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미국인, 납세 회피 목적 시민권 포기 급증

2021-08-06 12:05:20 게재

지난해 7천명 육박

지난해 200만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미국인 6707명이 시민권을 포기했다. 사상 최고치다. 전년 대비 237% 늘었다. 하지만 시민권 포기 숫자는 올해 2분기까진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미국 대사관과 영사관이 폐쇄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시민권 포기를 위해선 미 국무부 직원과의 인터뷰, 포기선서 등 복잡하고 장기적인 절차가 요구된다.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6일 "시민권을 포기하는 미국인들은 대개 부유한 사람들로, 세금부담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라며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제안한 새로운 세제과 부동산 정책이 시행된다면 이런 흐름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바이든 정부는 자본이득세율을 최대 43.4%로 높이려 하고 있다.

전세계 국가 중 미국과 에리트레아만 거주지가 아닌 시민권에 기반해 세금을 부과한다. 대부분의 국가는 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거주하지 않는 이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시민권 포기 숫자는 2010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의회가 미국 납세의무자의 역외탈세 방지를 위해 '해외금융계좌신고법'(FATCA)을 통과시킨 해다. 이 법에 따라 전세계 금융회사들은 미국 납세자가 보유한 5만달러 이상 계좌에 대한 정보를 미 국세청(IRS)에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국제세법 전문가로 미국인의 시민권 포기를 돕고 있는 변호사 데이비드 레스퍼렌스는 "시민권을 포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대략 2만~3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포기 절차 중 하나인 대면 인터뷰 약속을 잡을 수가 없다"며 "주 캐나다 미국 대사관에서 인터뷰 약속을 잡으려면 1년반이 걸린다. 주 스위스 미국 대사관에서만 300명 이상의 예약이 밀려 있다"고 말했다.

지난 30년 간 시민권 포기 과정을 도운 레스퍼렌스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객들이 시민권 포기라는 장기간의 복잡한 과정을 헤쳐나가기가 어려워졌다. 우선 해야 할 일은 다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라며 "앞으로는 우편만으로 가능한 영주권 보유자들의 포기 행렬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미국인이 시민권을 포기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미국 시민권이 제공하는 특권과 각종 보호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메리칸드림을 좇는 수많은 사람들이 시민권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미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소재 이민전문 변호사인 아슈칸 예크란기는 "시민권을 포기하려는 많은 이들은 납세의무를 피하기 위한 개인"이라고 말했다.

이런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기술 억만장자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의 전직 CEO인 에릭 슈미트다. 그는 키프로스 국적 획득 신청을 했다.

한편 우연히 미국인이 된 사람들, 즉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거의 거주하지 않은 사람들도 시민권을 포기한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 잠깐 살았다. 때문에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다.

미 국무부는 포기 희망자 숫자와 그 의미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한 국무부 관리는 "대사관이나 대사관 홈페이지에서는 먼저 신청한 순서대로 시민권 포기를 처리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 시민권 포기 희망자의 통계를 작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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