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전문직 '갈등' … 사회적합의 이끌 거버넌스 실종

2021-09-29 11:32:12 게재

국회·정부는 미래산업 고민없이 '눈치보기'만

창업 싹 자르면 스타트업생태계 붕괴 우려 돼

미래산업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전문직단체와 스타트업 갈등이 전면전을 치닫는 모습이다. 상황은 스타트업에 유리하지 않은 형국이다. 전문직단체의 영향력 행사와 최근 '플랫폼 규제' 흐름이 플랫폼 스타트업에게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계는 "합법적인 사업인데도 힘의 논리가 지배해 스타트업 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이익단체들의 몽니에 신산업이 고사한다는 주장이다. 기존 전문직이나 산업계는 플랫폼의 독과점과 골목상권 침해를 우려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나마 스타트업과 기존 산업(업종)과의 상생모델이 이뤄지고 있어 희망을 주고 있다.

문제는 신산업과 기존 산업의 갈등에도 사회적합의 노력이 미미하다는 점이다. 갈등을 조정할 거버넌스가 제역할을 저버린 결과다. 국회는 미래산업에 대한 고민없이 표 계산에만 분주하다. 정부부처는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특히 스타트업 지원과 육성을 책임지고 있는 중소벤처기업부도 문제해결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플랫폼 스타트업과 전문직단체 갈등이 밥그룻 다툼이 아닌 미래신산업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타트업 전문영역 서비스 출시 = 최근 비대면 진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급성장 중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정부가 서비스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면서 더욱 확대됐다.

선두는 강남언니다. 강남언니는 성형외과나 피부과 치과 등 비급여 의료병원의 시술 가격과 후기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이용자는 지난 7월 300만명으로 늘었다. 등록된 의사도 지난해 12월 1000명에서 최근 2200명을 넘어섰다.

닥터나우 솔닥 엠디톡 닥터콜 메디버디 올라케어 등은 정부의 한시적 규제 완화를 기회로 비대면 진료서비스에 나선 플랫폼이다. 지난해 11월 비대면 진료와 함께 처방약을 배달하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10개월만에 MAU(월간 활성 사용자 수) 10만명을 달성했다. 150여곳의 병원·약국과 제휴를 맺었다.

성장세를 타던 강남언니와 닥터나우에 악재가 발생했다.

강남언니의 의료광고를 대한의사협회가 반대하고 나섰다. 강남언니는 의료광고가 의료법에 근거한 합법 사업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의협은 의료광고는 의료단체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닥터나우는 대한약사회가 장애물로 등장했다. 약사회는 원격으로 처방전과 약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불필요한 약물 오·남용과 환자정보 노출 등의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변호사광고플랫폼 '로톡'은 대한변호사협회와 대치하고 있다. 로톡은 2014년 의뢰인과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가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법률상담을 할 수 있는 웹·모바일 플랫폼이다. 올해는 법률서비스를 원하는 기업과 적합한 로펌을 연결해 주는 B2B 플랫폼 '로톡비즈니스'를 선보였다.

변협은 로톡의 영업방식이 변호사가 아닌 자가 금품을 받고 알선·소개하는 것으로 위법하다는 입장이다.

부동산 중개플랫폼 다윈중개는 2019년 서비스 시작 이후 10만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기존 공인중개사를 통한 중개를 온라인으로 바꾸면서 비용(수수료)을 크게 낮춘 게 성장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공인중개사가 아닌 자가 공인중개사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고 불법 광고 표시행위를 한다며 다윈중개 서비스를 반대하고 있다.

직방도 지난달 '온택트 파트너스'라는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중개사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온택트 파트너스는 가상현실(VR)로 매물을 보고 중개사와 화상으로 상담을 진행하는 서비스다.

세무 분야에서는 인공지능(AI) 기반 세무회계플랫폼 '삼쩜삼'과 한국세무사고시회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삼쩜삼은 소액 세금신고자들을 중심으로 간편한 세금환급 서비스를 제공해 주목받고 있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가입자가 500만명으로 급증했다. 누적 환급액도 증가했다. 올 6월 1000억원이던 누적환급액은 이달들어 1503억원까지 늘어났다.

