 신속히 회수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변동성이 커지면 시간차와 공간차를 활용해 차익거래를 할 수 있다.

ADM과 번지의 주가는 2019년 이후 1/3 올랐다. 2018년 고통스런 구조조정을 진행한 번지는 '조만간 경쟁기업에 인수될 것'이라는 루머에 시달렸지만, 이제 그런 루머는 온데간데 없다. 빅4 중 상황이 가장 안 좋은 드레퓌스는 시장 상황이 개선되면서 안정화되고 있다. 또 아부다비 국부펀드가 가족기업인 드레퓌스의 지분 45%를 사들이면서 숨통이 트였다.

카길은 지난해 이익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0년 3분기 이후 기록적인 이익을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기적으로 곡물 메이저들을 둘러싼 환경은 양호하다. 수요는 계속 강하게 지속될 전망이다. FAO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농작물 거래량은 올해 매분기마다 두자릿수 퍼센트로 성장할 전망이다.

물론 지난 두달간 가격 상승이 주춤하긴 했다. 거대 농업지역의 기상상황이 기대보다 양호한 데다 중국의 돼지마릿수 늘리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농작물 가격은 이미 코로나19 팬데믹보다 더 높아진 상황이다.

네덜란드 라보뱅크의 카를로스 메라는 "가격상승이 최소 내년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브라질 아쿠아캐피털의 포픽은 "우리 회사는 45개국에 식음료 상품을 수출하는데, 일반적으로 한달 재고를 쌓아두던 것에서 두달 재고를 쌓아두는 것으로 바꿀 예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는 공급망 차질을 해소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리고 기상학자들은 올해 말 또 다른 라니냐가 닥칠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가뭄을 일으켰던 기상이벤트다.

한편 '수급 사이클'이라는 장기 구조적 도전과제에 대처하기 위해 ABCD 빅4기업들은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고 있다. ADM은 최근 주기를 덜 타고 수익성은 보다 높은 사업에 자본지출을 집중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와 탄산음료, 비타민보충제 등에 들어가는 향료와 색소 사업이다. 리서치기업 모닝스타의 세스 골드슈타인은 "올해 1분기 ADM의 영양소 공급 부문은 16억달러 매출에 1억5400만달러 영업이익을 냈다. 이는 총매출의 8%로, 성장세가 빨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번지의 경우 수십개의 공장과 엘리베이터, 기타 자산을 매각해 식물성단백질과 식용기름 공장에 투자했다. 카길은 대부분의 이익을 동물성 사료와 동물성 단백질 생산에서 얻고 있다. 카길의 식량생산시설엔 노르웨이 양식장, 필리핀 가금류 농장, 미국과 이스라엘의 단백질 배양 공장 등이 있다. 카길은 이미 미국 최대 육류 가공업체 중 하나다. 동시에 식품과 생명과학에 집중하는 벤처자본펀드의 투자자이기도 하다. 드레퓌스는 동남아 최대 가금류, 식용 알류, 가축사료 기업인 '렁헙인터내셔널'에 투자했다.

곡물 메이저들이 식품의 생산기업으로서, 또 농작물 소비기업로서 성장하게 되면 사업안정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곡물중개자로서의 역할은 지속될 전망이다. 번지의 전직 경영진이었고 현재는 투자회사 스태포드캐피털 CEO인 조스 뵈렌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인구가 많아지고 경제가 부유해지면, 이들 국가와 잉여농작물 생산 국가를 중개하라는 요청이 곡물메이저들에게 쇄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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