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경제시대 도래, 기대만큼 과제 산적

2021-10-15 11:25:10 게재

영국 이코노미스트 "수소프로젝트, 전력망 균형과 수요-공급 보조가 관건"

오늘날 수소경제 규모는 글로벌 기준에서 미미하다. 게다가 화석연료 의존도가 커 환경에 적대적이다. 그럼에도 그 중요성은 대단히 커지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 따르면 현재 매년 약 9000만톤의 수소가 생산된다. 금액으로는 1500억달러가 넘는다. 거대 에너지 기업 엑슨모빌 매출에 육박한다. 대부분 화석연료를 태워 얻는다. 전세계 천연가스의 6%, 석탄의 2%를 수소 생성에 할애한다. 이 과정에서 연간 8억톤이 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독일의 한해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같은 수준이다.

수소는 원유를 정제하고 플라스틱용 메탄올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 결정적으로 전세계 거의 모든 공업용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데에도 쓰인다. 암모니아는 화학비료의 주요 재료다. 전세계 농작물 산출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암모니아가 없다면, 농업생산성은 급감하고 수억명이 기아에 직면한다.


탈탄소화 수단이지만 아직은 미래연료

오늘날 수소는 또 다른 측면에서 중요성을 더한다. 글로벌 경제의 탈탄소화 수단이기 때문이다. 미국 투자은행 모간스탠리는 "전세계 정부가 약속한 녹색정책을 달성하려면, 2050년 수소 생산 규모는 현재보다 5배 넘게 늘어 5억톤 이상이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청정수소는 상당히 그럴 듯하다. 수소를 화석연료에서 만들면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분리해 지하에 저장하는 것이다. '탄소포집저장'(CCS)으로 알려진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은 신재생에너지로 물 분자를 분해해 수소를 추출하는 방법이다. 이는 전기분해로 불린다.

오래 전부터 수소 추종자들이 있었다. 기후변화 위기가 이슈로 등장하기도 전이다. 수소의 매력은 다양하다. 에너지밀도가 높다. 수소 1킬로그램은 천연가스 1킬로그램을 태우는 것보다 2.6배 높은 에너지를 낸다. 대기에서 태우면 화석연료와 달리 황산염이나 일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연료전지에 쓰일 때 물 이외 다른 물질을 생성하지 않는다. 때문에 1970년대 국제유가 파동 당시 산유국들의 횡포에서 벗어나게 해줄 구원의 물질로 여겨졌다.

하지만 에너지업계 농담처럼 수소는 미래의 연료지만, 언제나 미래의 연료로만 남아 있다. 문제는 수소를 자연 상태에서 얻을 방법이 없다는 것. 지구상의 수소 대부분은 화석연료나 바이오매스, 물과 같은 다른 분자와 결합돼 있다. 열역학 법칙에 따르면 수소를 얻는 데 투입하는 에너지는 그 결과로 얻는 에너지보다 더 크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

그럼에도 수소의 중요성이 커지는 이유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만으로 지구를 구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신재생 에너지로 만든 수소가격 하락

오늘날 천연가스로 만든 수소는 회색으로, 석탄 기반 수소는 검은색으로 불린다. 여기에 탄소포집저장을 더한 기술은 청색수소로 칭한다. 신재생에너지로 돌리는 전해조의 산물은 녹색수소, 핵발전을 사용하는 전해조의 산물은 분홍색수소로 불린다. 열분해로 생산된 수소는 청록색이다.

현재 회색수소를 만들려면 킬로그램당 1달러가 든다. 이는 대개 천연가스 가격에 좌우된다. 색깔을 바꾸려면 할증료를 내야 한다. 아직 청색수소를 규모 있게 생산하는 기업은 없다. 하지만 현실화됐을 때 비용은 회색수소 대비 2배 높아질 전망이다. 녹색수소의 경우 서구에선 킬로그램당 5달러가 소요된다. 일반적으로 알카라인 전해조를 사용하는 중국의 녹색수소는 서구보다 저렴하지만 효율이 떨어진다고 한다.

