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vs 빅테크, 리나 칸(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의 반독점 전쟁
레이건 시대 '소비자우선 경쟁정책'에 도전장 … FT "공화당·기업계 강력 반발"
FTC 설립 100년이 훌쩍 지난 현재 미국의 많은 진보인사들은 FTC가 고유의 임무 달성에 실패했다고 본다. 이들은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의 극소수의 기술기업들이 또 다시 미국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반독점 운동의 선봉장은 지난 대선경선에 출마했던 민주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32세 학자인 리나 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FTC를 개혁하라며 지난 6월 칸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칸 위원장은 임명 이후 두달 동안 기관 개혁에 매진했다. FTC의 권한을 위축시킨 정책들을 폐지하고, 반독점 결정을 내리는 방식을 바꾸는 등 전면적인 개혁에 나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0일 "칸의 지지자들은 '20세기 초에 이어 독점해체 시즌2가 시작됐다'며 환영한다"고 전했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고문이자 또 다른 독점규제 지지자인 팀 우는 "윌슨 대통령은 FTC를 통해 공정한 경쟁을 위한 길을 닦았다. 현재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도 그와 동일하다"고 말했다.
칸 위원장과 우 고문 등은 경쟁정책에 대한 초당파적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있다. '기업은 소비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원하는 만큼 커지고 강력해질 수 있다. 정부는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려는 것이다.
칸 위원장의 첫번째 주요 조치는 클린턴행정부와 오바마행정부 등 민주당 전임 정부가 취한 정책을 폐기하는 것이었다.
첫번째 폐지 정책은 1995년 빌 클린턴 대통령 초임 때 제정된 것이다. FTC가 불법 합병이라고 판정해도, 해당 기업은 동일 시장에서 계속 합병거래를 시도할 수 있었다. 칸 위원장은 이에 대해 "FTC의 불법 판정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합병을 완료할 때까지 계속 이를 시도할 수 있었다. 이를 막길 바랐다"고 말했다.
두번째 규정은 2015년 오바마행정부 때 시행된 것으로, FTC가 불공정 경쟁으로 기업을 기소할 때 여러 제한조건을 두는 조치였다. 이는 FTC가 언제 반경쟁 조사를 시작해야 하는지를 엄격히 규정하면서 FTC의 손발을 묶는 효과를 냈다.
민주당 몫으로 추천된 한 FTC 위원은 "우리가 가장 먼저 뒤집었던 건 클린턴행정부와 오바마행정부 당시의 정책"이라며 "우리는 이전의 민주당 정부와 다르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FTC에 오래 근무한 임직원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FTC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FTC는 1970년대 잇따라 새로운 경쟁규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의회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게다가 8세 이하 아동에게 제공되는 모든 광고를 금지해야 한다고 제안한 뒤, FTC는 일시적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공화당 몫으로 추천된 FTC 위원 크리스틴 윌슨은 "우리의 모든 업무영역은 위협에 처했다"며 "지금은 1970년대보다 더 많은 비판자들이 있다. 그럼에도 그때처럼 과도한 권한을 행사한다면, FTC가 맞닥뜨릴 존폐의 위협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윌슨 위원은 "최근 수년 동안 FTC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칸 위원장이 전면적인 변화를 주도하면서 비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며 "나는 FTC가 향후 5년을 버틸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한다. 이 사실이 나를 매우 슬프게 한다"고 덧붙였다.
