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된 중국위협론, 미국 외교 왜곡시켜"

2021-08-02 11:28:54 게재

듀크대 젠틀슨 교수 "냉전시대 소련 위협 부풀리다 벌어진 외교참사 교훈 삼아야"

'중국위협론'은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여야 가릴 것 없이 큰 환대를 받는 이슈다. 중국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2000억달러 이상 규모의 국가경쟁력 법안이 초당파적 지지를 받아 통과되는 드문 상황이 연출됐다. 중국위협론은 미국 외교가에서 광범위한 공감대를 받는다. 민주주의 대 독재라는 구도가 부각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달 초 "중국을 위협하고 억압하거나 종속시키려는 국가들은 강철같은 만리장성에 부딪혀 머리가 박살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제기한 위협에 맞서 국가적 자원을 동원하는 건 당연하다는 인식이 미국 내에선 대세다.
지난달 26일 웬디 셔먼(왼쪽)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중국 톈진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 겸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면담하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하지만 중국위협론은 여러 측면에서 과장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듀크대 공공정책·정치학 교수인 브루스 W. 젠틀슨은 7월 31일 포린폴리시 기고 '과장된 중국위협론을 경계하라'(Be Wary of China Threat Inflation)에서 "냉전 시기 소련위협론이나 9.11 사태 이후 테러위협론을 부풀리며 미국의 외교정책 전략은 역효과를 낳았고 미국내 정치를 위험한 방식으로 왜곡시켰다"고 지적했다.

물론 소련위협론은 일부 긍정적 효과를 냈다. 역사상 평화시기 동맹으로는 가장 성공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낳았다. 재정 보수주의자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미국의 각주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시스템을 구축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달 탐사 프로젝트를 과감히 추진했다.

하지만 소련 위협을 글로벌 수준으로 부풀린 결과 미국은 제3세계에서 잇따른 외교참사를 냈다. 베트남전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의 최장기 전쟁이라는 아프간전쟁에서의 대실패도 베트남전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다. 또 이란과 과테말라 정부를 전복했는데, 그 후과는 지금도 느껴진다. 인도네시아와 칠레 아르헨티나에서의 시민 대량학살에 간접적으로 개입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은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봉사하지도, 미국이 천명한 가치를 드높이지도 못했다.

미국내에선 매카시즘이 소용돌이쳤다. 정부와 기업, 군부, 예술계, 대학 등지의 각종 인사들이 '빨갱이'라는 손가락질만으로 스러졌고, 시민의 자유권은 짓밟혔다. 매카시즘을 주도한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는 결국 1954년 상원의 사문결의(査問決議)에 의해 실각했다.

하지만 2년 뒤인 1956년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는 소련의 위협을 부풀려 '코인텔프로'(COINTELPRO)라는 방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진공청소기처럼 마틴 루터 킹과 페미니스트, 환경보호론자 등 미국 시민의 합법적 활동에 대한 정보를 전면적이고 무차별적으로 수집했다. 심지어 각 학교 학부모회에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하고 있다며 학교를 이념의 전쟁터로 삼기도 했다.

1967년엔 미 중앙정보국(CIA)이 '카오스 작전'(Operation CHAOS)을 시작했다. 30만명 이상의 시민과 조직에 대한 내사파일을 축적했다. 뉴욕타임스는 1975년 6월 11일 보도에서 "피내사자 거의 전부는 스파이와 전혀 관련이 없는 시민과 조직이었다"고 폭로했다.

9.11 사태 이후로는 테러 위협이 크게 과장됐다. 이라크전이 대표적 사례였다. 이라크 침공 결정은 수준 이하의 조잡한 증거들을 기반으로 내려졌다. '테러리즘에 관대하다'(soft-on-terrorism)는 비난에 합리적인 정치토론은 불가능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전세계 150개국 이상에 미군 특수작전부대가 배치됐다. 아프간전쟁은 애초 테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적절한 시도로 시작됐지만, 20년 지속되는 동안 철군시 최악의 시나리오, 주둔시 최상의 시나리오만 부각됐다.

젠틀슨 교수에 따르면 테러에 관대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선거에서 활용된 대표적 사례는 2002년 조지아주 민주당 상원의원 맥스 클리랜드의 재선 실패다. 클리랜드는 베트남전 영웅이자 상이군인이었지만 부시행정부의 막무가내식 반테러 정책에 거듭 반기를 들었다. 2002년 선거에서 상대당 후보는 오사마 빈 라덴의 사진에 클리랜드의 사진을 덧씌우며 그를 테러에 무감각한 인물로 몰아갔다. 결국 그는 재선에 실패했다.