올해 6월 미국 에너지부는 '수소샷' 이니셔티브를 공개했다. 녹색, 분홍색, 청록색, 청색 수소의 비용을 대략 4/5 줄여 2030년까지 킬로그램당 1달러로 만드는 게 목표다. 과거 태양광패널과 배터리 업계에서 달성한 진보와 비슷하다.

불가능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수많은 순풍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첫째 신재생 전력의 지속적인 비용 감소다. 일반적으로 전기분해 수소 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은 전기료다. 때문에 신재생 전력 가격의 하락은 큰 도움이 된다.

둘째 전해조의 성능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저렴해지고 있다. 2000년대 수소 붐을 선도해 주목을 받았던 미국의 블룸에너지는 최근 고체산화물 전해조를 공개했다. 매우 높은 온도에서 운영되기에 경쟁제품보다 15~45% 효율이 높다고 주장한다. 수소이온교환막(PEM) 기술 역시 개선되고 있다. 전해조 규모가 이전보다 커지면 킬로그램당 수소 비용을 낮출 수 있다.

경험이 축적되면 가격은 떨어진다. 태양광 시장이 그랬다. 현재 전세계 약 3기가와트 용량의 전해조가 있다. 1기가와트는 핵발전소 1기 또는 광대한 태양광단지가 생산하는 전력량이다.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2030년 100기가와트 이상의 전해조가 구축될 것으로 예상한다. 맥킨지의 수소 전문가인 베른트 하이트는 "그 정도 규모가 되면 기기와트당 비용이 현재보다 65~75% 감소할 것"이라며 "최근까지 수공업 수준에 머무르던 수소업계가 성숙하고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전해조 제조사인 ITM파워는 지난해 1억7200만파운드의 투자금을 받아 연간 2.5기가와트 용량으로 확대하는 작업에 나섰다. 이 회사 CEO인 그레이엄 쿨리는 "기가와트 용량의 전해조를 만들기 위한 청사진을 얻게 됐다. 앞으로는 이 청사진을 자르고 붙이면서 용량을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ITM파워는 영국 험버강 어귀에 들어서는 거대한 수소허브에서 독일 풍력발전기업인 지멘스 가메사와 협력중이다.

신재생에너지 원천에서 만든 수소의 가격은 낮아지고 있고 계속 하락할 전망이다. 블룸버그NEF는 PEM 전기분해를 활용한 녹색수소 가격이 2030년 킬로그램당 2달러로 낮아질 수 있다고 예상한다. 그럴 경우 청색수소와 가격경쟁을 벌일 수 있게 된다. 모간스탠리는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지역에서 생산하는 녹색수소가 2~3년 내 킬로그램당 1달러인 회색수소와 경쟁할 정도로 저렴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달 뉴욕시 전력당국은 시범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수력발전에서 얻은 녹색수소를 천연가스와 섞는 프로젝트다. 약 30% 정도의 농도로 수소를 섞은 뒤 가스터빈에서 태워 전기를 생산한다. 열역학 법칙으로 보면 말이 안된다. 터빈에서 수소를 태워 얻는 전력의 양은 투입된 양보다 적기 때문이다. 전해조를 구동하기 위해 투입하는 에너지를 직접 발전소에 주입하면 더 많은 킬로와트시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킬로와트시가 동일한 가격을 갖는 건 아니다. 신재생에너지는 때로 과도한 전력을 생산한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가격이 제로 또는 마이너스로 내려갈 수도 있다. 때문에 열역학 법칙에 배치되더라도 수소를 생성하는 것이 더 이익인 경우가 생긴다. 전기가 남는 시간과 공간을, 전기에 대한 수요가 높은 시간과 공간에 결합해 에너지 균형을 이루는 것, 그게 바로 수소의 중대한 역할이다.

상호결합된 거대 전력망의 경우 많은 도움이 된다. 수소는 전력 부하가 걸릴 때 이를 줄여주는 배터리 저장과 스마트그리드 기술과 마찬가지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나아가 계절과 계절간의 차이, 올해와 다음 해와의 차이를 메워줄 수 있는 장기적 에너지 저장에서 수소는 그 어떤 경쟁 에너지보다 장점을 갖고 있다.