소비자 우선
FTC는 사실상 유일무이한 규제기관이다. 의회는 의도적으로 FTC의 소관을 광범위하게 규정했다. FTC는 산업 전반에 걸친 반독점 위반을 조사한다. 합병 심사에서 반경쟁행동 조사, 소비자 보호규정 제정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전직 FTC 위원 마우린 올하우센은 "보통 다른 기관들의 업무에 대해 의회는 세부적인 규정을 마련했다. 하지만 FTC에 관해선 사실상 한문장과 다를 바 없는 규정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FTC는 전력회사부터 시카고 우유회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업들을 규제했다. 20세기 중반 국제석유 카르텔에 대한 보고서를 냈는데 그 내용이 너무 폭발적이었다.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보고서 내용을 기밀에 붙이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상황이 바뀌었다. 보수적 법률학자로 이후 연방대법관이 되는 로버트 보크가 '반독점의 역설'(The Antitrust Paradox)이란 글을 쓰면서다. 보크는 이 글에서 "정부의 반독점 규제는 오히려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준다. 가장 효율적인 기업이 최고의 기업으로 등극하는 것을 막아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보크는 "설령 해당 기업의 종사자 또는 같은 범주의 중소기업이 희생된다고 해도 소비자를 경쟁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레이건행정부 이후 반독점 정책의 핵심기조가 됐다.
이후 40년이 흘렀다. 이제 미국의 진보학자들은 "소수의 기업들이 미국경제 전반을 지배할 수 있도록 FTC와 법무부가 방치했다"고 주장한다. 그중 두드러진 인물은 칸 위원장이다. 그는 20대 후반 예일대 로스쿨에 다니면서 '아마존을 해체해야 한다'는 논문을 써 이름을 알렸다.
FTC 위원장이 된 칸은 내부정비와 함께 주요 정책에 대한 개혁에 나섰다. 칸 위원장이 지난 두달 간 지시한 대부분 조치는 공화당과 기업계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칸 위원장은 FTC의 반독점 심사과정을 공개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추천 위원들은 'FTC가 객관적 검증에 열린 모습을 보인다'고 평가하지만 공화당 추천 2명의 위원들은 'FTC가 해당 기업과 타협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반발한다.
칸 위원장은 이어 직원들이 민간 주최 컨퍼런스의 패널로 나서는 걸 금지했다. FTC 직원으로서 해야 할 일이 훨씬 많고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FTC 직원들에게 증거서류와 증인에 대한 소환권을 폭넓게 부여하는 등 재량권을 넓히고 있다.
이와 함께 칸 위원장은 합병 심사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손보겠다고 공언했다. 현행 가이드라인은 FTC가 합병의 불법 여부를 결정할 때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과정을 통해 증거를 수집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더불어 백악관은 FTC에 더 큰 업무를 던졌다.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경제의 경쟁촉진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기업들이 직원의 경쟁사 이직을 제한하는 것을 막는 한편 제약사들이 일정 기간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조건으로 복제약 기업들에 금품을 제공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조치는 진보진영에 환대를 받았다. 비영리기구인 '미국경제자유프로젝트' 리서치국장이자 칸 위원장과 함께 '자유시장연구소'에서 호흡을 맞췄던 맷 스톨러는 "FTC는 그동안 게을렀다. 빈둥거려도 되는 정치인이 자리를 꿰차는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화당의 우려
칸 위원장은 FTC가 불공정 경쟁을 하는 기업들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소송을 거는 등 야수적 본성을 회복하길 바란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칸 위원장이 주도하는 FTC 개혁에 대해 우려와 경계심을 드러낸다. FTC가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엔 법적 권위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더 큰 논란이 예상되는 건 FTC가 공정 경쟁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제정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를 비판하는 측에선 FTC 권한범위를 시험대에 올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례가 있다. 1980년 당시 미국 법원과 의회는 FTC의 자체규정을 심사해 권한을 제한한 바 있다.
미국상공회의소 반독점 선임 부사장인 션 헤더는 "FTC는 자체규정을 만든 뒤 마치 검사와 판사, 배심원단인 것처럼 행동한다. FTC의 광범위한 권한에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추천 윌슨 위원은 "FTC가 경쟁관련 규정을 제정하려는 건 자살행위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칸 위원장의 새로운 접근법을 법원은 어떻게 바라볼까. 그 일단은 지난 6월 드러났다. 지난 수년간 주목을 끈 FTC의 페이스북 반독점 소송에서 연방법원은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FTC는 "페이스북이 왓츠앱과 인스타그램 등 잠재적 경쟁기업들을 사들이면서 수년 동안 불공정 경쟁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페이스북이 독점권을 행사했다는 것을 FTC가 증명하지 못했다"고 판결했다.