한국세무사고시회는 세무사 자격이 없으면서 국세청 세금환급대행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고 있다며 반발했다.

◆전문직단체 강력 반대 = 플랫폼 스타트업과 전문직단체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로톡과 대한변협은 소송전으로 이어졌다. 9일 로스쿨 졸업생들로 구성된 한국법조인협회는 로톡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고발했다. 로톡이 적자상황을 숨기고 정부 지원을 받았다는 게 이유다. 로톡도 대한변협의 개정 광고규정이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한국세무사고시회는 4월 자비스앤빌런즈를 경찰에 고소했다. 허위·과장 광고를 일삼고 세무사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4월 다윈중개를 검찰에 고발했다. '공인중개사가 아닌 자가 공인중개사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고 불법 광고 표시행위를 했다'는 것이 고발 이유다. 종전에도 협회가 2차례 검찰에 고발한 적이 있다. 당시 모두 불기소 처분으로 기각됐다.

약사회도 닥터나우를 담합조장, 불법광고 혐의 등 약사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경찰이 증거 불충분으로 반려하자 검찰고발을 시사했다. 닥터나우측도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이 과정에서 전문직단체들의 무리수가 빈축을 사고 있다. 정부로부터 합법으로 인정받았는데도 내부 규정이나 법 개정까지 추진하면서 스타트업 서비스를 막고 있어서다. '이익단체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법무부는 로톡 서비스에 대해 '변호사법 위반이 아닌 합법서비스'로 판단했다. 하지만 대한변협은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면서까지 변호사들이 로톡에 참여 또는 협조하지 못하도록 했다.

강남언니의 경우도 복지부는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의협은 정부의 합법 결정에도 강남언니 서비스를 막기 위해 관련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전문직단체 대응은 스타트업 서비스를 아예 인정하지 않고 싹을 자르려는 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새로운 산업흐름을 거부하는 기득권 힘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망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중재와 소통 부족으로 난타전 = 갈등이 확대되고 있는데도 사회적합의 노력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회와 정부가 중재 역할을 외면하고 있어서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 "신산업과 기존 산업 갈등보다는 미래지향적인 소통을 해야 한국경제는 한발 더 성장한다"며 국회와 정부의 역할을 주문했다.

현재 상황은 중재보다는 힘의 논리가 앞서는 상황이다. 이해집단 간 갈등을 해소하는데 노력해야 할 국회가 미래산업에 대한 논의는 거부한 채 '정치 이해득실'에만 몰두하고 있다.

최근 국회는 정부의 합법 결정에도 비대면 의료서비스 플랫폼 규제를 위해 의사단체 입장에서 법 개정 작업에 나섰다. 현행법에 예외조항까지 두어 의협 자율심의기구의 사전심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4일 전체회의를 열고 세무사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을 심의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사실상 특정 플랫폼사업을 금지하는 '1호 법안'이 될 전망이다. 과거 '타다 금지법'으로 불린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도 사업 자체는 막지 않았다.

중소기업계 고위관계자는 "국회가 4차산업혁명시대의 산업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익단체 대변자로 전락하고 있다"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이 관계자는 "플랫폼기업의 독과점은 규제해야 마땅하지만 아예 스타트업 사업 자체를 틀어막으면 누가 혁신에 뛰어 들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중소벤처기업부 태도도 실망을 주고 있다. 중기부는 스타트업 지원과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기존 산업과 갈등 해결에는 소극적이다. 업종마다 관련 법과 주무부처가 달라 부처 간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기부가 중소기업정책협의회를 운영하는 이유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는 "이익 내기에 급급한 스타트업이 기존 산업과 갈등을 예상하며 대비할 수 없다. 중기부가 전문가들과 함께 준비해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스타트업이 기존 산업과 갈등하면 스타트업도 피해를 입고 사회적비용도 상당하다"며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는 기업 육성과 규모 확대에만 있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고위관계자는 "국회와 정부가 현재 갈등을 한국사회에서 플랫폼산업이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공론화하는 계기로 삼아 스타트업과 기존 산업이 협력해 혁신을 이뤄내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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