미국 유타주에선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 미쓰비시 미국 법인이 수행하는 이 프로젝트는 신재생에너지에서 만든 수소를 인근 암염동굴에 저장한 뒤 필요할 때 청정전기를 생산하는 거대한 터빈을 구동하는 연료로 쓰인다.

이탈리아 에너지인프라기업인 '스남'은 튀니지에서 생산한 녹색수소를 독일 바이에른까지 수송할 계획이다. 현존 수송관 인프라에 일부 수송관을 신설하면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호주와 칠레는 태양광으로 생산한 수소를 선박으로 수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코크스 대신 쓰는 녹색철강 이미 현실화

수소가 신재생전력보다 확실한 장점을 갖는 또 다른 부문은 제철이다. 철강제조에서 석탄을 코크스로 만드는 과정은 필수불가결하다. 여기서 전세계 온실가스의 약 8%가 배출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안으로 등장한 게 '수소환원제철'이다. 고로에 철광석과 석탄을 넣어 녹인 뒤 철만 뽑아내는 기존 생산방식과 달리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는 기술이다.

유럽 거대 철강기업인 아르셀로미탈은 최근 온실가스 배출 저감에 1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수소환원제철 방법을 탐색하고 있다. US스틸은 노르웨이 국영에너지기업 에퀴노와 협력관계를 맺었다. 에퀴노는 탄소포집저장의 선구자로 청색수소로 전환 중인 석유·천연가스 기업이다. 스웨덴 철강기업인 하이브리트는 세계 최초 녹색철강을 만들어 지난 8월 고객사에 인도했다.

항공과 해운에서도 수소의 역할은 주목할 지점이다. 영국항공과 제프 베이조스가 투자한 스타트업 제로에이비어는 1년 전 영국에서 연료전지를 이용한 첫번째 상업비행을 마쳤다. 노르웨이와 미국 서부해안의 여객선 운영기업들은 수소연료전지로 구동되는 단거리 페리를 실험하고 있다.

유럽 항공기 제조사인 에어버스는 수소를 전력원으로 적극 검토중이다. 에어버스는 지난달 '2035년까지 수소를 활용해 비행기를 운항하겠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이 기업 CEO인 기욤 포리는 "수소의 에너지 밀도는 항공등유의 3배나 된다. 수소는 항공기를 위해 태어났다"고 수소의 장점을 격찬한다.

무게의 기준에선 사실이지만 부피의 기준에선 아니다. 일반 공간의 온도와 압력 조건에서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성긴 가스다. 킬로그램 기준에서 수소는 항공등유보다 3배 많은 에너지를 가지지만, 리터 기준에선 고작 1/3000배의 에너지를 갖는다. 1리터의 수소가 같은 양의 항공등유보다 3배 많은 에너지를 얻으려면, 마이너스 253도씨로 액화돼야 한다.

이는 에어버스의 라이벌인 미국 보잉사가 수소에 신중한 이유다. 보잉사 과학자들도 수소가 지속가능한 항공연료로서 핵심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은 보잉747기가 액화수소로 대서양을 횡단하려면 승객과 화물칸 전부를 수소연료로 채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장거리 비행의 경우 청정수소 기반 암모니아를 사용하는 게 다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지적이다. 대형선박들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대안으로는 합성탄화수소가 있다.

