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조기도입

고교학점제 조기도입 … 후폭풍 거세다

2021-09-29 12:25:59 게재

현 '중2'부터 단계적 적용 … 국가교육회의 "대입-고교학점제 상충 개선" 권고

고교학점제는 지금 중고등학생에게 먼 일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 일어날 변화였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가 일반계고도 2023년부터 단계별로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2부터 적용되는 셈이다.

고교학점제는 '교육 패러다임 전환' '교육 대전환'이라 할 만큼 큰 변화로 불린다. 그렇다보니 대입도 그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도 "대학 입시가 고교학점제와 상충되지 않도록 대입제도를 개선하라"고 교육부에 권고했다.

대입이 달라질 때,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보다 앞선 학년부터 단계적으로 변화가 반영되는 경향이 있다. 학점제와 대입 변화에 학부모들이 눈길을 주는 이유다. 고교학점제와 관련한 대입 이슈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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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학점제(학점제)가 계속 이슈다. 교육부가 8월 23일 발표한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적용을 위한 단계적 이행계획' 발표 때문이다.

학점제는 고등학생도 대학생처럼 스스로 시간표를 짜 수업을 듣고 졸업 요건에 맞는 학점을 채우면 졸업하는 제도다. 학생이 자신의 진로나 흥미를 고려해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만큼 개별·맞춤형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일반계고도 2023년부터 순차적으로 학점제를 도입한다. 2020년 기준 일반계고 55.9%가 속한 학점제 연구 선도학교 참여율도 2023년까지 100%에 달하도록 유도한다. 당초 계획보다 2년 앞당겨 시행하게 된다.

◆고교학점제 조기도입 후폭풍 거세 = 이를 두고 정치적 성향이 완전히 다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두 교원단체가 한 목소리로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교총은 8월 23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다양한 교과목을 가르칠 정규 교원 확충과 도농·학생 간 교육격차 해소방안부터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며 "준비되지 않은 고교학점제는 오히려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교육불평등만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교조 역시 같은 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학점제를 밀어붙이기식으로 시행할 것이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 고교학점제를 재검토하고, 선결 과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며 "최악의 경우 현장 혼란만 극대화하고, 학생 선택 존중이라는 취지는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학부모들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혼란과 불안을 호소한다. 교육부의 조기 도입 발표 후 학부모 커뮤니티에는 학점제 관련 문의가 폭증했다. 특히 갑자기 적용대상이 된 중학교 1,2학년의 반응이 거세다.

중2 자녀를 둔 오현정 씨(41·서울 마포구 여의도동)는 "갑자기 아이가 대상이 돼 더 당황스럽다. 학점제와 대입을 키워드로 검색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찾지 못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대입 제도 개편' 시기부터 쟁점 = 세간의 눈길은 대입 제도 개편에 쏠린다. 교육과정에 맞춰 대입 제도 개편도 예고됐기 때문이다. 특히 대입은 큰 변화를 앞두면 더 앞선 시기에 방향에 맞춰 조금씩 바꾸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대입 개편 방향은 드러난 게 없다.

교육부는 학점제 관련 자료에서 거듭 미래형 대입을 준비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교육과정을 먼저 손보고, 그에 맞는 대입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게 교육당국의 설명이다.

다수의 교육 전문가들은 대입 제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학점제형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학생들에게 현행 대입 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안정적인 조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학점제가 확대 적용되는 2023학년 고1 입학생의 대입을 목표로 2022년 개편안을 내놓거나, 학점제 조기 도입을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수업 따로, 입시 준비 따로 만드는 '수능' = 현재 학점제와 관련한 대입 개편에서 가장 큰 이슈는 수능이다. 현재 수능은 정시와 수시 모두 활용된다. 영향력도 크다.

수시에서는 최저학력 기준으로 쓰이는데 상위권 학생이 몰리는 대학일수록 기준선이 높은 편이다. 서류나 논술, 면접 등 다른 전형 요소에 경쟁력이 있어도 최저 기준 미충족 시 불합격한다. 수능의 영향력이 큰 대학은 전체 대학으로 보면 소수이지만, 선호도가 높은 주요 대학이라 대입 흐름을 주도하는 특징이 있다.

수능 과목 대부분은 석차등급제, 즉 상대평가 체계다. 수강과 응시 인원에 따라 성적 확보에 유불리가 발생한다. 따라서 학생은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이라도 인원이 적거나 난도가 높은 경우 기피하기 쉽다.

학교 수업도 마찬가지다. 또 학생이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과목으로 수능에 응시하는 길도 열려 있다. 학교 정규수업을 외면하고 입시 과목 위주의 학습에 집중하는 '입시 준비 따로' '수업 따로'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김해용 서울 선사고 교감은 "일반계고 학생들은 대학 진학이 목표다. 그렇다보니 입시에 도움이 되는 과목이나 교과 활동을 우선 선택한다. 특히 정시 확대 후 수능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과목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며 "선택형 교육과정의 설계 목표는 학생 진로나 흥미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라는 것인데, 현재 입시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도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영출 경남 남해해성고 교사도 "수능의 영향력이 지금과 같이 큰 입시 제도에서는 학생의 자유로운 수업 선택과 진로 설계를 꿈꾸긴 어렵다"고 토로했다.

◆해법은 절대 평가 전환? = 때문에 교육계는 수능 체제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고교학점제의 성패가 달렸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교육당국이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나 독일의 아비투어와 같은 논술형·서술형 문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 외에 알려진 내용은 없다.

다만 고교학점제에 대한 다수의 연구에서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을 내세운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 고3학생들이 치를 2022학년 수능 기준, 영어와 한국사, 제2외국어/한문은 절대평가로 성적이 산출된다. 이를 전 과목으로 확대하자는 얘기다. 수능의 자격고사화도 함께 거론된다.

김용진 서울 동대부여고 교사는 "현재 상당수 대학이 학생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고 수능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 곳이 선발하는 곳보다 많다"며 "지원자를 변별해야 하는 대학만 수능에서 최저 자격요건을 정하고 통과자들을 대상으로 면접 논술 등을 진행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공정한 대입' 여론, 절충될까? = 반대 의견도 있다. 대입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 수능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수능의 영향력이 줄어들면 개별 학교에서의 교과 성적이나 학생부 기록, 대학이 주관하는 논술이나 면접 등의 비중이 높아진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런 요소는 평가자 개인의 주관이 반영돼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수능=공정'이라는 담론을 넘어서야 하는데, 이는 평가 방법과 기준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있어야 한다.

교육계가 대중의 신뢰를 얻으려면 정교한 질적 평가 기준 설계, 개별 교사의 평가 전문성 확보 등이 시급한 과제다.

정나래 내일교육 기자 lena@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