9.11 사태 이후 미국의 국방예산안은 의회를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이후 두개의 전쟁과 글로벌 반테러 캠페인 비용은 2020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7조달러에 육박했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 안팎에서 무기한 구류와 법정에서의 비밀 재판, 영장없는 감시, 불법 고문 등이 일어났다. 국가안보와 시민자유 사이의 형평추는 전자로 기울었다. 이슬람교를 믿는 미국인에 대한 증오범죄와 편견은 늘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슬람이 미국을 미워한다'고 주장하며 반 이슬람 분위기를 주도했다.

이제 중국은 소련과 테러 이슈를 대체했다. 홍콩에서 민주주의 탄압, 위구르 집단학살, 남중국해 군사지대화, 히말라야에서 인도와 군사적 충돌, 호주와 경제적 충돌, 전랑외교, 마이크로소프트(MS) 해킹 등 각종 혐의의 중심엔 중국이 있다.

중국위협론이 급부상한 건 도널드 트럼프 재임 시기다. 트럼프행정부는 2017년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중국이 미국과 '강대국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목은 트럼프 외교정책 중 가장 많은 초당파적 찬사를 받았다.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는 중국이 '중국몽'을 넘어 '세계몽'을 확대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와 조 바이든 후보는 누가 중국에 대해 누가 더 강경한지 경쟁을 벌였다.

젠틀슨 교수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보다 중국위협론에 더 집착한다. 중국은 바이든행정부 국방부와 정보기관 정책 재검토의 기반이자 주요 위협 주체다. 중국은 '국가안보전략 중간지침'의 핵심 이슈이기도 하다. 지난 6월 선진7개국(G7)과 유럽연합(EU), 나토 정상회의에서의 핵심 이슈는 중국 봉쇄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에서 행한 국정연설에서 "현재의 핵심 이슈는 21세기를 지배하는 게 중국이냐 미국이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젠틀슨 교수는 "중국은 최근 들어 보다 공세적이고 적극적이다. 미국의 대중국 매파들에게 수많은 소재를 제공했다"면서도 "중국위협론을 제기하는 미국은 또 다른 덫에 빠질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 외교정책 전략과 관련 3가지 우려를 나열했다.

첫째 중국위협론 부풀리기다. 중국이 강대국으로 도약하려고 발버둥치는 건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이 유일 강대국을 꿈꾼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2019년 7월 3일 미국의 중국 전문가 100여명은 트럼프 대통령과 의회에 보내는 공개편지를 워싱턴포스트에 공개하면서 "중국이 미국에 심각한 도전과제를 제기하는 건 인정할 수 있지만 중국을 모든 영역에서 봉쇄해야 할 국가안보의 존재론적 위협으로 삼는 건 또 다른 차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전 국무장관인 헨리 키신저는 2011년 고전적인 안보딜레마의 악순환을 지적한 바 있다. 중국 입장에선 방어적 행동이 서구 세계에선 공격적 행동으로 취급되고, 반대로 서구의 억지책이 중국에겐 봉쇄로 해석된다는 것. 젠틀슨 교수는 "이념경쟁을 떠나 중국정부는 자국의 언어와 문화 등 소프트파워를 세계에 전파할 목적으로 세계 각국의 대학을 중심으로 공자학원을 설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두고 각국 정부를 전복하고 혁명을 조장하려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둘째 미국이 중국과 벌이는 신냉전에 대한 맹방, 우방국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최근 중국의 공세적 외교에 나름의 우려를 하면서도 미중 신냉전의 회오리에 얽히는 것을 무엇보다 경계하고 있다.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가들이 그렇다.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통한 이해관계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중갈등과 관련해 일본이 어느 입장에 서야 하는지에 대한 최근 여론조사에서 일본인 58%는 '한쪽 편을 들기보다 미중 양국 모두와 협력해야 한다'고 답했다. 20%는 '미국과의 관계를 우선해야 한다', 1%는 '중국과의 관계를 우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전직 호주 총리이자 중국 전문가인 케빈 러드는 "미중 양국은 경쟁의 강도를 관리해야 한다"며 "재앙적 결과를 피하기 위해 양국 모두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아시아 전문가인 탄비 마단은 "인도와 중국이 군사적으로 충돌하고 있지만, 인도가 미국에게 더 빨리 다가가고 있다는 과대평가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국 정의용 외교장관은 최근 중국 외교파트너와 만나 '코로나19 상황이 잦아지는 대로 시진핑 주석이 최대한 신속하게 한국을 국빈방문해달라'고 초청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은 2019년 '우리에게 한쪽 편을 들라고 강요하지 말라'는 제목의 공동연구서를 냈다.