가정난방의 경우 효율성 기준에선 전기로 구동되는 열펌프가 수소를 태우는 가정용 보일러를 손쉽게 압도한다. 하지만 도심의 가정과 건물들은 이미 보일러를 갖춘 상태다. 수소를 태우기 위해 약간의 조정을 거치는 편이, 모든 가정과 건물에 열펌프를 장착하는 것보다 매력적일 수 있다. 영국은 이같은 관점에서 지난 8월 '2030년까지 5기가와트의 저탄소 수소 생산 용량을 확충해 천연가스를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승용차는 회의적, 화물차는 긍정적

연료전지 전기차도 관심사다. 일본 도요타는 1990년대 초부터 연료전지 전기차에 관심을 가졌다. 해당 기술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했다. 최근 도쿄올림픽 때 외국의 방문객들은 연료전지 전기차에 탑승해 도심 곳곳으로 이동했다. 일본 정부는 연료전지차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2019년 3600대에 그친 연료전지차를 2025년 20만대로 늘릴 방침이다.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연료전지차 100만대를 보급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같은 구상의 합리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연료전지차는 배터리 구동 전기차와 비교해 가격이 높고 구성이 복잡하지만 성능 측면에선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것. 게다가 변환손실 문제도 있다. 배터리 전기차에 주입된 동력의 약 4/5가 실제로 쓰이는 반면, 연료전지차의 효율성은 그 절반에 그치기 때문이다. 일본의 한 전력기업 CEO는 이코노미스트지에 "도요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 연료전지차는 수백만대 규모로 보급되지 않을 것이다. 혼다도 포기했다. 도요타가 이를 계속 붙들고 있는 건 자존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승용차와 달리 대형 화물트럭의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럽의 볼보와 다임러 등 전세계 주요 화물차 제조사들은 미국 수소전기차 스타트업인 하이존모터스와 경쟁하고 있다. 수소연료 구동 대형 트럭을 출시하기 위해서다. 대형 트럭의 경우 차량과 화물의 무게를 배터리가 감당할 수 없어 재충전 간격이 매우 짧아진다. 물류기업 DHL에 따르면, 거대한 짐을 실은 대형 화물차가 200킬로미터 이상의 거리를 달릴 경우 배터리는 합리적인 수단이 아니다.

내연기관엔진을 만드는 미국 커민스는 수소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전해조와 연료전지, 수소탱크 제조기업들을 잇따라 사들이고 있다. 커민스 CEO 톰 라인버거는 "2030년이면 수소 화물트럭과 디젤 화물트럭이 총비용 측면에서 엇비슷해질 것으로 생각한다"며 "고객들은 배터리를 장착한 차량의 신뢰성을 우려한다. 반면 수소연료 트럭은 전기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철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세계 최대 열차 제조사 중 한곳인 프랑스 알스톰은 독일에서 수소로 구동되는 열차를 운영중이다. 디젤 열차와 달리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고 소음도 극히 적다. 전통의 전기 기관차처럼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한다. 알스톰은 "2035년까지 유럽에서 약 5000대의 디젤 기관차가 퇴역한다. 경제적 측면에서 수소열차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2030년이면 수소 기관차는 탄소 비용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아도 기타 연료 기관차와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수소가 엿보는 다른 시장은 건설중장비와 기타장비 부문이다. 전기모터의 고출력이 유용한 곳이지만 배터리 충전에 걸리는 오랜 시간이 문제인 곳이다. 포크리프트 트럭은 이미 수소가 파고들 수 있는 틈새시장 중 하나로 증명됐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대형트럭과 선박, 화학업계에서의 수소 적용 사례가 잇따를 것"이라며 "수소관련 장비류와 부품류의 연간 시장 규모는 2050년 20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수요와 공급이 보조를 맞춰 늘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수소 관련 장비의 공급이 활발해지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여전히 화석연료 장비에 전념할 수밖에 없다. 노후화되는 자본설비를 업데이트하는 시점에 대안이 없다면, 구관이 명관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급만 활발해지는 상황 역시 큰 저항에 부닥칠 수 있다. 각국이 수소경제를 위해 거액의 공적자금을 투자하는 상황에서 공급을 따라갈 수요가 없다면 거센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맥킨지의 수소 전문가 베른트 하이트는 수소경제가, 회전속도를 고르게 하기 위해 장치된 플라이휠과 비슷하다고 본다. 그는 "플라이휠을 돌리는 데 많은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단 회전하기 시작하면, 수월하게 잘 돌아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플라이휠은 약간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망가지고 만다"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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