칸 위원장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FTC가 주요 법원송사에서 연이어 지게 된다면 권위를 크게 상실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전직 공화당 추천 FTC 위원장인 윌리엄 코바시크는 "FTC가 계속 소송에서 진다면 신뢰성은 사라질 것"이라며 "FTC가 벌여놓은 모든 소송에서 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칸 위원장을 지지하는 측은 달리 본다. FTC의 한 위원은 "FTC가 이미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라고 비판했다. 진보진영에선 FTC가 지난 수년 동안 해야 할 소송 중 극히 일부만 진행했다고 주장한다. 앞서의 위원은 "한해 10건 정도의 반경쟁 합병만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며 "FTC가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칸 위원장이 이끄는 FTC가 기념비적 소송 일부를 이긴다 해도, 새로운 경쟁규정 제정과 합병 가이드라인 개정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할 여력이 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코바시크 전 위원장은 "FTC가 주요 사건에서 '주먹 대 주먹' 대결에 나서 대기업이 고용한 최고의 변호사들과 싸울 법률팀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팀원 숫자는 10여명이 아닌, 기껏해야 2~3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수년 동안 FTC 예산과 직원은 대폭 감축됐다. 현재 직원수는 1980년 대비 절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역대 가장 많은 합병사안을 검토하려고 노력중이다. FTC는 2021회계연도 기준(2020년 10월~2021년 9월) 지난 9개월 동안 대형합병건과 관련해 2573건의 신고를 받았다. 이미 2020회계연도 전체 기간에 접수한 것보다 50% 많은 건수다.
FTC는 지난주 '법이 규정한 신고 30일 내 합병 검토가 어렵다. 합병 전 심사를 할 수 없다면, 합병이 완료된 후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는 공지를 올렸다. FTC는 관련 성명서에서 "올해 FTC는 물밀듯 쏟아지는 합병 신고를 받고 있다. 법이 정한 기한 내 심사할 능력이 크게 제한 받고 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기업과 로펌들의 '인재 빼가기'도 늘고 있다. FTC에 보다 공세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다. 워싱턴 소재 인재채용기업 '맥레이'의 로렌 드레이크는 "보통 한해 두어명의 FTC 인재들이 민간 채용시장에 나온다"며 "하지만 올해 현재까지 우리는 10명의 FTC 출신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FTC 경쟁국 국장 이안 코너는 올해 3월 으로서 로펌 '레이텀앤왓킨스'에 합류했다. 그는 "민간기업들은 6개월 전에 비해 훨씬 많은 연봉을 제시한다. FTC 출신이면 민간기업 이직 일년차에 연봉 20만달러 이상을 받을 수 있다. FTC에선 6만~7만달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코너 전 국장은 지난해 페이스북에 대한 FTC의 사건을 법원에 가져간 장본인이다. 지난주엔 페이스북 소송에 참여했던 FTC 선임 경제전문가인 칼 샤피로 역시 사직서를 제출했다.
페이스북 시험대
FTC는 조만간 페이스북 사건 항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페이스북의 독점권한을 증명할 새로운 증거를 마련해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페이스북 소송 항소와 승소 여부가 칸 위원장 리더십에 대한 첫번째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본다.
승소한다면 반독점에 대한 칸의 이론, 빅테크에 대한 그의 비판론이 입증된다. 하지만 패소한다면 FTC 직원의 사기는 크게 꺾일 수밖에 없다.
한편 일각에선 칸 위원장의 리더십 증명은 향후 FTC가 제기할 소송 결과라기보다 그가 FTC를 어떻게 변모시킬지에 달렸다고 본다. 칸 위원장을 지지하는 FTC 한 위원은 "우리는 FTC가 미국은 물론 전세계 반독점당국의 리더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