미국의 맹방과 우방 역시 비슷한 위험회피 성향을 보인다. 지난 6월 공동성명에서 G7이나 나토, EU는 바이든행정부가 원하는 만큼 반중국 입장으로 선회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등 모두 미국의 군사적 원조를 받는 나라들이지만 마찬가지로 중국과도 안보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 제6함대가 인근 해양기지를 드나드는 데 대한 안보위협 우려를 제기했지만, 이스라엘은 자국의 하이파항구를 상하이국제항만그룹과 함께 운영하기 위한 협상을 타결했다.

셋째 중국 위협론을 미국 외교전략의 핵심으로 삼게 되면 더 큰 위협을 제기할 두 가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처와 기후변화다. 강대국 경쟁은 전통적으로 국가 대 국가 수준에서 일어나지만, 코로나19와 기후변화는 초국가적인 세력으로 미국 안보에 보다 큰 위협을 제기한다.

20세기 모든 전쟁에서 사망한 미국인보다 코로나19로 사망한 미국인이 더 많다. 경제적 피해는 1930년대 대공황에 비견될 정도다. 미국 역사상 코로나19만큼 미국인의 일상생활을 파괴한 사건은 없다. 중국 위협론을 아무리 수긍한다고 해도 코로나19 팬데믹보다 우선순위가 높을 수는 없다. 델타변이 바이러스는 또 다른 팬데믹을 예고하고 있다. 팬데믹은 국제적 문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개혁과 강화에 대한 국가간 협력이 우한연구소 바이러스 유출 조사보다 전략적으로 훨씬 중요하다는 건 자명하다.

기후변화도 마찬가지다. 지난달에만 극한기후 사태가 즐비했다. 미국 오리건주 화재와 미국 서부와 캐나다 서부에서의 폭염, 유럽과 중국의 홍수, 아프리카의 가뭄 등이다. 최근 공개된 연구에 따르면 전세계 기후변화로 인한 연간 사망자는 약 500만명이다.

바이든행정부는 전임 트럼프행정부보다 기후변화 이슈의 우선순위를 상향했다. 하지만 여전히 외교정책의 주변부 문제로 취급된다. 6월 서구동맹들과의 정상회담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각 정상회담에서 기후변화는 중심 이슈가 아니었다. 젠틀슨 교수는 "이 자리에서 바이든행정부는 오는 11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정상회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글로벌 리더십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 민주주의국가의 우수성을 입증할 수 있었지만 중국 봉쇄에 집착하면서 그 기회를 걷어찼다"고 지적했다.

미 의회가 혁신경쟁력 법안을 통과시킨 건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데이비드 생어 기자가 지적했덧, 미국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어떤 일에 뜻을 규합하기 위해 적국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생어 기자는 게다가 "중국 때리기 정책은 신이 로비스트들에게 준 행운의 선물"이라고 지적했다. 각종 로비스트들이 중국 위협론을 구실 삼아 지역개발사업 예산을 타 갈 궁리를 하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 때리기 북소리는 커지고 있다. 2024년 선거에서 공화당의 트럼프 계승자로 유망한 상원의원 조시 홀리는 "중국은 전세계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고 맹비난한다. 또 다른 공화당 상원의원 톰 코튼은 "중국을 강하게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냉전 시절 '현존위협 소련에 대처하는 위원회'는 이제 '현존위협 중국에 대처하는 위원회'로 이름을 바꿔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대중들은 정치권보다 차분한 인식을 갖고 있다. 미국민 78%는 중국을 안보위협세력으로 보지만, 중국의 힘을 봉쇄해야 한다고 보는 비율은 51%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보는 비율은 47%로 엇비슷하다.

중국계를 포함한 아시안계 미국인들은 폭력과 증오범죄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이들에 대한 폭력과 증오범죄가 100% 넘게 증가했다. 미국 전체적으로는 74% 상승했다. 아시아인에 대한 미국의 편견과 차별의 역사는 오래됐다. 1882년 중국인 배척법, 1885년 와이오밍주 록스프링스의 사건으로 거슬러오른다. 백인들이 집단으로 중국인 노동자들를 습격한 이 사건에서 28명이 사망하고 중국 기업과 집들이 약탈당하고 불탔다.

젠틀슨 교수는 "미국은 냉전의 경험을 교훈 삼아 과장된 중국 위협론을 피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역효과를 낳고 정치적으로 위험하다"며 "그래야 중국이 제기하는 지정학적 경쟁에 효과적으로 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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